죽음 앞에서 피어나는 관계의 진실
넷플릭스 드라마『은중과 상연』의 마지막 장면이 흘러간 후, 나는 곧바로 한 드라마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HBO의 드라마 '나의 눈부신 친구'
두 여성의 오랜 우정을 다룬 이야기들이 평소 내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델마와 루이스 를 빼고) 이번 '은중과 상연' 은 참 좋았다.
두 여성의 우정과 질투, 오해, 화해... 삶을 관통하는 세 작품.
넷플릭스의『은중 과 상연』, HBO의 『나의 눈부신 친구』, 베니스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룸 넥스트 도어』. 세 작품 모두 여성 간의 복잡한 유대를 그렸지만, 각각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진실에 도달하고 있었다.
은중과 상연은 현재 '절찬리에 방영중' 이니 포스팅은 나머지 두 작품에 대해서만 다루겠다.
어떤 우정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이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룸 넥스트 도어』에서 잉그리드와 마사가 그러했고, HBO의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레누와 릴라가 그러했다.
한 작품은 우정의 종착역을, 다른 한 작품은 우정의 출발역을 보여주지만, 둘 다 같은 진실을 말한다. 진정한 관계란 상대방의 모든 면을 이해하지 못해도, 그 사람 곁에 머물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룸 넥스트 도어』의 잉그리드는 20년 만에 재회한 친구 마사에게서 충격적인 부탁을 받는다. 암으로 죽어가는 마사는 존엄사를 선택했고, 혼자 죽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옆방에 있어달라고. 그저 곁에 있어달라고.
알모도바르의 카메라는 이 순간을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포착한다. 죽음 앞에서도 화사한 원색의 옷을 입은 마사, 그 앞에서 말을 잃는 잉그리드. 여기에 필요한 건 거창한 위로도, 삶에 대한 설교도 아니다. 그저 침묵 속에서 함께 있어주는 것.
반면 『나의 눈부신 친구』는 1950년대 나폴리에서 시작된 두 소녀의 이야기다. 모범생 레누와 천재 릴라. 똑똑한 두 아이가 가난한 동네에서 서로를 견인하며 성장한다. 릴라는 레누에게 "넌 나의 눈부신 친구야"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릴라가 더 눈부시다. 위험하고 매혹적이며 예측불가능한 존재. 레누는 평생 릴라를 따라잡으려 하지만 동시에 그녀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60년의 우정이란 이런 모순된 감정의 연속이다.
두 작품 모두 여성 간의 우정을 다루지만, 접근 방식이 다르다.
알모도바르는 우정의 완성형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여자가 마지막 순간 진정한 동반자가 되는 이야기. 반면 엘레나 페란테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HBO 드라마는 우정의 전 과정을 해부한다. 사랑과 질투, 경쟁과 연대가 뒤엉킨 복잡한 관계의 60년사.
『룸 넥스트 도어』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마사가 죽음을 선택한 후 잉그리드가 홀로 남겨지는 장면이다. 옆방에서 들리던 숨소리가 멈춘다. 잉그리드는 문을 열지도,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저 벽에 기대어 앉아 친구의 마지막을 함께한다. 이 침묵의 동반이야말로 우정의 궁극적 형태다. 상대방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해도 존중하고,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해주는 것.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는 레누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릴라가 사라진 후, 중년의 레누가 과거를 회상하는 구조다. 릴라는 이미 부재하지만, 그 부재가 오히려 관계의 본질을 드러낸다. 60년 동안 서로를 사랑하고 미워했지만, 결국 레누에게 릴라는 자신을 완성시켜준 존재였다는 걸 깨닫는다. 릴라 없는 자신은 상상할 수 없다고.
두 작품 모두 죽음이나 부재를 통해 관계의 의미를 질문한다.
마사의 존엄사는 잉그리드에게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상대방의 고통을 대신해줄 수는 없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해줄 수는 있다는 것.
릴라의 실종은 레누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게 한다. 경쟁자이자 동지, 질투의 대상이자 사랑하는 친구였던 릴라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된다는 것.
알모도바르의 미학적 완성도와 페란테의 심리적 통찰력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진실에 도달한다. 진정한 관계는 완벽한 이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불완전한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용기에서 나온다는 것.
마사의 죽음을 막을 수 없어도 곁에 있어주는 잉그리드, 릴라의 모든 면을 이해하지 못해도 평생 그리워하는 레누.
결국 우정이란 무엇인가?
『룸 넥스트 도어』와 『나의 눈부신 친구』는 각각 다른 답을 제시하지만 본질은 같다. 시간이 흘러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도, 심지어 상대방이 사라져도 - 그 사람을 기억하고, 그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옆방의 침묵도, 60년의 기억도, 은중과 상연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도.... 결국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