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목격자

6

by 꼬불이

D+1. 지구 멸망 다음 날.


나는 눈을 떴다. 정거장의 인공 조명이 평소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지만 창밖을 보는 순간 현실이 다시 엄습했다.


지구는 더 이상 푸른 행성이 아니었다. 회색빛 먼지구름이 대기를 뒤덮고 있었다. 가끔 구름이 걷히면 검게 그을린 대륙의 윤곽이 보였다. 한반도가 있던 자리는... 찾을 수 없었다.


"여보, 민우야. 어제 일이 꿈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중얼거렸다.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렸다. 19개월간 혼자 지내면서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그때는 지구에 가족이 있다는 생각이 나를 지탱해줬으니까. 이제는 정말 혼자였다.


통신콘솔로 향했다. 혹시 모르니까. 혹시나 해서. 혹시라도...


"여기는 ISS. 지상의 누구든지 응답해주세요. 여기는 국제우주정거장입니다."


정적만이 돌아왔다.


"서울우주센터, 응답해주세요. NASA 휴스턴, 들리십니까?"


아무 소리도 없었다. 한 시간 동안 모든 주파수를 돌려봤다. 결과는 같았다. 완전한 침묵. 그제야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정말로 나 혼자 남았구나.



나는 일상적인 업무를 시작했다. 우주비행사의 직업적 습관이었다. 위기 상황일수록 루틴을 지켜야 한다고 훈련받았으니까.


시스템 점검. 산소 농도 정상. 물 재순환 시스템 정상. 전력 공급 정상. 정거장은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했다. 지구는 죽었는데 우주정거장은 살아있었다.



점심때가 되었다. 우주식량을 데우면서 생각했다. 식량은 얼마나 남았을까? 계산해보니 혼자서는 2년 반 정도 버틸 수 있었다. 물과 산소는 재순환 시스템 덕분에 더 오래 지속될 것이다.


"2년 반..." 그 시간을 혼자 어떻게 견뎌야 할까?



저녁에 다시 통신을 시도했다. 이번에는 더 간절했다.


"여기는 권성준입니다. 지구의 누구든지, 제발 응답해주세요. 저는 국제우주정거장에 혼자 있습니다. 살아계신 분이 있다면 응답해주세요."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우주는 여전히 침묵했다.



그날 밤 나는 가족 사진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제주도에서 찍은 마지막 가족여행 사진.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지영아, 민우야. 아빠가 정말 혼자가 됐어."


사진에 대고 말하는 내 자신이 우스웠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누군가와 대화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창밖의 지구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뭔가 달라지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