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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8. 지구 멸망 28일 후.
경보음이 울렸다. 삐이이이이이이!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적색 경보등이 정거장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무슨..."
중앙 제어 패널을 확인했다. 외부 냉각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했다. 메인 라디에이터 중 하나가 마이크로미티어라이트에 맞아 손상된 것 같았다.
"젠장."
이런 상황에서는 보통 지상과 교신하여 지시를 받는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였다. 모든 결정을 스스로 내려야 했다.
냉각 시스템이 완전히 멈추면 정거장의 전자 장비들이 과열된다. 며칠 안에 모든 시스템이 마비될 것이다.
"수리해야 해."
외부 수리. 우주 유영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보통은 두 명이 함께 나간다. 한 명이 작업하고 한 명이 감시하는 것이 기본 규칙이다. 하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어. 위험해."
하지만 수리하지 않으면 어차피 죽는다. 천천히 죽느냐, 빨리 죽느냐의 차이일 뿐이었다. 그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우주복을 입고 나가서... 그냥 돌아오지 않는다면? 우주공간에서의 죽음. 빠르고 고통 없는 죽음.
"그것도 방법이겠네."
나는 중얼거리며 우주복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EVA 우주복을 입는 데는 2시간이 걸렸다. 혼자서 하느라 평소보다 더 오래 걸렸다. 체크리스트를 혼자서 확인하는 것도 어려웠다.
"산소 농도 확인. 압력 확인. 통신 장비 확인."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에어록으로 들어갔다. 마지막 점검을 했다.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겠네."
바깥 문을 열었다.
우주가 나를 맞이했다.
완전한 침묵. 완전한 어둠. 그리고 완전한 고독.
지구가 아래쪽에 있었다. 여전히 회색빛 먼지구름으로 뒤덮인 채로. 한때 75억 명의 인간이 살던 행성이 이제는 죽은 돌덩어리처럼 보였다.
"아름답네."
역설적으로 아름다웠다. 죽음의 아름다움.
나는 손상된 라디에이터 쪽으로 이동했다. 안전줄이 나를 정거장과 연결하고 있었다. 그 얇은 줄이 생명줄이었다. 손상 부위를 확인했다. 구멍이 뚫려 있었다. 냉각수가 새어 나가고 있었다. 수리 가능한 수준이었다.
"수리하고 들어갈까? 아니면..."
안전줄을 바라봤다. 저 줄만 끊으면 모든 게 끝난다. 우주공간으로 떠나가면서 지구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죽을 수 있다. 공구를 꺼내 안전줄 쪽으로 향했다. 수리가 아니라 안전줄을 끊기 위해.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시야가 왜곡되기 시작했다.
"뭐지?"
우주복의 헬멧 안에 이상한 형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흐릿했지만, 점점 선명해졌다. 백골들이었다. 수십 개, 수백 개의 해골들이 우주공간에 떠다니고 있었다.
"아... 안 돼."
악몽에서 봤던 백골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꿈이 아니었다. 우주복을 입고 깨어있는 상태에서 보고 있었다.
"너 때문이야."
복골들이 말했다.
"네가 혼자 살아남아서 우리가 죽었어."
"아니야... 아니야!"
나는 소리쳤다. 우주복 안에서 메아리쳤다.
백골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주공간에서 수영하듯 움직이고 있었다.
"같이 죽자."
"혼자 살 자격 없어."
"우리와 함께 와."
공포가 밀려왔다. 나는 뒤로 물러나려 했다. 하지만 무중력 상태에서는 발판이 없었다. 그저 허공을 헤맸다. 그때 안전줄이 팽팽해졌다. 나는 안전줄의 끝까지 와 있었다. 백골들이 더 가까이 왔다.
"안전줄을 끊어."
"우리와 함께 우주로 와."
나는 공구를 들어 안전줄에 댔다. 손이 떨렸다.
"그래... 그래야 해."
하지만 그 순간, 다른 환상이 시작되었다. 백골들이 갑자기 사라졌다. 대신 다른 모습들이 나타났다. 지구 곳곳에서 사람들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지하 벙커에서, 동굴에서, 잠수함에서.
"여기 있어요!"
"도와주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수백 명, 수천 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중에서 한 목소리가 특히 선명하게 들렸다.
"저는 마리아 솔리스입니다. 칠레에서 방송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첫 번째 자살 시도 때 들었던 그 목소리.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우주에서 우리를 지켜보는 분을."
"마리아?"
나는 중얼거렸다.
"당신이 포기하면 우리도 포기해요. 당신이 희망을 잃으면 우리도 희망을 잃어요."
"하지만... 나는 너무 외로워."
"조금만 더 버텨주세요. 우리가 연락할 방법을 찾을게요."
환상 속에서 지구 곳곳의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다. 생존자들의 신호였다.
"우리는 살아있어요."
그때 민우의 목소리도 들렸다.
"아빠, 아직 포기하면 안 돼. 저 사람들이 아빠를 필요로 해."
"민우야..."
"아빠는 마지막 희망이야. 하늘에서 지구를 지켜보는 유일한 사람."
환상이 점점 희미해졌다.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우주공간에서 안전줄 끝에 매달린 채로. 손에는 여전히 공구가 들려있었다. 안전줄을 끊으려던 그 공구가.
"아직... 아직 시간이 아니야."
나는 공구를 내려놓았다. 대신 손상된 라디에이터로 향했다. 수리를 시작했다. 30분이 걸렸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임시방편으로는 충분했다. 냉각수 누출이 멈췄다.
"됐다."
성취감보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살아있다는 안도감. 정거장으로 돌아왔다. 에어록을 통과하고 우주복을 벗었다.
"마리아..."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환상이었을까? 아니면 진짜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는 걸까?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평안했다.
그날 밤, 통신을 시도했다.
"여기는 권성준입니다. 28일째입니다. 혹시... 혹시 마리아라는 분이 듣고 계시다면..."
침묵.
"저는 아직 여기 있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응답은 없었다. 하지만 왠지 누군가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다려볼게요."
그렇게 또 하루를 버텨냈다. 29일째가 밝아오고 있었다.
D+29. 지구 멸망 29일 후.
거의 한 달이 지났다. 매일 밤 자살을 고민했지만, 매번 마지막 순간에 멈췄다. 마리아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그 환상 속의 여자가 정말 존재할까?
통신 시도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하루에 수십 번씩.
"여기는 권성준입니다. 29일째입니다. 마리아... 혹시 마리아가 듣고 있다면..."
목소리는 이미 쉬어버렸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아직 여기 있습니다."
혼잣말도 이제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가족과의 대화, 벽과의 대화, 기계와의 대화.
"지영아, 내일이면 정확히 한 달이야. 한 달 동안 혼자 살았어."
"민우야, 아빠 잘하고 있지? 아직 포기하지 않았어."
저녁이 되었다. 나는 평소처럼 통신 장비 앞에 앉았다.
"여기는 권성준입니다. 29일째 마지막 통신입니다."
왜 마지막이라고 했을까? 스스로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내일이면... 내일이면 정말 마지막 결정을 내릴 것 같습니다."
침묵.
"마리아... 혹시 당신이 정말 있다면... 내일까지만 기다려주세요."
그 말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이미 마지막 날을 정해놓고 있었던 것이다.
내일, D+30.
정확히 한 달째 되는 날.
그날이 정말 마지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