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과 로댕이 알려준 AI 시대의 창작
요즘 AI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두 사람을 떠올린다. 귀스타브 에펠과 오귀스트 로댕. 한 명은 철의 건축가였고, 한 명은 대리석의 조각가였다. 시대는 달랐지만 둘이 창작하는 방식은 놀랍도록 비슷했다. 그리고 그 방식이야말로 지금 AI 시대를 살아가는 창작자들이 배워야 할 진짜 지혜라고 생각한다.
에펠탑을 보면 사람들은 감탄한다. 324미터 높이의 철골 구조물.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세워진 이 거대한 탑을 에펠이 혼자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당연히 수백 명의 인부들이 철골을 들고 볼트를 조이고 용접을 했다. 하지만 그 탑에 새겨진 이름은 오직 하나, 귀스타브 에펠이다. 왜일까? 에펠은 설계했고, 계산했고, 감독했고, 최종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철골 하나하나를 어디에 배치할지, 어떤 각도로 세울지, 전체 구조를 어떻게 완성할지 결정한 사람은 에펠이었다.
뉴욕 자유의 여신상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프랑스 조각가 바르톨디의 작품이라고 알지만, 그 거대한 동상의 내부 철골 구조를 설계한 사람은 에펠이었다. 46미터 높이의 여신상이 바람과 무게를 견디며 서 있을 수 있는 건 에펠의 설계 덕분이다. 그는 공사 현장에서 망치를 들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감독했다. 창작자란 그런 존재다.
로댕을 보자. 그의 작업실에는 항상 조수들이 있었다. 대리석을 깎고, 청동을 주조하고, 석고 모형을 만드는 사람들. 로댕의 유명한 작품들 중 상당수는 사실 조수들의 손을 거쳤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왜냐하면 작품의 콘셉트를 구상하고, 형태를 결정하고, 마지막 디테일을 완성한 사람은 로댕이었기 때문이다. 조수들은 로댕의 스케치대로 작업했고, 로댕은 그 결과물을 보며 "여기를 더 깎아라" "이 부분을 매끄럽게 해라" 지시했다. 최종 선택과 마무리는 언제나 로댕의 몫이었다.
이제 AI 이야기로 넘어간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AI가 창작자를 대체할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AI는 에펠의 인부들이고, 로댕의 조수들이다. 도구일 뿐이다. 매우 뛰어난 도구이긴 하지만, 여전히 도구다. 에펠탑의 진짜 창작자가 에펠인 것처럼, AI를 사용해서 만든 작품의 진짜 창작자는 그것을 기획하고 설계하고 감독한 사람이다.
AI에게 "SF 소설을 써줘"라고 명령하는 것과, 에펠이 인부들에게 "철골을 여기 세워"라고 지시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에펠은 이미 머릿속에 완성된 탑의 설계도를 갖고 있었다. 어떤 하중을 견뎌야 하는지, 바람의 저항을 어떻게 최소화할지, 미적으로 어떤 비율이 아름다운지 모두 계산했다. 그래서 인부들에게 정확한 지시를 내릴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AI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창작자가 먼저 무엇을 만들 것인지 명확히 알아야 한다.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어떤 감정을 전달할 것인지, 어떤 구조로 완성할 것인지 설계해야 한다.
로댕이 조수들의 작업을 감독하듯, AI의 결과물도 창작자가 감독해야 한다. AI가 생성한 텍스트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로댕이 조수가 깎은 대리석을 보지도 않고 전시하는 것과 같다. 말이 안 된다. 창작자는 AI의 결과물을 보고 "이건 좋고, 이건 별로고, 여기는 수정하고, 저기는 완전히 다시 해야겠다" 판단해야 한다. 그 판단력이 바로 창작자의 본질이다.
중요한 건 최종 선택이다. 에펠이 수백 개의 설계안 중에서 하나를 선택했듯이, 로댕이 수십 개의 시안 중에서 최종 형태를 결정했듯이, AI 시대의 창작자도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단 하나를 선택하는 사람이다. 그 선택에는 창작자의 철학이 담긴다. 세계관이 담긴다. 미학이 담긴다. AI는 선택하지 못한다. AI는 확률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답을 제시할 뿐이다. 하지만 예술은 그럴듯한 게 아니라 옳은 것, 아름다운 것, 진실한 것을 추구한다.
나는 AI를 조수로 고용한 셈이다. 매우 유능한 조수다. 24시간 일하고, 불평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만큼 수정해준다. 하지만 그 조수는 내 지시 없이는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다. 내가 "이런 느낌의 장면을 써줘"라고 하면 초안을 내놓는다. 나는 그걸 보고 "여기는 감정선이 약하고, 저기는 대사가 어색하고, 이 부분은 완전히 다시 써야겠다" 판단한다. 그리고 수정을 지시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작품이 완성된다. 마지막에 남는 건 나의 선택, 나의 판단, 나의 미학이다.
두려워할 필요 없다. 에펠은 인부들 때문에 일자리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인부들 덕분에 더 큰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다. 로댕은 조수들 때문에 창작자로서의 가치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조수들 덕분에 더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다. AI도 마찬가지다. AI는 창작자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창작자가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창작자는 진짜 창작자여야 한다는 것. 설계할 줄 알아야 하고, 감독할 줄 알아야 하고,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인풋'이다. 감독하고 선택하려면 창작자에게 인풋이 있어야 한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더 나은지 판단하려면 본인이 갖고 있는 지식과 지혜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AI가 쏟아내는 할루시네이션을 가려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창작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AI가 되어버린다.
에펠이 건축을 몰랐다면 인부들을 고용해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철골의 하중 계산을 못했다면, 바람의 저항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구조역학의 원리를 몰랐다면 에펠탑은 설계도조차 그릴 수 없었다. 로댕이 조각을 몰랐다면 조수들이 아무리 뛰어나도 명작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인체의 비율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감정을 표현하는 자세를 알지 못했다면, 대리석의 질감을 다루는 법을 몰랐다면 조수들에게 어떤 지시도 내릴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AI를 사용하는 창작자도 자기 분야의 전문가여야 한다. 스토리를 아는 작가, 미학을 아는 화가, 음악을 아는 작곡가. 그 전문성이 바로 인풋이다. AI가 만든 결과물을 보고 "이건 캐릭터의 성격과 맞지 않아" "이 장면의 감정선이 어색해" "이 색감은 주제와 어울리지 않아"라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없으면 AI는 그냥 장난감일 뿐이다. 아니, 더 나쁘다. 주인을 잃은 도구는 위험하다.
결국 AI 시대의 창작이란 이런 것이다. 기획은 인간이 하고, 실행은 AI가 돕고, 최종 선택은 다시 인간이 한다. 에펠처럼 설계하고, 로댕처럼 감독하고, 그리고 자기 이름으로 책임진다. 그게 창작자의 길이다.
철골 하나하나를 조립한 인부들의 이름은 역사에 남지 않았지만, 에펠의 이름은 영원히 남았다. 그게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게 창작자의 무게다. 모든 책임을 지는 사람, 모든 영광을 받는 사람. AI 시대에도 이 원칙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