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의 게임』을 보자. 수십 명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네드 스타크, 존 스노우, 대너리스, 티리온, 세르세이, 아리아… 각자의 이야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이건 멀티 플롯 드라마다. 여러 주인공의 서사가 교차한다.
하지만 당신이 가장 몰입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라.
네드가 처형당할 때, 레드 웨딩에서 롭이 죽을 때, 대너리스가 드래곤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를 때.
그 순간 당신은 다른 캐릭터를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그 한 명만 보고 있었다. 그 한 명의 고통, 승리, 절망에만 집중했다.
그게 바로 모노 드라마의 순간이다.
멀티 플롯 드라마는 착각이다. 겉으로는 여러 인물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개의 독립된 모노 드라마가 병렬로 배치되어 있을 뿐이다.
『왕좌의 게임』 시즌 1을 다시 보자.
네드 스타크 중심의 에피소드가 있고,
대너리스 중심의 에피소드가 있고,
존 스노우 중심의 에피소드가 있다.
각 에피소드는 그 캐릭터의 관점에서만 진행된다. 카메라는 그 캐릭터를 따라간다. 그 캐릭터가 모르는 것은 관객도 모른다. 그 캐릭터가 느끼는 것을 관객도 느낀다. 이게 모노 드라마의 원리다.
『브레이킹 배드』가 위대한 이유는 이걸 정확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62개 에피소드 전부가 월터 화이트의 시점이다. (*현재 애플TV 에서 방영중인 플루리부스 역시 그렇다)
월터가 없는 장면은 거의 없다. 있다 해도 극히 짧다.
제시의 이야기도, 행크의 이야기도, 스카일러의 이야기도 모두 월터의 렌즈를 통해 굴절된다.
관객은 월터의 뇌 속에 갇혀 있다. 그의 합리화를, 자기기만을, 서서히 무너지는 도덕성을 실시간으로 경험한다. 이게 모노 드라마의 힘이다. 관객은 주인공과 하나가 된다.
『그래비티』를 보자. 91분 러닝타임 중 라이언 스톤이 화면에 없는 시간은 5분도 안 된다. 카메라는 그녀를 떠나지 않는다. 그녀가 우주에서 회전할 때 관객도 회전한다. 그녀가 산소가 부족할 때 관객도 숨이 막힌다. 그녀가 포기하려 할 때 관객도 절망한다. 이게 모노 드라마의 극단적 형태다. 주인공=관객. 둘은 분리되지 않는다.
『록키』도 마찬가지다. 록키가 없는 장면은 단 한 씬도 없다. 에이드리언과의 로맨스도, 미키와의 훈련도, 아폴로 크리드와의 대결도 모두 록키의 관점에서만 진행된다. 관객은 록키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그의 자존감 회복을 직접 체험한다. 15라운드를 완주할 때 관객도 함께 완주한다.
그렇다면 왜 모든 드라마는 결국 모노 드라마일까?
답은 간단하다.
인간의 뇌는 한 번에 한 명에게만 깊이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이론적 마음(Theory of Mind)'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추론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추론은 한 번에 한 명에게만 집중될 때 가장 정확하다. 두 명, 세 명, 열 명의 마음을 동시에 추론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드라마는 관객에게 한 명을 선택하게 만든다. "이 사람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보라"고.
『왕좌의 게임』이 후반부에 무너진 이유도 여기 있다.
초반 시즌은 각 캐릭터의 모노 드라마가 명확했다.
네드 에피소드, 대너리스 에피소드, 티리온 에피소드.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너무 많은 캐릭터를 한 화에 우겨넣기 시작했다. 시청자는 누구의 관점으로 봐야 할지 혼란스러워졌다.
존 스노우를 따라가다가 대너리스로 넘어가고, 티리온으로 넘어가고, 세르세이로 넘어간다.
각 캐릭터의 화면 시간은 5분도 안 된다. 깊이 몰입할 시간이 없다. 그래서 후반 시즌은 스펙터클은 화려했지만 감정적 울림은 약했다.
반대로 『브레이킹 배드』는 끝까지 월터 화이트의 모노 드라마를 유지했다. 제시가 중요한 캐릭터지만, 제시의 이야기도 월터의 렌즈를 통해 본다. 행크가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도 월터의 공포를 통해 경험한다.
단 한 순간도 월터의 관점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은 62개 에피소드 내내 월터와 함께 호흡한다. 그의 타락을, 몰락을, 마지막 구원을 온전히 체험한다.
『쓰리빌보드』의 밀드레드를 보자.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밀드레드의 이야기다. 윌러비 서장이 중요한 캐릭터지만, 그의 죽음도 밀드레드의 반응을 통해 의미를 갖는다. 딕슨 경찰관이 변화하지만, 그 변화도 밀드레드와의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영화는 한 여성의 분노와 치유를 따라간다. 다른 캐릭터들은 모두 그 여정의 조연이다.
이게 드라마의 본질이다.
주인공 하나를 정하고, 그 주인공의 장애와 갈망을 명확히 하고, 그 주인공이 변화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는 것. 다른 캐릭터들이 있어도 좋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주인공의 여정을 돕거나 방해하는 존재여야 한다. 주인공의 렌즈를 통해 굴절되어야 한다.
습작생들이 가장 많이 범하는 실수가 이것이다.
"내 드라마는 멀티 플롯이에요. 여러 명의 이야기를 다뤄요."
아니다. 당신의 드라마도 결국 모노 드라마다. 여러 명의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각 에피소드는 한 명의 관점으로 서술되어야 한다. 그 한 명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 한 명의 변화를 따라가야 한다.
『왕좌의 게임』처럼 진짜 멀티 플롯 드라마를 쓰고 싶다면?
각 캐릭터를 개별 모노 드라마로 취급하라. 네드 스타크 에피소드를 쓸 때는 네드만 보라. 대너리스 에피소드를 쓸 때는 대너리스만 보라. 그들의 이야기가 교차할 때도, 그 순간의 관점이 누구인지 명확히 하라. 카메라가 누구를 따라가는지 관객이 알아야 한다.
관객의 뇌는 정직하다. 한 번에 한 명의 마음만 읽을 수 있다. 두 명을 동시에 따라가라고 하면 혼란스럽다. 열 명을 동시에 따라가라고 하면 아무도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위대한 드라마는 모두 모노 드라마의 원리를 이해한다.
월터 화이트 하나. 라이언 스톤 하나. 록키 발보아 하나. 밀드레드 헤이즈 하나. 한 명의 인간이 장애를 만나고, 갈망을 품고, 변화하는 과정. 그게 드라마의 전부다.
당신의 드라마에는 주인공이 몇 명인가? 세 명? 다섯 명? 열 명? 아니다. 주인공은 하나다. 나머지는 모두 조연이다. 그 하나를 정하라. 그 하나의 장애를 찾아라. 그 하나의 초목표를 설정하라. 그 하나의 변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라.
그것이 드라마다. 그것이 모노 드라마다. 결국 모든 위대한 이야기는 한 명의 인간에 관한 것이다.
당신이 쓰는 이야기도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