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을 검토하다 보면 공통된 패턴이 보인다.
첫 10페이지에 주인공이 세 명 등장한다. 각자의 이야기가 따로 진행된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제 드라마는 세 명의 주인공이 각자의 여정을 거쳐 마지막에 만나는 구조입니다."
듣기만 해도 피곤하다. 읽어보면 더 피곤하다.
세 명 모두 얕다. 세 명 모두 지루하다. 세 명 모두 응원하고 싶지 않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왜 작가지망생들은 한 명의 주인공을 깊이 파는 대신 여러 명을 동시에 다루려 하는가?
답은 명확하다. 도망치고 있기 때문이다.
『왕좌의 게임』의 착각부터 시작하자.
조지 R.R. 마틴은 천재다. 그는 수십 명의 POV 캐릭터를 다룬다. 각 캐릭터의 챕터가 독립된 시점으로 작동한다. 마틴은 30년 경력의 작가다. 그 전에 수많은 단편과 장편을 썼다. 『왕좌의 게임』은 그의 첫 작품이 아니다.
그런데 습작생들은 첫 작품부터 마틴을 흉내낸다. 캐릭터 하나 제대로 못 쓰는 상태에서 여러 명을 동시에 굴린다.
결과는?
열 명 모두 평면적이다. 시청자는 누구에게도 몰입하지 못한다.
20페이지마다 시점이 바뀐다. 막 A 캐릭터에게 정이 들려는 순간 B 캐릭터로 넘어간다. B 캐릭터 이야기가 재미있어지려는 순간 C 캐릭터가 등장한다.
시청자는 지친다. 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린다.
"『왕좌의 게임』은 성공했잖아요?"
맞다. 하지만 당신은 조지 R.R. 마틴이 아니다.
마틴도 처음부터 멀티 POV를 쓴 게 아니다. 그는 수십 년간 단일 주인공 이야기로 글쓰기 근육을 키웠다. 멀티 POV는 마스터 레벨의 기술이다. 초보가 시도할 영역이 아니다.
두 번째 이유는 "복잡한 게 대단해 보인다"는 착각이다.
작가지망생들은 생각한다. "주인공 하나만 쓰면 단순해 보여. 여러 명을 동시에 다루면 더 깊어 보이지 않을까?"
틀렸다. 복잡함과 깊이는 다르다. 복잡함은 여러 개를 동시에 다루는 것이다. 깊이는 하나를 끝까지 파고드는 것이다.
『브레이킹 배드』월터 화이트.
62개 에피소드 내내 그 한 명만 따라간다. 단순한가? 월터라는 한 인간 안에 무한한 복잡성이 있다. 선생님, 아버지, 남편, 범죄자, 천재, 괴물. 그 모든 층위가 한 사람 안에 들어 있다. 이게 진짜 깊이다.
반대로 열 명의 주인공을 동시에 다루면? 각 캐릭터에게 할당할 수 있는 시간이 10분의 1이다. 깊이를 포기하고 폭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는 폭이 아니라 깊이에 감동한다. 한 인간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고 싶어한다. 열 명의 표면을 스치는 게 아니라.
세 번째 이유는 "한 캐릭터를 깊이 파는 것의 어려움"이다.
월터 화이트를 600분간 끌고 가려면 그 캐릭터를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그의 과거, 트라우마, 욕망, 두려움, 모순, 자기기만, 변화의 계기. 모든 걸 알아야 한다. 어렵다. 정말 어렵다.
그래서 작가지망생들은 도망친다.
"주인공 A가 막히네? 괜찮아, 주인공 B로 넘어가면 돼. B도 막혀? 괜찮아, C가 있어."
한편, B는
같은 시간, B는
이런식으로 어떤 문단을 시작 한다면 뭔가 잘못 돼 가고 있는 거다. 주인공으로 안 풀려 도망치는 중이다. 깊이를 회피하는 전략이다. 한 우물을 깊이 파는 대신 열 개의 얕은 웅덩이를 만드는 것이다.
반대로 해야한다. 막히면 더 깊이 판다.
월터가 막히면 월터의 과거로 간다. 왜 그레이 매터를 떠났는가? 왜 그렇게 자존감이 낮은가? 왜 스카일러와 결혼했는가?
한 캐릭터를 깊이 파면 무한한 이야기가 나온다. 여러 캐릭터로 도망칠 필요가 없다.
네 번째 이유는 "내 이야기는 특별해서 여러 주인공이 필요해" 라는 자기합리화다.
아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다. 모든 이야기는 결국 한 인간의 변화에 관한 것이다. 그 한 인간을 제대로 그리는 게 먼저다.
"하지만 제 이야기는 정말 세 명이 필요해요. A는 서울에서, B는 부산에서, C는 뉴욕에서 각자의 사건을 겪고, 마지막에 만나서..."
그렇다면 묻겠다. 그 세 명 중 누가 주인공인가? "
세 명 다 주인공이에요."
그렇다면 다시 묻겠다. 시청자는 누구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봐야 하는가?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이야기는 문제가 있다. 시청자는 한 명의 관점을 선택해야 한다. 세 명을 동시에 따라갈 수 없다. 뇌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다섯 번째 이유는 "한 캐릭터에 대한 책임의 부담"이다.
주인공 하나에 모든 걸 걸면 부담스럽다. 그 캐릭터가 재미없으면 전체가 무너진다. 그래서 작가지망생들은 위험을 분산시킨다. "A가 재미없어도 B가 있고, B가 재미없어도 C가 있어."
이건 보험이다. 하지만 보험에 든 순간 승부는 끝난다.
위대한 작가는 보험 들지 않는다. 월터 화이트 하나에 모든 걸 건다. 라이언 스톤 하나에 91분을 건다. 록키 발보아 하나에 영화 전체를 건다. 이게 용기다. 그래서 감동이 온다.
여섯 번째 이유는 "잘 쓰기보다 많이 쓰려는 욕심"이다.
주인공 하나로 600페이지를 채우려면 그 한 명을 정말 잘 써야 한다.
하지만 주인공 세 명이면? 각자 200페이지씩만 쓰면 된다. 훨씬 쉽다. 양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청자는 양이 아니라 질에 감동한다.
『노인과 바다』를 보라. 산티아고 노인 하나. 바다. 물고기. 그게 전부다.
약 100여 페이지. 하지만 그 안에 인간 존재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이게 밀도다. 이게 깊이다.
일곱 번째 이유는 "한 캐릭터로 오래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주인공 하나를 600페이지 끌고 가려면 중간에 지루해질 수 있다. 작가 자신도 지루하고 시청자도 지루할 수 있다. 그래서 20페이지마다 다른 캐릭터로 전환한다.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하지만 이건 증상 치료다. 근본 원인은 캐릭터가 얕기 때문이다. 캐릭터가 깊으면 600페이지도 모자란다.
월터 화이트는 62개 에피소드를 끌고 갔다. 지루했는가? 전혀. 매 에피소드가 새로운 발견이었다. 왜? 월터라는 인간이 그만큼 깊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한 명부터 시작하라. 당신의 첫 작품은 단일 주인공으로 써라. 그 한 명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라. 막히면 더 깊이 파라. 다른 캐릭터로 도망치지 마라.
"하지만 『왕좌의 게임』은..." 『왕좌의 게임』은 마틴의 여섯 번째 장편이다. 당신의 첫 작품과 비교할 수 없다. 마틴은 수십 년간 글쓰기를 연습했다. 당신은 이제 시작이다.
"하지만 요즘 드라마는 다 멀티 플롯이..." 아니다. 『브레이킹 배드』는 모노 드라마다. 『베터 콜 사울』도 모노 드라마다. 『왕좌의 게임』조차 각 에피소드는 한 명의 POV를 따라간다. 겉으로는 멀티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개별 모노 드라마의 집합이다.
당신이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에서 주인공을 한 명만 선택하라. 나머지는 모두 조연으로 내려라. 그 한 명의 관점으로 전체 이야기를 다시 써라.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처음에는 막막할 것이다. "이 장면은 B의 관점이 필요한데..." 필요 없다. A의 관점으로도 쓸 수 있다. A가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하게 만들거나, 나중에 듣게 만들거나, 결과만 보게 만들면 된다. 모든 이야기는 한 명의 관점으로 서술 가능하다.
그러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이야기가 단순해지면서 동시에 깊어진다. 시청자는 한 명에게 집중할 수 있다. 그 한 명의 여정에 완전히 몰입한다. 클라이맥스에서 울고 웃는다.
이게 단일 주인공의 힘이다. 복잡함이 아니라 깊이. 폭이 아니라 밀도. 여러 명의 표면이 아니라 한 명의 내면.
작가지망생들이 멀티 주인공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결국 하나다. 두렵기 때문이다. 한 캐릭터를 끝까지 책임지는 게 두렵다. 그 한 명이 재미없으면 어쩌나 두렵다. 분량을 채우지 못할까 두렵다.
진짜 작가는 두려움을 넘어서야 한다. 한 명을 선택한다. 그 한 명에게 모든 걸 건다. 막히면 더 깊이 판다. 도망치지 않는다. 그래서 위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월터 화이트. 라이언 스톤. 록키 발보아. 밀드레드 헤이즈. 산티아고 노인. 모두 혼자였다. 혼자서 전체 이야기를 감당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기억한다.
당신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단 한 명만 선택하라. 나머지는 모두 내려놓아라. 그 한 명으로 끌고 갈 용기가 있는가? 있다면 당신은 작가다. 없다면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이다.
멀티 주인공은 도망이다. 선택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