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 심화편
박해영 작가가 인터뷰에서 말했다.
"명목적 주인공은 박동훈과 이지안이지만 사실 이 드라마는 모든 출연진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내비치며 각자의 인생드라마를 펼쳐낸다.
." 『나의 아저씨』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작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시트콤 습관 때문에 모든 인물이 돌아가며 주인공이 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정직한 고백이다. 그리고 정확한 문제 진단이다.
작가 본인도 인정했다. "해당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지적하는 문제점"이라고.
멀티 주인공 설정은 작동하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도, 아무리 좋은 배우들이 연기해도,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다.
박해영 작가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그는 시트콤 출신이다. 시트콤은 앙상블 드라마다. 매 에피소드마다 다른 캐릭터가 주인공이 된다.
이번 주는 A의 이야기, 다음 주는 B의 이야기.
이게 시트콤의 공식이다.
하지만 시트콤과 드라마는 다르다.
시트콤은 에피소드마다 리셋된다. 다음 주가 되면 모든 게 원점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누적된다. 캐릭터가 변화한다.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간다.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을 보자. 작가는 그를 "말이 별로 없어서 사건을 추진하는 인물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마크하는 사람이지 저지르는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이건 치명적이다. 주인공은 사건을 추진해야 한다. 주인공은 선택하고 행동하고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박동훈은 마크만 한다. 관찰만 한다. 그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지안이 주인공인가? 그녀는 확실히 사건을 추진한다. 행동한다. 결정한다. 하지만 박해영 작가는 그녀 하나에 집중하지 않았다. 대신 "모든 출연진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내비친다"는 구조를 선택했다.
박동훈의 형제들, 이지안의 과거, 회사 사람들, 모두가 자기 이야기를 갖는다.
결과는? 16개 에피소드 내내 관객은 누구의 관점으로 봐야 할지 헤맨다. 박동훈을 따라가다가 이지안으로 넘어가고, 형제들 이야기로 넘어가고, 회사 이야기로 넘어간다. 각 캐릭터가 화면에 있는 시간은 짧다. 깊이 몰입할 틈이 없다. 이게 멀티 주인공의 함정이다.
"하지만 『나의 아저씨』는 성공했잖아요?"
맞다. 하지만 성공했다고 해서 구조가 옳은 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만약 단일 주인공 구조였다면 얼마나 더 강력했을까?
박해영 작가는 정직했다. "인물이 한번 등장했으면 극 중에서 자기 인생을 살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건 작가의 책임감이다. 하지만 동시에 함정이다. 모든 인물에게 자기 인생을 주려다 정작 주인공의 여정이 희석된다.
김은숙 작가를 보자. 그는 한국 드라마계의 거장이다.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태양의 후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모두 히트작이다.
하지만 김은숙 드라마의 패턴이 있다. "거의 모든 드라마의 플롯이 남주인공 중심으로 전개된다." 비평가들이 지적하는 부분이다. "대부분의 여주인공들은 지나치게 수동적이거나 매력도 없이 그려진다."
그런데 『더 글로리』는 다르다. 완전히 다르다.
문동은 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이야기다.
김은숙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문동은 혹은 자료 조사를 하며 읽었던 실제 학교폭력 피해자가 진짜 내 딸이라고 가정하며 대본을 썼다."
이게 핵심이다. 내 딸. 한 명. 그 한 명에게 모든 걸 걸었다.
『더 글로리』는 김은숙의 첫 복수극이다. 로맨스가 아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김은숙이 쓴 드라마 중 가장 강력한 여성 주인공이 나왔다. 왜? 그녀 하나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남주인공도 있다. 주여정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문동은의 복수를 돕거나 방해하는 존재다. 주인공은 문동은 하나다.
문동은이 화면에 없는 장면이 거의 없다. 그녀의 과거, 현재, 계획, 고통, 분노, 인내. 모든 것이 그녀를 통해 드러난다. 관객은 16개 에피소드 내내 그녀와 함께 호흡한다. 그녀가 복수를 완성할 때 관객도 함께 완성한다.
김은숙은 멀티 주인공의 유혹을 물리쳤다. 여주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여주의 과거도 충분히 한 시즌을 채울 수 있다. 하지만 김은숙은 선택했다. 문동은 하나. 나머지는 조연. 이게 작가의 결단이다.
임상춘 작가의 『폭싹 속았수다』를 보자.
넷플릭스 설명은 이렇다. "제주의 1960년대를 보낸 어린 애순과 관식, 그리고 서울의 1990년대를 살아가는 중년의 애순과 관식의 모습을 교차시키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두 주인공처럼 보인다. 애순과 관식. 둘 다 중요하다. 둘 다 화면에 많이 나온다.
하지만 자세히 보라. 애순의 일대기다. 관식은 애순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애순이 사랑하는 사람, 애순을 지켜주는 사람, 애순과 평생을 함께하는 사람.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애순이다.
임상춘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지금 무척 잘하고 있고, 잘 살고 있다고 응원하는 글을 쓰고 싶다."
누구를 응원하는가? 애순을. 1950년 제주에서 태어나 2025년까지 살아온 한 여성을. 관식은 그 여정의 동반자다. 중요한 동반자지만 주인공은 아니다.
『폭싹 속았수다』가 감동적인 이유는 60년 시간대를 다루면서도 초점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애순의 어머니 광례도 나온다. 애순의 딸 금명도 나온다. 3대 여성의 이야기다. 하지만 카메라는 애순을 따라간다. 광례와 금명은 애순의 과거와 미래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만약 임상춘이 "애순, 관식, 광례, 금명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16개 에피소드가 산만해졌을 것이다. 각 캐릭터에게 평등하게 시간을 주려다 아무도 깊이 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임상춘은 선택했다. 애순 하나. 나머지는 모두 그녀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조연.
세 작가, 세 작품, 하나의 교훈. 주인공은 하나여야 한다.
박해영은 정직하게 고백했다. "모든 인물이 주인공"이라는 구조의 한계를.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그 문제를 지적한다고. 시트콤 습관이 드라마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김은숙은 자신의 패턴을 깼다. 남주 중심에서 여주 중심으로. 여러 캐릭터의 로맨스에서 한 여성의 복수로. 그리고 그 결과는? 김은숙 드라마 중 가장 강력한 주인공. 가장 명확한 주제. 가장 선명한 감동.
임상춘은 듀얼 주인공처럼 보이는 구조를 썼지만 실은 단일 주인공이다. 애순의 일대기. 관식은 그 여정의 가장 중요한 동반자지만 렌즈는 애순을 향한다. 60년을 다루면서도 초점이 흔들리지 않는다.
습작생들이 가장 많이 범하는 실수가 이것이다. "제 드라마는 세 명의 주인공이 있어요. A, B, C 모두 중요해요. 모두에게 자기 이야기가 있어요."
질문하겠다. 당신의 드라마 주인공은 누구인가? "
A와 B 둘 다요"라고 답한다면 틀렸다.
다시 질문하겠다. 관객은 누구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봐야 하는가?
"둘 다요"라고 답한다면 당신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당신은 박해영이 아니다. 물론 나도 아니다.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김은숙처럼 결단하라. 문동은 하나. 나머지는 조연.
임상춘처럼 선택하라. 애순 하나. 관식은 동반자.
주인공은 하나다. 단 하나여야 한다.
"하지만 제 이야기는 정말 두 명이 필요해요..." 아니다. 필요 없다. 당신이 두려운 것이다. 한 명에게 모든 걸 거는 게. 그 한 명이 재미없으면 어쩌나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보험을 든다. 주인공 A가 안 되면 B가 있다고. 하지만 그 순간 둘 다 얕아진다.
박동훈은 왜 약한 주인공인가? 작가가 그 하나에 모든 걸 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지안도 있고, 형제들도 있고, 회사 사람들도 있다. 모두에게 자기 이야기를 주려다 정작 주인공이 희석됐다. 박해영 본인도 인정했다. 박동훈은 "사건을 추진하는 인물이 아니다"라고. 주인공의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로버트 맥기가 말했다.
문동은은 왜 강한 주인공인가? 김은숙이 그녀 하나에 모든 걸 걸었기 때문이다. "진짜 내 딸"이라고 생각하며 썼기 때문이다. 다른 캐릭터들도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문동은의 복수를 위해 존재한다. 주인공은 문동은 하나다.
애순은 왜 60년을 끌고 갈 수 있는가? 임상춘이 그녀 하나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관식이 있어도, 광례가 있어도, 금명이 있어도 렌즈는 애순을 향한다. 카메라는 그녀를 떠나지 않는다.
한 명만 선택하라. 나머지는 모두 내려놓아라. 그 한 명이 사건을 추진하게 만들어라. 박동훈처럼 마크만 하는 주인공을 만들지 마라. 문동은처럼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고 결과를 감당하는 주인공을 만들어라.
세 명이 필요하다고 느끼는가? 그건 당신이 두려운 것이다. 한 명에게 600페이지를 거는 게. 하지만 김은숙을 보라. 16개 에피소드를 문동은 하나에 걸었다. 성공했다. 임상춘을 보라. 60년을 애순 하나에 걸었다. 감동이 왔다.
박해영의 고백을 기억하라. "모든 인물이 주인공"은 시트콤 습관이다. 드라마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지적하는 문제점이다. 정직한 고백이다. 그리고 정확한 진단이다.
멀티 주인공은 함정이다. 주인공은 하나. 단 하나여야 한다. 그 하나를 선택하라. 그 하나에 모든 걸 걸어라. 그 하나를 끝까지 책임져라.
그것이 드라마다. 그것이 이야기다.
세 명의 작가가 세 작품으로 증명했다. 주인공은 하나여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