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1)

깨진 안정

by 화가 이목

언젠가의 기억이 돌아다니며 만든 작은 파편 하나에도 안정이 깨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것이 아니며 과거의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채 여기까지 걸어왔단 의미입니다. 우린 멈추지 못한 채 앞으로도 계속 걸어갈 거예요. 반복될수록 무뎌지고 내 아픔만 기억한 채 타인의 아픔은 공감하지 못하면서 나아갈 겁니다. 그런 상태인 스스로를 추하다 표현합니다. 실은 그랬던 적 없는데도 더더욱 추락하여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게 됩니다.

혼돈

부정적인 감정에서 피어난 형태는 꽃을 형상화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추하다 여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피워냈지요. 이 작은 전환이 치유가 될 순 없고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정도가 되어줄 겁니다. 적어도 다시 되돌아보았을 때 '이 힘든 와중에도 난 꽃을 피웠네'하며 서러움에 웃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최대한 간단한 형태로 자리 잡기 시작하면 오히려 나을 때가 있더군요. 뒤이어 비슷한 길을 걷는 이에게 날카로운 비수가 아닌 꽃을 나누게 될 거예요. '우리 이렇게 힘든데도 꽃을 피웠네요.' 잠깐의 공감과 위로와 안부. 그리고 각자의 길을 향해 나아가기까지 모든 과정을 혼돈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소용돌이가 치는 거센 파도 같지만,

자세히 보면 작은 꽃들이 피고 있습니다. 어쩌면 숲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로등을 닮은 나무는 위태롭지만 불을 밝혀 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폭풍의 바다

전체를 보면 '나'는 이미 지나온 풍경을 보고 있는 듯합니다. 시간이 흘러 다시 돌아본 풍경은 꽃으로 뒤덮여있을 수도 있고, 파도에 뒤덮여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이 무의미하진 않습니다. '나'는 이미 지나왔고 버텨보았고 그런 상황에도 꽃이 필 걸 알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나올 그림들에 대해 미리 말씀드릴 게 있어요.

지금은 우주와 바다를 주로 사용하여 작업하고 있지만 이전의 저는 나무와 숲, 덩굴, 뿌리 등을 많이 그렸습니다. 제 필명인 '이목 (李木)'은 그렇게 지어졌었지요. 명을 바꾸지 않은 이유는 아직도 그때에 뿌리내리고 머물러 있 의미도 있지만, 지나고 보니 가로수처럼 을 따라 심어진 모습도 되더군요. 렇게 의미를 달리하여 계속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가 지나온 길을 은하수가 밝힌다면 나무는 그 옆에 자라나 쉬어가는 공간이 되어주고 기다려 줄 겁니다. 혹여나 제가 다시 돌아가더라도 그 나무를 보며 위안받을 수 있게 말이죠. 이미 뿌리를 내렸으니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예요. 간이 흐를수록 자라나고 튼튼해지겠지요.

그림이 너무 무겁거나 어렵지 않게 다가가면 좋겠단 생각이 들면 나무나 또 다른 피사체를 이용해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설명을 끝까지 읽지 않더라도 그림을 봤을 때 '그냥 좋다' 란 느낌이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당신의 안정을 바랍니다.


P.S. 이목을 집중하다의 이목이란 뜻으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이 뜻이 더 마음에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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