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석하게도 편한 곳
60*42.5
검은 도화지에 모자이크
해당 작품은 관객참여형 작품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깊은 수면에 잠긴 것처럼 잠식되어 있던 '나'는 수면 위로 보이는 빛을 따라 나아갑니다. 뜯고 나가면 밖은 더 이상 조용하지 않고 거센 파도가 칠 테지만 이곳은 안정이 아니기에 벗어나야 합니다.
모자이크 기법으로 작업 한 이유는 가볍고 조용히 서서히 쌓여 내가 잠식되어 있는지도 모르게 가라앉은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울과 불안은 가볍고 정말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찢어진 종이 하나가 붙었다 한들 금방 털어낼 수 있으니까요. 하나 둘 수가 늘어나 서서히 숨통을 조여 와도 그래봤자 찢어진 종이 하나를 내가 못 털어낼 리 없지 하며 익숙해집니다.
그렇게 가라앉은 '나'는 고요한 물속에 잠긴 것처럼 우울에 오히려 안정감을 느끼며 벗어나기를 거부합니다. 더 이상 혼돈도 불안도 느끼지 않은 이 상황을 괜찮다 느낍니다.
관객들의 반응은 '무서워서 잘 못 뜯겠다'였습니다.
다른 안정과 혼돈에 비해 크기가 큰 데다 알루미늄 액자는 차갑고 무거운 느낌을, 하나하나 쌓아 올린 작은 종이들이 손대지 말란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기에 쉽사리 뜯고 나가지 못했습니다.
이는 의도된 바가 맞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쌓인 감정의 늪이니까요. 발버둥 쳐 나가려 애썼다 다시 가라앉는 순간 이전보다 더 깊이 빠져들게 됩니다. 그럴수록 잠식은 손대기 어려워지고 탈출은 생각도 못하게 된 채 '이 상태도 나쁘지 않은데, 조용하고 안전한 것 같아, 변하려 힘쓰지 않아도 되잖아' 하며 안주하게 됩니다.
벗어난 직후, 이렇게 간단하게 끝날 거면서 그 오랜 기간 괴로워했어야 했나 하며 다시 혼돈과 잠식으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안정과 닮은 형태를 가지고, 격렬한 감정이 소용돌이치지 않는 듯 보이지만 이곳은 안정이 될 수 없습니다. 몇 번을 반복하게 되더라도 머무를 수 없는 곳일 뿐이죠.
아무도 이를 탓할 순 없습니다. 스스로 원해서 들어가게 된 것은 아니니까요. 억지로 끄집어내었다간 눈이 멀지도 몰라요. 스스로 나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테죠. 하지만 그 무엇도 탓할 순 없습니다.
잠식의 이야기는 긴 편입니다. 안정이 깨지고 혼돈으로 가는 과정은 비교적 짧지만 잠식은 끝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더군요. 그 시간을 아까워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무언가 더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며 지금보다 어린 나를 탓하며 항상 그 자리를 맴돌았습니다. 어린 날의 초상은 그렇게 사소한 슬픔들이 쌓여 잠식을 만들어냈고 저는 오랜 시간 동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때의 이야기들을 수십 번 반복하고 원망하다 끝내 부숴 길로 만들고 나서야 '더 이상 모르는 길이 아니네. 이제 다시 돌아와도 아는 아픔이구나' 하며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길은 더 이상 어둡지 않았고 잘게 부숴 빚어진 기억들은 백사장의 모래처럼, 길게 이어져 은하수처럼 반짝거리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초상은 다시 되돌아갈 저를 위한 위로가 된 셈이죠.
잠식이 너무 무거운 이야기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되도록 겪지 않아 이해하지 못하면 더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