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식(2)

어쩌면

by 화가 이목


잠식과 혼돈 중간 상태인 갈망과 시선,

잠식에서 만난 위로를 담은 심해오로라(괜찮다면)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또 다른 형태의 안정
갈망

갈망은 또 다른 안정의 형태와 굉장히 흡사해 보이게 작업했습니다. 잠식을 안정으로 착각하는 상황을 그려낸 것으로 언뜻 보면 잠잠하지만 자세히 보면 수많은 곡선으로 꼬여있는 심리상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서울국제미술대상전 입상작
서울국제미술대상전 입상작

가장 아래에는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어두운 심리상태를 나타내고 있지만 사람들은 겉으론 가장 괜찮은 면만 보여주려 분칠을 할 때가 많지요 수많은 곡선을 가리며 화려한 금색을 진 선만이 밖으로 나와 다른 선들과 마주합니다.

잠식은 본인도 모를 정도인 상황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정말 괜찮은 줄 알고 멀쩡한 티를 내기도 하고, 좀 힘들긴 하지만 다들 이러고 살지 않나 하며 웃기도 하며, 아 이건 들키면 안 될 것 같은데 혹은 너는 모르면 좋겠어하며 가진 것 중 가장 괜찮아 보이는 걸 내세우는 등 모든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황이 좋지는 않지만 꽃을 피웠던 혼돈과 비슷하게 금색 곡선들이 밖으로 나와 또 다른 '나'들과 괜찮다며 이야기하는 상황인 것이지요.


시선

때론 말보다 시선에 위축되기도 합니다. 별거 아닌 그저 스쳐 지나간 것일 수도 있는데 내가 뭘 잘못했나 괜히 움츠러들게 됩니다. 실제론 남을 그리 쳐다보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이미 잠식에 잠긴 마음엔 그런 생각이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눈들을 보면 전부 다른 곳을 향해있습니다. 애초에 나를 보고 있지 않았던 것이죠. 오히려 쳐다보면 눈을 피하는 것도 같습니다. 실체를 알고 나면 그리 겁먹을 필요 없었단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제목 : 심해 오로라 / 부제: 괜찮다면

제 그림은 우주와 바다가 공존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지요. 그림 안에선 어떤 상처도 아픔도 파도에 부서져 은하수가 되어 길을 밝히기 위해서였습니다. 가장 깊은 심해 속 모습을 버드나무와 호수로 표현해 이야기를 풀어보려 작업해 보았습니다. 상세한 설명이나 이야기를 많이 담아야 할 때 여러 피사체를 이용하려는 이유가 첫 번째로 있고, 반대로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보는 이는 한눈에 '어 이건 나무, 호수, 오로라, 공작 꼬리 같기도 하다'로 끝나면 좋겠단 이유가 두 번째로 있습니다.

잠식은 볼 수록 무게가 생깁니다. 곧 씹고 생각할수록 물 먹은 솜처럼 점점 아래로 떨어지죠. 그렇기에 가장 많은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 그림일수록 피사체를 이용해 상황을 단순화시키려는 모순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안정은 푸른빛과 청록으로 침착한 색감을, 혼돈처럼 불안정함은 붉은 계열의 색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호수로 보이는 수면에 닿는 이파리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흰색이죠. 가지에 가까이 갈수록 공작깃처럼 화려하고 점점 붉은빛을 띠죠.

갈망처럼 분칠을 하고 내면을 숨긴 모양새와 비슷합니다. 하지만 수면에 비친 모습은 내가 숨기고자 했던 불안과 닮은 오로라였지요.



나랑 비슷한 상황일까?


성급하게 다가가면 깨져버릴 신기루 같아서 버드나무 이파리를 떨어뜨리며 안부를 묻습니다.

바로 사라지지 않자 버드나무 끝을 살포시 내려놓으며 말을 걸지요. '혹시 괜찮다면, 공감한다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오로라는 깊은 호수를 감추고 화려한 버드나무 잎은 옹이구멍을 가리려 했습니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깊은 공감을 하며 해집니다.

큰 옹이구멍은 더 이상 상처가 아닌 공감의 장소가 되겠지요. 밖에서 안을 볼 수 없지만 안에선 밖을 볼 수 있습니다. 완벽한 쉼터로 변할 테니 '이 그림은 보는 너만 괜찮다면 들어와서 쉬었다 가지 않을래'란 작은 위로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잠식이죠. 약간의 위로와 공감 후 우린 나아가야 합니다. 나무는 붙잡지 않고 보내줄 것입니다. 만일 헤매다 다시 돌아온 지친 '나'를 쉬게 하고 길을 표시해 주기 위해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예요.

그게 이곳이 잠식이란 경고를 대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수면에 비친 모습에, 그 공감에, 위로에서 취해 나가지 못하면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지름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죠.

이곳은 안정이 아닙니다. 우린 계속 나아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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