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필자가 아닌 신분으로 여권을 만드는 일은 그냥 포기를 하는 것이 나을 정도였다.
물론 20년전 얘기다.
병역이 지금도 중요하지만, 그 때는 더 빡세고 빡세서 만약에 미필자가 여권을 만들어서 단 하루라도 귀국을 늦춘다면 보증인에게 700만원 그 이상의 과태료가 붙던 시절이다.
지금은 상상도 하기 어렵다. 미필자가 여권을 만드려면 쌩판 모르는 남, 그리고 부모가 아닌 친척 누군가가 보증을 서줘야만 했다. 적어도 그랬다. 2002년 1월에는...
그렇게 첫 해외여행을 첫 단수여권을 만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그냥 해외를 나가는 것 자체가 몹시도 떨리고 설레고 그랬다.
인도네시아였다. 발리냐고? 그냥 자카르타였다.
학교 동기녀석의 아버지가 외교관으로 인니에 계셔서 그 곳에 2주간 머물기로 했다.
안그럼 나갈 일은 없을테니까...
친구녀석은 가루다 항공을. 우리는 아시아나를 탔었다. 여기서 우리란 나 외에 학교동기 녀석이 또 있었다.
그니까 우리 둘이 간거고, 공항에 외교관 자제가 마중을 나온 것이다.
그냥 신기했다. 공항에서 픽업을 와줘서 집까지 모셔주니 뭐 사실 여행이라고 하긴 그랬지만, 암튼 첫 해외여행은 강렬했다. 영어도 모대서, 외교관 자제가 다 알아서 해줬고, 그냥 2주간 잘 지내다가 왔다.
그리고 군필자가 된 이후 다시 거의 6년 만에 나갔던 곳은 일본 도쿄다.
그 때 만나던 여자친구와 3박 4일 일정으로 다녀왔는데, 뭐 나쁘지 않았다. 굳이 안가도 될 도쿄 디즈니랜드만 제외하면... 사실상 가이드북을 보고 답습하는 수준이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는 대외활동 입상으로 베트남 연수를 다녀왔다. 뭐 하노이-하롱베이-호치민 코스다. 나쁘지 않았다. 패키지라서 그냥 버스타고 내리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끝.
그리고 정말 여행이라고 할만 한 것은 유럽-아프리카였다.
퇴사를 준비하면서 이직할 생각은 1도 안하고, 그냥 이 나라를 좀 탈출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대충 찾아보니 런던으로 해서 시계 방향으로 돌아라 파리로 해서 반시계로 돌아라 런빠 코스였다. 싫었지만, 초짜라서 런인빠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표도 너무 많아서 그냥 예전에 누나가 타고 괜찮았다던 캐세이퍼시픽을 그냥 질렀다.
비수기라 그리 비싸진 않았다.
뭘 준비를 해야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고 싶지도 않았다.
만나던 여자친구가 백팩은 하나 사줘서 거기에 대충 때려박고 출발을 했다.
이 여행이 가장 강렬했고, 강력했다.
삼십대 초반 이었으니까, 돈도 있고, 카드도 있고, 배도 나왔고, 사회경험도 대학생보다는 좀 더 있고 말이다.
퇴사자 인더하우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