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가좋아서 Jun 13. 2019

소믈리에는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다

내 20대 초반의 아르바이트와 직업은 대부분 와인과 관련 있었 다. 아무래도 학교에서 와인을 배웠다 보니 실제 현장에서 와인을 써먹고 싶은 마음이 컸다. 처음 와인 관련된 일을 한 것은 군 전역 을 하고 나서였다. 그때 나는 와인을 공부하는 사람이 우리나라 술을 모르면 될까싶어 전국을 돌며 그 지역의 막걸리를 마셔보는 여행을 계획했다. 그 경비를 모으려고 평일에는 이탈리아 레스토 랑을 주말에는 백화점 와인샵에서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쉬지 않 고 세 달을 넘게 일했다. 아마 다시 일주일 내내 일을 하라고 한다면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삶의 낙은 일과 여가의 적절한 균형 이 대치되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평일에는 홀 서비스를 주말에는 판매를 하면서 학교에서만 배 우던 와인을 직접 다루게 되었다. 이후에도 호텔, 수입사 등에서 작게 작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나는 서 울로 그리고 소믈리에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소믈리에는 다양한 사전적인 의미가 있지만 바나 레스토랑에서 식음료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소믈리에 라는 직업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아니 의미는 명확하지만 실제 현장에서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게 정확한 판단일 것 같다. 소믈리에는 결국 서버 안에 포함되는 직업이지만 프랑스 등 와인 생산국이나 와인 시장의 규모가 큰 나라들은 서버와 소믈리에의 개 념이 구분된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그 구분이 형식적일 뿐더 러 그 역할이 크게 다르지 않다. 역시 현실은 학교에서 배운 것만 큼이나 와인이 달콤하지 않았다. 대개 학교라는 공간은 솔직하지 못하다. 소믈리에의 본질 서비스보다는 겉 포장된 멋진 이미지와 화려함을 강조하는 식이 많다. 


근본적으로 누구를 스승으로 두냐 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지만 소믈리에과가 아닌 홀 서버과 혹은 웨 이터과가 되었을 때 과연 이 과에 입학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있 을까?  나는 소믈리에로 일을 하면서 손님에게 와인을 추천하고 손님 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큰 보람을 느꼈다. 와인에 대 한 여러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이 정말 즐거웠지만 그 즐거운 시 간만큼이나 회의감을 느끼는 시간도 많았다. 쉽게 마셔보지 못 할 와인을 아무렇지 않게 마시는 사람들을 본다거나 그래도 와인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내가 정작 5만 원짜리 와인 한 병 구매하는 것 을 일주일치 식비와 비교하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나를 상 당히 괴리감 들게 했다. 물론 나는 서울에서 자취를 했기에 더욱 그러한 측면이 컸다. 서울에서의 자취생활은 눈을 뜨는 순간부터 눈을 감는 순간까지 모든 것이 비용으로 계산되었기 때문이다. 또 서비스를 받은 손님이 감사의 의미로 좋은 와인 한 잔을 건네주신 것을 네 다섯 명이서 테이스팅 한답시고 우르르 몰려드는 걸 누군가는 배움의 기회이자 공부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 배움의 기 회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허탈함을 느꼈다. 그 박탈감과 허무함을 타고 올라가면 역시 가장 주된 원인은 서비스업에 대한 인식과 전문성 대우가 굉장히 열악하다는 점이었다. 


완전히 같은 비교가 될 수는 없겠지만, 기차 안에서 승객을 안 내하고, 간식거리를 판매하면서 승객의 편의를 위해 노력하는 승 무원, 비행기 안에서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고, 식사와 와인을 준 비하면서 승객의 편의를 위해 노력하는 스튜어디스, 호텔에 오는 고객을 위해 객실을 안내하고 맛있는 식사와 편의를 제공하기 위 해 노력하는 호텔리어 그리고 레스토랑 혹은 바에서 손님에게 맛 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즐거움을 드리는 서버들의 본질은 결코 다 르지 않다. 하지만 유난히도 대한민국에서는 비행기, 기차, 호텔 안에서 서비스하는 사람은 꽤 근사한 사람이고 홀이라는 가장 일 상과 맞닿은 공간에서 서비스하는 사람은‘아무나 할 수 있는 일’. ‘조금 막 대해도 상관없는 사람들’등 상대를 조금 낮추어보는 시각을 가진 경향이 많다. 


우리는 서비스를 파는 것이지 인격을 파는 것이 아니다. 서비스 는 쉽게 생각하면 응대-판매 두 가지 과정을 거치는 아주 단순한 일이지만 하나씩 파고들면 결코 단순한 것이 없었다. 손님을 맞이 하는 순간부터 손님이 나가는 순간까지 아주 많은 공부가 필요한 직업이다. 내부적으로는 업장의 경영을 위한 경제, 경영 공부가 필요하고 성장을 위한 사회, 문화, 트렌드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 는지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가게 안의 분위기와 음식 또 술을 어 떤 식으로 어떤 감성을 담아 손님을 자극할 것인지 마케팅에 대한 공부도 필요하다. 


외부적으로는 손님의 기분이 어떤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손 님을 보고 파악할 수 있는 심리적인 공부, 대화를 통해 최대한 만 족을 줄 수 있는 화술, 판매 증진을 위한 업셀링 공부까지 하나씩 파고들면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판매-응대라는 단순한 과정에 이루어지는 절대 쉽지 않은 작은 비즈니스를 하는 직업이다. 세부적으로 나누어보면 이토록 많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직업임 에도 그만한 대우와 처우를 못 받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현 실이기도 하다. 과거보다 나아졌느니 이런 어이없는 비교가 아닌 상식적으로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생기고 인식이 변할 수 있기 다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0살, 소주 대신 와인을 만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