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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G를 쓰면 얼마나 맛있게요

외식과 음식과 MSG

by 식작가

혀는 우리를 맛있는 맛으로 인도한다


짠맛,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 어린 시절 우리는 인간의 혀는 5개의 맛을 느끼게 설계되어 있다고 배웠다. 하지만 매운맛이 사실은 통증의 일종이었음이 밝혀지고 그 자리를 대신해 새로운 맛의 종류가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것은 바로 '감칠맛'. 우리가 모든 음식에서 찾는 그 감칠맛. 우리의 요리를 그토록 어렵고도, 쉽게 만드는 것이 이 감칠맛이며 사실 우리의 혀는 이 감칠맛을 탐닉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감칠맛이 미치도록 나는 음식을 먹으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식욕이 돈다. 자꾸만 젓가락이 향하게 하고 다른 맛과 섞이면 그 어떤 음식도 부럽지가 않다. 풍부한 감칠맛은 우리가 그 음식을 먹게 하는 아주 중대한 이유 중 하나이며 감칠맛이 떨어지는 음식을 먹으면 우리는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인류 역사에 존재해 왔던 조리법과 레시피들을 거슬러 가다 보면 결국은 식재료에서 어떻게 감칠맛을 끌어낼 것인가를 고심한 흔적들이 곳곳에 보인다. 그것은 한식에서도 마찬가지다. 한식에 존재하는 육중한 레시피들을 들여다보면 참다양하게 감칠맛을 뽑아낸다. 찌고, 삶고, 끓이고, 지지고, 발효시키는 전 과정이 감춰진 감칠맛을 끌어내고 그것을 증폭시키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는 맛있는 맛을 좋아하니까.


요리를 해본 사람을 알겠지만 깊은 맛을 내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때깔은 그럴듯하게 나와도 깊고 진한 맛이 이상하게 부족할 때가 있다. 단순히 짜고, 매운 것을 넘어선 감칠맛을 원하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우리는 조미료를 사용한다. MSG. 이 마법의 가루만 있으면 감칠맛을 아주 손쉽게 창조해 낼 수 있다. 가루로, 액상으로, 고형으로 수많은 모습이 존재하지만 결국 우리가 MSG를 쓰는 이유는 동일하다. 복잡한 과정을 생략하고 맛을 극한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우리의 요리에 MSG를 첨가한다. 이제 등장한 지 100년이 겨우 넘은 MSG는 우리가 먹는 음식을 알게 모르게 많이도 바꿔 놓았다. 그렇게 낯설면서도 친숙한 MSG. 하지만 이름부터 어딘가 인공적이고 화학적일 것 같고 건강에 해로워 보인다. 고작 흰색의 가루일 뿐인데 아주 조금만 넣어도 음식의 맛이 아예 바뀌어 버린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물질이다. 너무 맛있어서 끌리지만 건강을 생각하면 끊어야지 싶다가도 진짜 해로운 게 맞는 건가 싶다. 우리 곁에 늘 존재했지만 손가락질 받아왔던 MSG. 최근까지도 한국 외식업계의 화두였던 MSG. MSG는 왜 그리 뜨거웠을까.




아지노모토와 미원


인간의 역사와 함께 걸어온 여타 조미료들과는 다르게 MSG는 개발된 시기도 비교적 최근이고 제조자와 제조법이 명확히 나와있는 조미료다. 최초의 MSG는 일본의 한 화학자가 개발했고 이를 상용화한 것이 최초의 MSG 브랜드인 아지노모토다. 한국 최초의 MSG였던 미원 역시 이 아지노모토가 기원이다. 아지노모토는 발매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특히 당시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유행했는데 가정집을 비롯한 식당에서 손쉽게 고기 맛을 낼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 덕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평양냉면 편에서도 말했지만 일제강점기 한양의 평양냉면 맛을 균일화한 것이 이 아지노모토, 즉 MSG였다. 해방이 되고 한국 사회가 현대로 접어들었지만 이 MSG의 인기는 그칠 줄 몰랐다. 아지노모토 대신 미원과 다시다를 사용했을 뿐 우리가 먹어온 음식에는 MSG가 꾸준히 들어갔다. 그 사이 MSG는 아시아 전역을 넘어서 전 세계에서 통용되었다. 서양에서는 순수한 MSG 대신 고형의 스톡을 주로 사용하지만 결국 이 스톡 안에 MSG가 들어갔기 때문에 맛의 근원은 다를 바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형태와 제조법, 맛 등이 미묘하게 변하긴 했지만 MSG라는 물질 자체는 변함없었다.


인기의 이유는 명확했다. 너무나도 쉽고 간편하고 저렴하다. 우리가 아는 감칠맛은 사실 쉽게 말해 고기맛이다. 고기를 씹었을 때올라오는 진한 고기맛. 고기를 먹는 것은 고기맛을 느끼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인류가 어떤 동물인가. 고기 말고도 다른 것에서도 고기맛을 느끼고 싶었다. 국물, 탄수화물, 채소 등에서도 고기맛이 나기를 원했다. 자연적으로 고기에 스며든 고기맛을 다른 식재료에 이식하는 것은 굉장히 품이 많이 든다. 정성과 시간을 들여 조리를 해야 한다. 심지어 한국은 경제가 안정권에 접어들기 전까지 일반 서민이 고기를 맛보는 것도 힘든 국가였다. 이런 상황에서 고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저렴하게 고기맛을 어떤 음식에서나 나게 해주는 MSG는 사랑받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고기에 MSG를 더하면 기존 고기 맛에 더하여 그 맛은 배로 상승한다. 예로부터 '맛=돈과 시간'이라는 공식을 무너뜨린 것이 MSG다. 아지노모토에서 시작된 MSG는 그렇게 전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국적을 불문하고 어떤 음식에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게 음식을 맛있게 해 준다. 인간이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




화학이라는 최악의 오명


MSG라는 것을 떠올리면 우리는 사실 긍정적인 것을 먼저 떠올리지는 않는다. 이름부터 어딘가 기계적이고 인공적으로 보인다. 소금, 후추, 설탕, 고춧가루처럼 익숙하기보다는 차가운 기계에서 생산된 현대적인 느낌의 조미료라고 생각되기 마련이다. 사실 어쩌면 당연하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앞선 조미료들과는 달리 그 역사가 짧다. 게다가 마법의 가루처럼 폭발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과하게 맛있어져서 건강에 해로운 것은 아닐까 하고 넘겨짚는다. 실제로 MSG는 오랫동안 화학첨가물 취급을 받아왔다. '화학'이라는 단어는 자연이 아닌 사람의 손을 거쳐, 독하고 유해한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MSG는 대부분 자연에 존재하는 것을 발효시켜 추출한다. 추출하는 공정에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지만 결코 유해한 과정을 거치지는 않는다. 이것은 최초의 MSG였던 아지노모토부터 현재에 새롭게 출시된 MSG들도 마찬가지다. MSG를 먹는 것으로 질병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MSG 앞에 화학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유해물질로 취급해 왔다. MSG는 수많은 식품첨가물 중 하나일 뿐 화학첨가물이 아니다. 그러나 수많은 연구와 과학적인 증거들이 뒷받침해줌에도 우리가 오랫동안 가져온 인식을 변화시키기란 쉽지 않았다. 여전히 MSG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MSG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해외에서도 MSG가 화학첨가물로 인식되고 기피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에서만큼 박해를 받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유독 MSG가 신음했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음식이 곧 약이라는 생각을 가져왔다. 한약에서 사용하는 약재들도 우리가 음식으로서 섭취하는 것들도 있다. 동의보감 역시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식재료의 효능을 써놓은 것이다. 예로부터 이 땅에서 우리는 잘 먹는 것으로 병을 물리치고자 했다. 현대의 양의학만큼의 치료효과를 낼 수는 없었어도 나름 오랜 시간 검증되어 온 방법이었다.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은 곧 건강이라는 지배적인 인식은 근대를 거쳐 현대까지도 이어졌다. 안부인사가 밥일 만큼 음식에 진심인 한국에서 음식에 화학첨가물을 넣는 것은 천인공노할 짓이었다. 마치 먹을 것에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음식을 먹어서 건강해져도 모자랄 판에 건강을 해치는 짓은 용납할 수 없었다. MSG가 화학첨가물이고 건강에 해롭다는 소식은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에서 유래 없는 MSG 침체기를 만들었다. 식당에서도 MSG 쓰는 것을 숨겼고 가정에서는 천연조미료가 유행했다. MSG는 점점 설자리가 없었다. 적어도 한국 땅에서는.




여기도 MSG, 저기도 MSG


MSG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극에 달했던 시절, 각종 미디어에서는 MSG에 대한 부정적인 소식을 쏟아냈다. MSG를 일절 쓰지 않는 식당을 착한식당이라 칭찬하며 상패를 주고 뉴스에서는 MSG를 과하게 쓰는 식당을 비판하며 한국인의 식습관을 꼬집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 모여 MSG는 우리 식탁에서 내쳐질 뻔 했다 하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MSG 미원과 다시다는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냈다. 이들을 추격하는 새로운 MSG 제품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이런 반MSG 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2000년대와 2010년대를 지나면서 소비자들이 MSG가 유해한 식품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다. 그즈음 해서 미디어에서도 은근슬쩍 MSG를 더 이상 비난하지 않았다. 유튜브라는 1인 미디어가 유행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고 많은 전문가들과 요리사들이 유튜브에 나와 치킨스톡을 비롯한 조미료를 스스럼없이 사용했다. 그들은 MSG가 건강에 해롭지 않다고, 많은 식당과 요릿집이 MSG를 사용한다고 그 실체를 까발렸다. 건강에 대한 젊은 소비자층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MSG가 진짜 건강에 해로운 것인지 알아서 찾아보았다. 미디어에 비친 단편적인 모습으로 MSG를 판단하지 않았다. MSG는 서서히 과거의 오명에서 벗어나는 듯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MSG가 화학첨가물이라는 이유만으로 기피한 것은 아니다. MSG가 가지는 본질적인 성질을 정당하게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MSG의 유해성 이외에 주된 비판점은 효과가 강해도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외식업에서 표현할 수 있는 맛이 획일화되었다. MSG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다 보니 어떤 음식을 먹어도 입에 짝짝 붙는 감칠맛 넘치는 그 맛이 되었다. 실제로 맛집이라고 불리는 많은 식당들이 MSG 덕을 보았다. 우리가 맛집이라고 먹었던 떡볶이와 고깃집 된장찌개의 맛을 내는 원료는 MSG인 경우가 많다(아닌 경우도 많지만). 과거에는 MSG가 내는 감칠맛을 내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이 필요했다면 이제는 MSG를 넣는 것으로 그 노력을 대체한다. 외식업 일선에 MSG를 앞세운 수준 미달의 식당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MSG에 대한 거부감을 가졌다. 그 맛은 좋지만 여기도, 저기도 쓰이는 MSG 덕에 이골이 났다. 한마디로 질린 것이다.


MSG를 쓰면서 재료의 질도 하락하는 경우가 생겼다. 우리는 왜 상한 식재료에서 역한 맛을 느낄까. 왜 우리는 신선한 식재료에 끌릴까. 애초에 우리는 왜 맛있는 것에 손을 뻗을까. 오랫동안 음식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어 왔다. 예로부터 그 자체로 맛있는 음식은 고열량, 고영양이었다. 고기가 맛있는 이유는 필수 영양소인 단백질과 지방이 함유되어 있고, 칼로리가 높기 때문이다. 신선한 채소가 맛있는 이유는 식이섬유와 비타민이 우리 몸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맛있다고 느껴서 그것을 섭취하게끔 하는 것이다. 우리 몸은 그렇게 설계되었다. 상한 음식에 구역질이 나는 것도 그것이 몸에 해롭기 때문이다. 상한 음식이 맛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먹을 테고 몸이 금방 상할 것이다. MSG는 자연계의 오랜 법칙을 깨부쉈다. 상한 음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질 낮고 싸구려의 식재료로 만든 음식에서 감칠맛이 나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식욕이 돋게 만든다. 결국 이런 질문에 도달한다. MSG가 어떤 음식이든 맛있게 만들어 주는데 구태여 값비싼 식재료를 쓸 이유가 있는가? 이 유혹에 빠져든 식당이 참 많았다. 미디어에서 접하는 비위생과 거짓으로 점철된 식당들이 하나같이 MSG를 썼다. 당연했다. 비양심적인 식재료를 MSG에 감춰야 했으니. MSG는 잘못이 없었다. 그것을 그렇게 악용한 외식업주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그 잘못의 화살을 MSG로 돌린 감이 없지 않아 있다.




MSG가 식탁에 스며든다


하지만 지금은 MSG만 들어도 난색을 표하던 그 시절이 아니다. 식당에서도 MSG를 쓰지 않는다고 억지로 발악하지 않는다. 양식집에서는 치킨스톡이 요긴하게 쓰이고, 한식집에서는 음식의 부족한 맛을 보완하기 위해 다시다를 쓴다. 그렇다고 우리는 그 식당을 나쁜식당이라고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언제부터 그랬나 하면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아마도 음식과 요리가 미디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그랬던 것 같다. 스타 셰프들이 방송가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들은 물론 유려한 조리기술과 전문지식을 뽐내며 자신의 주가를 올렸지만 때로는 솔직하고 소탈한 모습도 보였다. 뉴스 앵커나 PD보다 직접적으로 외식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방송에 출연하면서 발언권을 가졌다. 스스럼없이 방송에서 MSG를 썼다. 건강에 나쁜 것이 아니라고, 적당히 쓰면 조리에 아주 유용하다고 MSG를 본의 아니게 변호했다. 그 후에는 유튜브와 같은 뉴미디어 시장에서 요식업 종사자들과 준전문가들이 나와 다방면으로 MSG를 사용하여 MSG의 오명을 벗겨냈다. 더하여 외식업 트렌드가 값싸고 저렴한 음식이 아니라 프리미엄으로 향했다. 저렴하더라도 하다못해 가성비라는 이름으로 어느 정도의 품질을 보장했다. 덕분에 질 낮은 재료로 후려치는 식당은 적자생존에 의해 줄어들었다. 애초에 레드오션이었던 외식업이기도 했기에 식재료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식당들이 나가떨어진 것도 있었다.


이제 우리는 안다. MSG를 쓰는 것이 무작정 나쁜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적재적소에 쓰이는 MSG는 우리 혀를 즐겁게 한다. 맛있는 음식을 내놓는 식당에서 MSG를 쓴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배신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불과 몇 년 만에 MSG에 대한 인식은 많이도 바뀌었다. 천연 조미료만 사용한 건강한 식탁이 우리의 속을 편하게 해 주고 재료 본연의 맛을 끌어내는데 용이하지만 가끔은 밖에서 먹는 감칠맛 폭발하는 음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열심히 요리를 하다 보면 부족한 2%를 채워야 할 때가 있다. 간단하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싶은 때가 있다. 때는 언제나 있고 우리는 MSG를 필요로 한다. 혹시 모를 일이다. 훗날 어느 식품공학자가 MSG를 단점은 없애고 장점만 살린 완벽한 첨가물을 발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MSG를 멀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음식이 하나의 맛을 좇는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문제가 되겠지만 적당히라는 단어가 있다. 엄마의 레시피를 보면 항상 적당히가 따라온다. 소금 적당히, 고춧가루 적당히, 참기름 적당히. MSG도 적당히. 이제 MSG 적당히는 어색한 단어가 아니다. 우리는 맛있는 것에 끌리기 마련이고, 그것이 합당한 방법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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