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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Jun 27. 2024

불닭볶음면이 이럴 줄은 몰랐지

서구권을 강타한 불닭볶음면에 대하여 

  리액션을 보며 낄낄거리던 나는 


  한동안 내 또래 학생들에게 그것은 절대적인 인기를 얻었다. 신라면에 이은 새로운 매운맛의 척도가 되었고 한국인의 매운맛 내성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이벤트성으로 출시되어 불꽃같은 삶을 살다 스러질 줄 알았던 그것은 수많은 시리즈를 양산해 내며 삼양을 일으켜 세운 장본인이 되었다. 출시즈음 그것에 열광했던 학생들은 이제 라면 한 두 봉지쯤은 쉽게 살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탄탄한 콘크리트 소비층을 이뤘다. 


  매운 것을 원체 못 먹었던 나는 그것을 처음 먹어보고는 생각했다. 이건 내 기준에 음식이 아니었다. 도전, 장난, 재미, 일종의 유희거리 정도였다. 유튜브에서 영국남자가 영국 본토에 한국 문화를 소개해 주면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그것이 있었다. 매운맛에 익숙지 않은 영국인들에게 그것은 엄청난 고통을 선사했고 일그러지는 표정과 흐르는 땀방울에 나는 그리고 우리는 묘한 희열을 느꼈다. 


  우리의 매운맛이 이 정도다. 우리가 매운 것을 이 정도로 잘 먹는다. 그렇게 한동안 좋은 볼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먹이는 것 역시 평생의 볼거리가 될 수는 없었다. 영국남자도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는 방향으로 넓혀갔고 종종 그것을 콘텐츠 소재로 써먹었지만 늘 써먹지는 않았다. 강렬했던 두 문화의 만남은 재미를 남기고 잔잔히 사그라들었다. 더 강렬할 두 번째 만남을 기약하면서 



  더 맵게, 그리고 덜 맵게 


  불닭볶음면 오리지널의 대성공 이후 불닭볶음면은 수많은 맛들을 출시 했다. 내 기억에 처음은 더 맵게였다. 핵불닭과 탕면처럼 기존보다 더 맵게 만든 것이다. 학창 시절 호기롭게 핵불닭에 도전했다가 혀를 뽑고 싶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기숙사생이었던 나는 당시에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더 맵게 이후에는 덜 맵게로 바뀌었다. 


  불닭이 많은 인기를 끌었다지만 매운 것은 여전했다. 한국인이라고 매운 음식을 다 잘 먹는 것은 아니다. 그에 따라 불닭의 매운맛을 중화시킬 수 있는 여러 레시피가 등장했다. 치즈와 마요네즈를 뿌리고 다른 라면과 섞었다. 그것에 착안했는지 그때부터는 강도를 낮춘 맛들이 공식적으로 출시되었다. 그즈음 해서 라면뿐만 아니라 불닭은 만능 소스로써 온갖 음식에 첨가되었다.


  일개의 라면이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이자 IP로 발돋움했다. 너무 문어발식으로 제품을 출시하는 것 아니냐, 불닭 소스에 별 것을 다 섞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결국은 그런 확장과 혼합이 지금의 불닭볶음면을 있게 했다. 특히 덜 맵게 하는 전략은 완전히 성공했다.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사람들도 불닭의 매력을 맛볼 수 있게 했다. 그중에서도 그 매운 것을 잘 못 먹는 사람들에 타국의 소비자도 포함된 것이 아주 주요했다.



  까르보나라 + 불닭볶음면 


  덜 맵게 만든 불닭볶음면 중 가장 성공한 제품은 아무래도 까르보불닭이다. 직관적인 이름처럼 까르보+불닭으로 기존 불닭볶음면에 치즈와 크림 분말수프를 뿌려먹는 제품이다. 분말 덕택에 불닭볶음면의 매운맛이 많이 중화되고 크리미한 맛이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나는 군대에서 이 제품을 참 많이도 먹었는데 원체 매운 것을 못 먹는 나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바로 이 까르보불닭에 서구권이 열광했다. 아무래도 나랑 같은 감상 아니었을까? 미치도록 매운 오리지널의 맛을 부드럽게 바꿔주고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익숙한 크림과 치즈 분말이 첨가되었다. 


  단지 불닭이라는 제품 하나의 영향력 때문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한류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콘텐츠의 결과물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인조차 매워하는 이 라면이 해외에서 이토록 인기가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비판적인 시각에도 브랜드의 가지를 넓혀간 삼양과 불닭의 승리다. 까르보가 아닌 그냥 불닭이었다면 이 정도로 반응이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가오는 시장을 피하지 않는 방법


  삼양의 새로운 시장이 비로소 열렸다. 그 새로운 시장이 서구권이라는 것은 조금 놀랍다. 불닭이라는 강력한 내수용 브랜드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한류와 함께 두둥실 떠올랐다. 내가 불닭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일까. 솔직히 나도 불닭의 무분별한 소스 남발이 썩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한창때 편의점에 들어가며 정말 모든 상품에 불닭 소스를 발랐었다. 체감상 매주 신상품이 나왔다. 


  나는 그 숱한 신상품들이 오히려 독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브랜드 이미지뿐만 아니라 소스의 맛이 너무 빠르게 소비되어 질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해외 진출에 성공한 지금 시점에서는 다양한 입맛에 대응 가능한 방대하고도 찬란한 아카이브가 되었다. 얼떨결에 근접한 해외시장을 얼떨결에 대응한 느낌이다. 물론 일련의 과정을 얼떨결이 아니었겠지만    


  불닭뿐만 아니라 라면 자체의 인기도 많이 달라진 느낌이다. 관광객들이 가장 호기심 갖고 먹는 것 중 하나가 라면이 되었다. 관광객이 많은 상권의 편의점에서는 앞다퉈 라면 특화 매장을 개점하고 있다.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먹거리가 된 셈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사랑하지만, 또 그만큼 흔해빠진 라면이 말이다.     



젠장, 또 K-라면이야...


  젠장, 또 K-라면이다. 요즘 식품 및 유통 관련 기사를 보면 국내 라면 업체들의 해외 성장세에 꾸준히 주목하고 있다. 비단 삼양뿐만이 아니다. 불닭볶음면만이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가는 것 같지만 업계 전체가 거대해지고 있다. 라면은 이제 한국인만의 작고 소중한 식량이 아니다. 


  한식의 세계화를 내걸며 김치와 불고기, 비빔밥처럼 전통적인 한식을 전면에 내세웠던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웰빙 트렌드와 엮여 조금 더 포멀하고 팬시한 음식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 그래서 라면과 냉동김밥, 만두 같은 공산품의 인기가 참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좋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날, 특별하게 먹는 음식도 좋지만 일상에 은근하게 스며든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안정적이다. 


  CJ의 시작은 설탕이었다. 대상은 미원에서 시작됐다. 국내뿐 아니라 많은 글로벌 푸드 체인들의 시작 역시 하나의 식료품 혹은 제품에서 시작했다. 물론 삼양부터 오뚜기, 농심 등은 이미 국내에서 주요한 식품 제조사다. 그러나 국제무대의 데뷔를 가능케 했던 제품은 단연코 라면이다. 그래서 잠깐 생각해 본다. 어쩌면 한 글로벌 푸드 체인의 시작점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면으로 시작해서 각종 식료품을 전 세계에 팔고 있는 그날까지. 지금이라도 라면 업체의 주식을 사야 할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젠장 또 K-라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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