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카이는 외로워
이곳에 공식적인 팁 문화는 없다. 서비스비용과 세금은 모두 지불할 비용에 녹아있다. 섬으로 가는 샌딩 버스에서 다른 관광객이 팁에 관해 물었다. 한국인 담당자는 팁이 없다고 잘라서 말했다.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과하게 얹어줄 이유도, 의미도 없다고 했다. 처음 보라카이에서도 팁을 낸 기억은 없다. 물론 그때는 지금보다 더 돈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나를 포함한 돈없는 그녀석들과 이 먼곳까지 온 것도 기적이다.
다시 온 보라카이에서 첫 맥주를 마셨을 때였다. 나는 두 병쯤 마셨다. 내 옆 테이블의 커플이 때마침 결제를 하고 있었다. 지폐 몇 장을 내고 동전으로 지급되는 잔돈은 따로 받지 않았다. 가벼운 미소와 함께 단 한 번의 손짓으로 잔돈을 거절하고 감사를 전했다. 옷차림 마저도 가벼워야하는 이곳에서 동전은 꽤 무겁고 번거롭다. 그리고 팁의 개념도 어느정도 녹아있으리라 싶었다. 서비스에 대한 감사함, 선의와 온정, 약간의 동정. 팁이 익숙한 문화권에서 왔을지 모르는 그들은 아주 대수롭지 않게 건넸지만 나에겐 낯선 풍경이라서 더 눈이 가고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여기서 듬뿍 바를 선크림을 사러 마트에 들렸다. 나는 가장 작은 용량의 선크림을 집어서 계산대로 향했다. 가격이 꽤 지저분해서 줄을 서기 전에 동전을 이리저리 뒤져서 가장 적은 양의 잔돈을 받을 수 있는 금액을 맞췄다. 내 바로 앞에서 계산줄을 기다리던 나이가 지긋한 두 명의 서양 노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두께의 납작한 직육면체의 상자를 못해도 6개 정도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캐셔에게 가장 고액권인 천 페소를 주고는 잔돈은 됐다고 대충 손짓으로 말했다. 심드렁하고 무심한 표정과 함께.
예단해선 안되지만 자꾸 예단하고 싶었다. 그들의 표정과 손짓은 서비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가벼운 옷차림에 무거운 동전이 귀찮았을까. 동전을 하나하나 받아서 어딘가에 쑤셔넣고, 다음의 결제에서 눈을 부릅뜨며 동전을 하나하나 세는 것이 구차하다고 생각했을까. 우월한 우리가, 덜 우월한 이들에게 내리는 은총이라고 여겼을까. 과도한 팁은 어딘가의 문화와 경제관념을 좀먹는다는 걸 들어봤다. 이 섬의 물가를 올린게 저들 때문일까 생각하며 나는 은근히 마음을 먹었다.
후에 알게 되었는데 두 노인이 산처럼 계산대에 쌓았던 박스는 모두 콘돔이었다.
그뒤로 나도 그 사람들을 따라했다. 동전이 조금은 불편해지던 참이었다. 항상 친절한 그들에게 내 불편을 보상으로 옮겨주고 싶었다. 식당이나 펍에서 음식값을 지불하고 잔돈은 됐다고 말했다. 지불해야할 금액이 크지 않은데 고액권을 지불했다면 잔돈이 나오기를 기다리곤 지폐만 몇 장 챙겼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돈을 환전했었다. 무언갈 먹고 싶은 마음이 크게 들지 않아 주로 마시기만 하다보니 돈을 쓸 일이 없었다. 이동은 전부 도보로 했고 액티비티 또한 즐기지 않았다. 자그마한 기념품과 선물 몇 정도만 사다보니 돈이 많이 남을 것 같았다. 이 돈을 다시 한화로 환전할 마음은 없기에 다 쓰고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팁을 흉내내길 몇 번, 간만에 진득하게 해변에서 소설을 읽었다. 물론 맥주와 함께. 기묘하게도 동남아시아로 한달살이를 떠난 부부의 팁 지불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묘한 불쾌감과 도덕적 우월감에서 오는 불편함을 자극하는 내용이었고, 나는 제대로 저격 당했다. 몇 개의 사유로 시작한 팁 내기였지만 은연 중에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팁을 받았을 때 고맙다고 하는 그들의 말에 나는 스치듯 우월함을 느꼈다. 화이트비치 뒷편에서 살고 있을 그들의 삶에 내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처음 봤던 그 커플처럼 행동하고 싶었지만 마트에서의 노인들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건 서비스에 대한 고마움, 정성에 대한 대답보다 훨씬 앞선 동전이라는 귀찮음 해소와 웃돈을 얹어줬다는 뿌듯함이었다. 나는 팁을 주면서도 그 다음에 따라올 부수적인 것을 바랐다. 그럼에도 팁을 계속 줬다. 동전을 실제로 귀찮았고, 팁을 지불하고 다음번에 방문하면 체감상 조금 더 친절해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광경을 엄마가, 아빠가 봤다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른다. 혹, 당신이 봤더라도 내 등을 두드리면서 무어라 나무랐을지 모르겠다. 그 모습이 보고싶은 걸지도 모른다. 선의와 낭비와 동정이 적절하게 버무려진 팁을 게속 내면 아무것도 아닌 내가, 아주 조금 의미가 있는 것 같았으니까. 커플과 노인이 팁을 낼 때 내가 바라봤던 것처럼 누군가가 내 모습도 바라봐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라도 팁을 뿌리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