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카이는 외로워
보라카이는 모든걸 다 제쳐두고 화이트비치, 그 해변만 바라보면 된다. 과하게 말하면 보라카이는 이곳이 전부이며, 이곳을 빼곤 보라카이를 논할 수 없다. 보라카이의 존재 이유이자, 보라카이가 이렇게까지 유명하게된 원인이다. 화이트비치 뒷편으로 몸을 옮긴다면 아주 전형적인 필리핀의 낙후된 시골마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빽빽하다. 칙칙하고, 구정물 웅덩이가 곳곳에 보인다. 건물의 철근은 산소와 만나 벌겋게 제몸을 적날하게 보이고 있다. 섬이 품고 있는 거대한 현실을 화이트비치가 전부 끌어안고 있다.
아름다운 곳이다. 우리가 휴양지를 떠올릴 때 전형적으로 생각나는 곳이다. 수키로미터의 백사장이 오목한 모양으로 굽어져 있다. 야자수는 그 해변을 따라 심어져있고 푸른빛 바다가 맞닿아 있다. 해가 드는 날이면 윤슬은 수평선 끝까지 반짝이고 낙조를 보기 위한 돛단배들이 만화처럼 그 위를 유영한다. 그 누구도 불행하지 않다. 모두가 섞여서 햇볕에 몸을 바삭하게 굽고, 바다에 몸을 던진다. 시끌벅적한 노래가 군데군데 흘러나오고 상인들은 끝없이 활기차다. 이곳의 이면을 본다면 지상낙원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단면만큼은 확실히 낙원이 맞다.
수영복을 챙겼지만 결국 종아리 이상 물을 적시지 않았다. 첫 보라카이에서 기억은 물이 꽤 따듯했다는거다. 아주 오랜시간을 놀아도 그리 추워지지 않는 점은 어린 날 친구들과의 시간에선 장점이 되었다. 마치 미온수의 욕탕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하지만 따듯한 바닷물이란건 그리 상쾌하지 않았다. 바닷물의 짠기는 원래 상쾌한 것이 아니지만 그 온도와 만나면서 마치 거대한 육수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았다. 물 안에서도, 밖에서도 시원할 곳이 없었다.
그때의 기억을 살려 수영복을 차려입고 발을 담궜지만 시원했다. 내리꽂는 햇살 아래에서 시원하게 발가락 사이를 파고드는 바닷물이 기분 좋았다. 시원하고 상쾌했다. 땀이 아주 살짝 맺힐 정도로 덥게 청한 낮잠에서 깨어나, 얼음이 한알 띄워진 냉수를 먹는 감촉이었다. 적당한 더위에 온몸을 담그면 시원하기 그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짠물을 뚝뚝 흘리면서 해변의 적당한 펍에서 맥주를 마시면 아주 기분이 좋을지도 몰랐다. 보라카이를 찾은 성인의 여행객이라면 한 번쯤은 그렇게 했다. 지금 내 옆 테이블에 앉은 한국인 가족들도, 그 너머에서 더 가벼운 차림으로 칵테일을 여러잔 시킨 서양인 커플도 그러했다.
그렇게 종아리까지 들어갔다가, 발목까지 나오기를 몇 번. 시원하고 상쾌하다는 감상을 남기고 나는 바다를 빠져나왔다. 상쾌해서 불쾌했다. 상쾌할 줄 몰랐어서 더 불쾌했다. 여기에 내 온몸을 담그면 타성에 젖은 날 꺼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발가락 사이사이와 종아리 높은 곳까지 고운 모래가 달라 붙었다. 화이트비치의 바다와 내 신체의 직접적인 접촉은 이것이 마지막일 것이라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도 보라카이에 가는 마당에 수영은 해야지 싶어 인천공항에서 꽤 비싼 돈을 주고 방수팩까지 샀지만 영 쓸모가 없게 됐다. 그대로 나와 머물고 있는 호텔 앞에서 발을 씻고 맥주를 주문해 해변 바로 앞자리에 앉았다. 이번 보라카이에서 수영은 아무래도 못할 것 같다. 두 번째 보라카이에서 화이트비치는 철저한 관상용으로 남을 모양이다. 나는 부서지는 화이트비치를 그저 응시하고 싶어서 여기에 왔는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