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카이는 외로워
그때도 지금도 비슷했다. 5시간이 안되는 비행시간이지만 유독 칼리보로 향하는 비행기는 너무 길게 느껴졌다. 비행기에서 내려서 차를 타고, 배를 타고, 툭툭이를 타야하는 고된 여정이 있어서였을까. 비행기가 끝이 아니라는 생각에 길지 않은 비행시간임에도 길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이번에도 아니나다를까 시간이 잘 흐르지 않았다. 전날 공항버스에서 한시간 남짓 잠든 것이 수면의 전부였지만 비행기에서 푹 잘 수가 없었다. 뒤척이기를 몇 번, 암흑 속에서 멍때리기를 몇 번. 기껏 공항에서 부랴부랴 다운로드 받았던 드라마는 영 내 취향이 아니었다. 너무 어두워서 혼자 조명을 켜고 책을 읽고 싶지도 않았다. 지루함과 무료함, 작은 후회들을 내뱉기를 오래, 기체는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고 마침내 칼리보 공항에 착륙했다.
참 변함이 없었다. 착륙하는 비행기가 많지 않았고 입국 수속은 길었다. 고작 담당자 셋이서 비행기 하나에서 내리는 모든 여객을 소화해야했다. 요며칠 날이 흐리고 개었다를 반복해서 수상스포츠가 전면 금지되었다는 픽업&샌딩 업체의 말이 무색하게 날은 화창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내 이름을 찾았다. 출발 D-12 시간 전에 부랴부랴 밤 늦게까지 연락이 되는 업체를 찾아 예약을 했던터라 누락이 되었으면 어쩌지하는 불안함이 있었다. 다행히 내 이름은 보기 좋게 써있었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서 픽업&샌딩 업체의 사무실 겸 카페로 향했다.
공항 밖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내 긴 추리닝 상하의를 뚫고 피부로 느껴졌다. 계절이 반대되는 곳으로 여행할 때에 드는 간헐적인 설렘은 없었다. 땀을 흘리지 않아도 되는 날씨에서 굳이 이 먼 곳까지 땀을 흘리러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고 있었던 섬과 여름에 대한 그리운 감각을 나에게 일러 주는 것 같았다. 썩 끔찍했다.
스무살 보라카이는 칠흑같은 새벽에 도착을 했었다. 모든 것이 암흑이라 공항 앞에서 더듬더듬 우리들의 이름을 찾고 유심을 구매해서 입도했던 기억이 있다. 한낮의 칼리보는 그래도 조금 달랐다. 생기가 있었고 사람들이 많았다. 비슷한 위치의 숙소 사람들끼리 조인을 해서 차로 출발하는 구조였다. 차를 타고, 배를 타고, 다시 툭툭을 탔다. 거의 두시간이 넘는 긴 여정을 또 해야만 했다.
그렇게 밟은 보라카이는 여전했다. 항구 근처에 바글바글 몰려있는 사람들. 관광객이 듬뿍있는 화이트비치 이외의 지역은 끔찍하게 낙후되어 있는 것까지 변함 없었다. 휴양지의 전형, 여유로움과 복잡함이 공존하는 곳. 그해 겨울에 느꼈던 지상 낙원 같던 이곳. 두 번째 보라카이는 이제 낙원 같지 않았다. 이곳 땅을 밟자마자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았다.
영하의 추위가 오고가는 한국에서 반팔로도 더위를 쫒기 부족한 이곳까지 멀리 왔다. 전날 회사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던 나는 뜨거운 이국으로 왔다. 멀고먼 여기서, 길고긴 여정에서 나는 잊고 싶은걸 잊을 수 있을까. 짊어질 무게처럼 다가온 5일의 연휴를 다 태워버리고 갈 수 있을까.
많은 종류의 여행이 나에게 있었지만 대게는 떠나는 날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여행이었다. 공항에서의 설렘부터 여행지에 내려서 피부로 느끼는 그곳의 날씨. 숙소를 찾아가는 모험과도 같은 그것과 그곳에서 먹을 음식들을 기대하면서 다시 이 공항으로 오는 날이 오지 않기만을 바랐다. 여행이란 보통 그런 것이었다. 고단함과 여독으로 점철되기는 하지만 결국은 그것들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이 익숙해질 때쯤 끝나가고, 그것이 매우 아쉬운 것.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나에게 여행이 아닐지도 몰랐다. 보라카이에서의 모든 것이 빠르게 마무리되었으면 했다. 시간이 아깝다기보다는 여행지에서 의례적으로하는, 해야만하는 것들을 통해서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놓쳤으면 했다. 그 며칠의 밤이 단 하루가 되어도 좋으니 시간을 꽉꽉 눌러서 맞닿아 있기를 원했다. 오늘 해가 지면 삼일 뒤의 해가 곧바로 뜨길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