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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punyee Feb 11. 2021

미국으로 효도 여행 가다(공황장애와 결혼#14)

오래전부터 계획한 어머니의 환갑 여행이 그놈으로 인해 망설여진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부모님은 서로 떨어져 사셨다. 그렇다고 그 전에는 계속 함께 살았다고 할 수도 없다. 고등학교 이전에도 아빠는 한동안 밖에서 생활하다가 집에 들어와서 얼마간 있는가 싶다가도 이내 집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고등학교 무렵부터는 본격적으로 떨어져 살았다. 덕분에 엄마가 생활 전선에 일찌감치 뛰어들어 우리 삼 남매를 키웠다. 아빠를 찾으려고 노력하면 찾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당시에 경제적으로 생활이 빠듯한 상황에서 아빠가 돌아온다고 해도 크게 개선될 여지는 없다고 서로가 암묵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 상태로 20년이 훌쩍 넘어갔지만 그렇다고 서로 이혼을 한 상태도 아니다. 언젠가 우리들이 결혼할 때 이혼한 부모의 자격으로 우리 삼 남매를 바라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이해를 못했지만 지금은 조금 이해가 간다.




이런 엄마가 금년에 환갑이 되는 해이다. 환갑에 가족들이 여행을 가려 오래전부터 우리 삼 남매가 적금을 들어 준비를 했으며 연초에 9박 10일 미국 서부 여행으로 결정했다. 미국행을 결정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공황장애 진단을 받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내가 앞장서서 여행을 계획했다. 오래 준비한 만큼 기억에 남도록 무리를 해서라도 멀리 그리고 오래 여행하기를 원했으며 그렇게 해서 결정된 곳이 미국 서부였다. 나를 포함해 엄마, 누나, 매형, 조카, 여동생 총 6명이 가기로 했다. 이 여행이 다음 주로 다가왔다. 이미 준비를 모두 끝낸 상태이며 각종 비용 등도 모두 지불을 마친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부쩍 심해진 공황장애 증상으로 인해 정신적, 체력적으로 너무 힘이 든 매일매일을 보내고 있는 요즘, 다음 주로 다가온 미국 여행은 엄청난 부담으로 느껴진다. 더구나 오늘도 만원 리무진 버스에서 그놈을 만나고 이렇게 고속도로에 혼자 남겨져 어렵게 국도까지 내려가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방금 전에 누나에게 이번 여행에 내가 빠지는 것이 어떤지에 대해 의견을 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번 여행을 함께하지 못한다면 나머지 모두가 유쾌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안된다. 어떻게 하든 같이 가야 한다.’라는 반응이 나올 것을 뻔히 알면서 물어본 것이다. 그래야 ‘내가 안 가도 되지 않을까?’라는 약간의 희망 자체가 없어질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금요일 러시아워에 파묻힌 택시는 지독하게도 움직이지 않는다. 택시도 별수 없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방근 전의 시골길에 덩그러니 혼자 러시아워가 끝나길 기다릴 수도 없었다. 진퇴양난이다. 요즘 들어 부쩍 진퇴양난의 경우에 처해지는 경우가 많다. 공황장애가 아니었다면 내 인생에서 별로 사용하지 않을 법한 말이지만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들이라면 증상의 강도에 따라 다를 뿐 매일 진퇴양난의 상황을 마주치게 된다. 사실 이런 상황을 만나지 않기 위해 내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으면 됐다. 오늘의 일만 하더라도 김포공항에서 집까지 가는 교통수단에 대해 택시, 버스, 지하철 중에서 고민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반드시 이 세 가지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한다고 정하지 않고 무작정 집 방향으로 걷다가 택시가 보이면 택시를 타고 전철이 보이면 전철을 탔어야 한다. 뭔가를 정해 놓고 그 안에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정상이 아닌 지금의 나를 어떻게든 맞추려 했다. 아니면 이 시간 이후에는 아무런 일정이 없었으니 차리리 김포공항 내의 아무 식당에 들어가 혼자 밥을 먹으며 맥주라도 잔뜩 마시고 러시아워가 끝나면 택시를 타고 집으로 이동해도 됐었다. 뭔가를 걱정하고 고민하는 것조차도 틀을 정하고 그 안에서만 고민하는 내가 우습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온다면 기필코 렇게 하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그렇게 집에 도착하니 시간은 9시가 다 되어 간다. 택시요금도 7만 원가량 나왔다. 김포공항에서의 판단 실수로 집에 오기까지 돈, 시간 모두 낭비했다. 다시 한번 오늘 같은 고민거리가 생기면 아예 회피하든지 아님 남들이 생각 안 하는 방법으로 우회하고자 다짐해 본다.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가 보낸 문자를 확인하고 퇴근하는 길에 전화가 온 것이다. 누나의 반응은 예상했던 대로였고 나도 이미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회사 일정을 조정할 것이며 여행은 같이 갈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그렇게 뭔가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로 여행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여행 당일이다. 엄마와 여동생은 어제저녁 우리 집으로 와서 함께 자고 아침에 같이 공항으로 이동한다. 누나와 매형 조카는 따로 출발하여 인천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 경우에만 해당되는지 모르겠지만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고 해도 익숙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증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엄마와 여동생을 태우고 익숙하게 공항에서 발렛을 맡기고 카운터로 향했다. 누나 일행을 합류하여 같은 패키지 투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입국장으로 들어섰다. 생업을 잠시 뒤로 하고 10일이라는 긴 시간을 할애하여 떠나는 여행이니 만큼 나를 제외한 모두가 들뜬 얼굴이다. 나도 미국은 처음이라 사실 기대가 되지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놈을 만날지 몰라 약간은 긴장하고 있는 중이다. 가족들 앞에서 그놈을 만나 두려움에 떠는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것은 당연하다. 출발 시간까지는 서로 면세점 구경을 하느라 바쁘다. 보기 좋다. 이런 여행에 빠지려고 했던 내가 한심하다. 비행기 안에서 푹 잘 수 있도록 약 하나를 먹었다. 그리고 이미 꽤 많이 달러로 환전했지만 추가로 최대한 많이 환전했다. 현금 쓸 일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공항까지는 인천공항에서 약 10시간가량 소요된다. 돌아올 때는 편서풍의 영향으로 12시간가량 소요된다. 살면서 10시간 비행기는 처음이다. 회사에서 출장으로 비행기는 참 많이도 탔지만 가장 긴 시간 탄 것은 5시간 걸리는 베트남 정도다. 공황장애는 참 불편하다. 혼자 탈 때는 비행기를 타는 것 자체가 무섭지만 익숙한 사람과 있으면 무섭지 않다. 하지만 10시간을 타야 한다고 생각을 하니 또 무서워진다. 10시간 비행은 아직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무섭다고 생각되는 순간 ‘좀 전에 약을 먹었으니 당장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와 또 협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매번 이런 상황에서 생각하고 협상해야 하는 것이 공황장애의 불편함이다. 그러다가 그 협상이 결렬되거나 협상 체를 하지 않으면 그놈이 오는 것이다. 지난번 리무진 버스를 타기 전에도 이 협상을 하던 중에 마무리를 짓지 않고 바로 버스를 탄 것이 화근이었다.


다행히 이번 협상은 잘 마무리가 됐나 보다. 10시간의 비행시간 동안 두 번의 식사와 한 번의 간식이 제공됐으며 다른 가족들과 달리 난 두 번의 식사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그 좁은 이코노미석에서 깨지 않고 꿀잠을 잤다. 엄마가 옆에서 “역시 우리 아들은 비행기를 많이 타봐서 그런지 이런 데서 잠도 잘 자네.”라며 마치 자랑스러운 듯이 말한다. ‘약 기운 때문이야, 엄마.’라고 속으로 대답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바깥공기를 마시고 싶다. 타국의 공기는 나름대로 특징이 있다. 자주 갔던 일본이나 중국의 공기 냄새는 확실히 다르다. 중국 대륙이라고 해도 본토와 홍콩, 마카오의 냄새가 다르다.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았으니 공기부터 확인하고 싶다. 가족들 중 한 명이 화장실에 간 사이 먼저 밖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가자 질 좋은 미국산 햇살이 느껴진다. 약간 건조하며 산뜻한 냄새가 난다. 우리를 태울 버스가 멀리 보인다. 꽤나 크고 웅장하다. 오늘부터 9일 동안 저 버스에 신세를 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더 멋져 보이는 버스다. 옆에 흡연장소가 보인다. 이동하여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면서 눈은 버스를 계속 응시하고 있다. 버스의 좌석은 몇 개나 있으며 사람들이 얼마나 탈 것인지가 궁금했다. 가능한 만석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랜 비행 끝에 문제없이 미국에 도착했고 이곳의 공기를 마시고 상쾌함을 느낄 수 있지만 버스가 만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여전히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이다.


버스에 올라타자 사람들이 절반 정도 앉아 있다. 난 엄마 옆에 앉았고 왠지 창가 쪽에 앉고 싶어 엄마와 자리를 바꿔 내가 창가 쪽에 앉았다. 사실 내가 미국 여러 지역 중에서도 서부를 가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라스베이거스 때문이다. 2000년 초 한국의 한 남자 연예인이 장모를 모시고 미국에 관광을 갔으며 우연하게 들른 라스베이거스의 한 카지노에서 이 장모가 슬롯머신 잭팟으로 약 백억 원가량을 벌었던 일이 있었다. 워낙 영화 같은 일이었기 때문에 당시에 각종 매체에서 이를 앞다퉈 보도를 했을 정도로 나라가 떠들썩했던 사건이었다. 이때부터 꼭 한 번은 가보고 싶었다. 물론 슬롯머신 게임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난 엄마를 모시고 가는 효도 관광이기 때문에 이 연예인과 비슷한 행운이 나에게도 오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감도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버스에 사람들이 모두 타기를 기다리고 있다. 비교적 일찍 앉아 있던 나는 이후에 들어오는 한 명 한 명의 모습을 잘 관찰할 수 있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다. 고등학생 엄마와 아들, 30대 초반의 여성 둘, 인자하게 생기신 할아버지 혼자,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둘,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혼자 등등 다양하다. 혼자서도 패키지여행을 하는 경우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나도 해외 행으로 패키지는 처음이니 초보다.  




그때 피부가 새하얗고 눈이 크고 몸집은 아담한 젊은 여자가 지나간다. 모두가 서로 처음 보는 관계일 텐데 연신 먼저 “안녕하세요.” 인사하며 지나가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다. 보기가 좋다. 요즘 같은 시대에 다 큰 성인이 저렇게 인사성이 밝은 사람은 잘 없다. 나보다는 꽤 어려 보이긴 하지만 순간 저런 사람이 내가 원하는 상대라는 막연한 생각을 해본다.

여자 뒤로 한 남자가 뒤따라 온다. 누가 봐도 일행이다. ‘연인관계 인가? 아니면 둘이 신혼여행을 온 것인가?’라고 생각해 본다. 하기야 방금 이 여자와는 말도 섞어 보지 않았고 누군지도 모르지만 첫 느낌에 내가 괜찮다고 느꼈다면 이미 그녀 주변의 다른 누군가도 나와 비슷한 생각했을 테니 뒤따라 오던 저 남자는 남자 친구이거나 곧 결혼을 앞둔 사이일 것이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 짧은 순간에 노총각 혼자서 온갖 상상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둘이 어떤 관계인지 알고 싶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오랜만에 ‘이 사람이다!’라고 느낀 사람이 있는데 그런 느낌을 받자마자 빼앗겨 버려 너무 아쉬운 기분이라고 할까? 정확히 형용하기 어렵지만 꼭 알고 싶었다. 아직 시간은 9일이나 남았으니 충분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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