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는 날이다. 토요일 오후 두 시, 그녀의 집 근처 한정식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하기로 되어 있다. 밥이 제대로 넘어갈지 걱정이다. 잘 세탁된 양복을 골라 입고 일찌감치 약속 장소로 향했다. 30분 정도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예약된 방의 좌식 의자에 홀로 앉아 그녀와 부모님을 기다린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온갖 상상이 든다. 그때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사정이 생겨 30분 정도 늦을 것 같다고 한다. 차라리 다행이다. 어차피 지금 밥이 넘어갈 것 같지 않다. 여자 친구의 부모님을 만나는 일은 내 인생에서 처음이다. 더구나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야 한다.
38세로 이미 결혼할 나이는 충분히 넘었지만 나는 왠지 아직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아직 내가 한 가정의 가장이 되기에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느낌이다. 그런 내가 지금 결혼을 생각하다니 막연하게 느껴진다. 이미 주변의 친구들이 결혼하여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식을 두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내게는 먼 이야기와 같다. 그녀와의 결혼을 꿈꾸고 있는 지금도 실제로 결혼에 대한 대화가 오간다면 ‘진짜로 내가 결혼을 한다고?’라며 스스로에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남들은 쉽게만 하는 것 같은 이것을 왜 나만 어렵고 큰 벽이라고 느끼는지 의문이다.
어찌 보면 그럴 만도 하다고 생각된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말은 못 했지만 나름 이유가 있었다. 바로 내가 처한 환경이다. 우리 집은 내가 중학교 시절까지는 꽤나 유복하게 살았지만 고등학교 이후 급격히 기울어지기 시작한 가정 형편은 나아질 줄 모르고 계속 곤두박질쳤다. 정확하게 집안의 사정을 알게 된 것은 고3 수능을 마친 이후다. 이미 이때부터 집안을 먼저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한 것 같다. 즉, 경제적으로 남들 앞에 떳떳하게 서는 것이 나의 최우선 과제라고 스스로를 꽤나 채찍질하며 살았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면서부터 누나와 여동생은 독립했고 나는 어머니와 둘이 살게 됐다. 이 시기부터 손에서 일을 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변변한 월셋집 하나 없이 사는 내 환경이 너무 싫었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15만 원의 집이라면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그렇다고 부모님을 탓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야 원래 경제적 능력이 없었던 분이고 심지어 같이 살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만 해준 존재였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 혼자 삼 남매를 키우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께 지금의 상황에 대해 원망의 화살을 돌리기는 싫었다. 다만 주위의 평범한 가정을 부러워하며 살았던 것 같다. 아빠가 매일 출퇴근하여 일을 하고 매월 꼬박꼬박 집에 생활비를 가져다주는 그런 평범한 가정 말이다. 집안을 일으킨다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수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내가 현재 어디까지 왔는지 대략이나마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시기의 내 삶은 경제적으로 빠듯하다 못해 앞이 보이지 않는 시기였다. 군 제대 후 제대로 된 직장을 잡기까지 걸린 약 6년에 걸친 시간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20세 후반부터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형편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도 직접 식당을 운영하게 되면서 우리는 월세, 전세를 거쳐 제대로 된 아파트도 장만했다. 친구들과 지인들 사이에서 나는 여러 어려움을 잘 극복한 사례로 언급되며 종종 칭찬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달리 나는 힘든 상황을 극복한 것에 대해 성취감이나 자랑스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가능한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고 권하고 싶다. 표현하기 쉽지 않지만 그렇게 악착같이 살았던 시간으로 인해 인생의 피로도가 높아져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점차 낮아졌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시작한 경제활동 대신에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보다 생산적인 활동을 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혹시 지금의 내가 집안을 일으킨 소위 자수성가한 30대의 CEO라면 이런 스스로를 비하하는 생각을 하지 않겠지만 현재 평범한 회사원인 내가 아직 제대로 집안을 일으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집안은 곧 ‘나’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나에게 지금의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리고 부모님이 이혼을 한 상황은 아니지만 수십 년간 별거 중인 상황도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서류상으로 두 분은 부부관계지만 실질적으로 나는 편부모 가정에 속한다. 이런 가정환경도 왠지 결혼할 상대에게 떳떳이 공개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아직 집안을 일으키지도 못했는데 더구나 집안에는 이런저런 하자가 많다고 느낀다. 남들이 보면 이런 상황들이 하자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지만 당사자가 느끼기에 하자라고 생각되면 그건 하자인 것이다. 이런 내가 결혼 상대에게 다른 것들은 보지 말고 나만 봐 달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그러기엔 나의 환경이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째서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마치 부모님의 경제력이나 별거 중인 상황으로 인해 결혼은 생각도 못한다고 핑계를 대는 것 같아 어머니께 죄송스럽지만 솔직한 심정이다. 결국 나는 이러한 내 모든 환경을 먼저 다가와 이해하고 걱정 말라며 다 받아줄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을 결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쉽게 있을 리 없다. 아니 없을 수도 있다. 그러니 결혼이 멀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혹여나 내가 최근에 공황장애로 고생하는 이유 중 하나가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던 이런 부담감들이 보이지 않게 나를 갉아먹은 후유증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와 부모님이 오셨다. 두 분의 첫인상은 잊을 수 없다. 말끔한 정장에 넥타이를 착용한 아버님, 그리고 화려한 외투를 걸치신 어머님의 모습은 마치 부잣집 주인 내외를 보는 듯하다. 보통 그 나이의 다른 사람들이 같은 옷차림을 했다고 하면 다소 과하고 어색해 보일 수 있지만 두 분은 위화감이 없이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어쩌다 한 번 이러한 차림을 한 것이 아니고 평소에도 자주 이런 차림으로 다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그녀도 평소와 다를 바 없지만 단정한 원피스 차림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누가 봐도 유복한 가정의 부모님과 그 자식이다. 하기야 그녀의 아버지는 규모가 크지 않다고는 하나 몇몇의 직원과 그 직원의 가족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하는 회사를 운영 중인 대표가 아닌가. 그런 그의 가족이니 그렇게 느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왠지 나만 동떨어진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느낌이 든다는 자체가 왠지 우리 엄마에게 미안하다.
대화의 내용은 예상했던 대로 그녀와 내가 미국에서 만난 내용으로 시작했다. 내가 가이드에게 그녀의 연락처를 알아내어 그녀에게 만나자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아버님은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하려고 했다고 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미국에 혼자 간 것이 아니고 어머니를 포함해 식구들과 함께 효도 여행을 왔다는 얘기를 듣고는 최소한 이상한 사람은 아니겠거니 어렴풋이 생각하셨다고 한다. 이후 한국에서 계속해서 나를 만나던 그녀는 그녀의 어머님께 나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했고 어머님 또한 그런 얘기를 아버님에게 하던 중에 나를 한 번 만나고 싶었다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그녀의 부모님 역시 그녀가 이왕이면 빨리 결혼을 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여자 나이 27세면 아직 이르다는 생각을 하실 법도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 생각은 달랐다. 두 분은 그 시절의 다른 사람들보다 결혼이 좀 늦었고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그녀와 그녀의 동생을 낳았고 그렇게 살다 보니 어차피 결혼을 할 것이라면 빨리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당시에 아직 만나는 사람이 없었던 그녀에게 그녀의 아버지는 주위 사람들을 통해 직접 몇 차례 선을 주선하셨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미국으로 놀러 갔고 거기서 나와 만나게 된 것이다. 긍정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나의 나이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의외로 어머님은 11년이면 차이가 많기는 하지만 본인의 주변에 나이 차이가 많은 부부가 있는데 다들 잘 살고 있으며 오히려 긍정적인 모습만 봐서 그런지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하신다. 아버님은 어머님보다 조금 더 호의적이시다. 내 나이는 개의치 않으시고 오히려 내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호감을 보이신다. 외국계 화학회사에서 법인을 상대로 각종 화학제품을 영업하는 내 직업에 나름 만족하고 있었지만 이것이 매우 훌륭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버님은 본인이 지금까지 일구신 일이 모두 영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판단하셨는지 남자는 영업을 할 줄 알아야 하며 영업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나중에 뭘 해도 할 수 있다고 하신다. 그리고 본인이 하시는 일도 결국은 영업을 기반으로 제조업까지 하게 됐다며 나에게 힘이 될 만한 이야기만 하신다. 뭔가 쓴소리나 충고를 들을 것으로 예상하고 왔던 나는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렇게 식사를 하며 대화를 하던 도중, 아버님이 한 말씀하신다.
“두 사람이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다면 우리 OO가 자네 부모님께도 인사를 드려야 하는 게 아닌가?”
물론 나야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지만 감히 말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 질문 자체가 장인어른이 될 분이 나서서 그 사실을 인정해 주는 것 같아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그녀의 부모님만 반대를 하지 않는다면 그녀와 결혼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나와는 환경이 여러모로 다른 그녀와 결혼을 하는 데 있어서 그녀의 부모님이 반대를 한다면 도저히 이겨낼 자신이 없다. 혹시라도 반대가 있다면 극복하면 되지 않나 하고 반문할 수 있지만 반대를 극복하려는 시도조차도 왠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한 어린아이가 떼를 쓰는 모습으로 보일 것 같아 위축되고두렵다. 난 당연히 우리 부모님께도 곧 그녀를 인사시키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녀 아버지의 제안으로 우리는 서로의 휴대폰 번호를 교환했다. 그녀의 아버지, 어머니의 휴대폰 번호가 내 휴대폰에 저장됐고 내 번호 또한 그녀의 부모님 휴대폰에 저장됐다. 그녀의 부모님이 휴대폰에 나를 뭐라고 호칭하여 저장하셨을지 궁금하다. 서로에게 휴대폰 번호가 저장되면서 그들 만의 울타리에 나도 자연스럽게 소속되는 느낌이 든다. 그녀의 부모님과 만남은 그렇게 좋은 분위기에서 마무리가 됐다. 예상과 달리 우리 둘의 만남을 오히려 반기는 듯한 두 분의 말씀과 행동에 나 또한 기분이 한껏 고조됐다. 한 고비를 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상황이 너무 쉽게 전개되어 불안한 느낌마저 든다.
그녀 부모님과 첫 만남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토요일 오후, 나는 전화로 어머니께 지금까지의 상황에 대해 모두 설명을 했다. 불과 한 달 전에 미국에서 9일 동안이나 같은 버스를 탔고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기도 하고 같은 곳에서 사진도 찍었던 그녀이기에 엄마도 당연히 그녀의 존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미국에서 돌아와 그 짧은 한 달 동안 그녀와 만나고 있었고 오늘 그녀의 부모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왔다는 얘기에 우리 엄마도 꽤나 놀란 눈치다. 다행히 엄마도 그녀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렇게 어리고 꽤나 괜찮은 집안의 처자가 진짜로 나를 좋아해서 둘이 만나고 있고 더구나 그녀의 부모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좋은 평을 받았다는 나의 말에 잘됐다고 말은 하시지만 이런 일련의 상황들이 사실인지 몇 번이고 되묻는다. 우리 엄마가 봐도 그녀가 나에게는 과분한모양이다. 나 또한 그런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생각보다 모든 일들이 순조롭게 되고 있다. 조만간 그녀와 함께 엄마에게 인사를 드리러 갈 예정이니 편한 날짜를 정해달라고 했다.
큰 고비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부모님과 만남이 있은 후 우리 사이는 더욱 가까워졌다. 한국에 돌아와 처음으로 만난 후 겨우 한 달이 조금 넘었지만 마치 몇 년 동안 알고 지낸 사이 같다. 며칠 뒤 평일 오후,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던 중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의 아버지께 걸려온 전화다. 순간 여러 생각이 든다. 그녀의 아버지가 나에게 전화를 할리 없다. 혹시 나에게 할 말씀이 있다고 해도 분명 그녀를 통해 전달했을 텐데 나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는 것은 어떤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 빈 회의실로 달려가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아 본다.
어색하지만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녀의 아버지도 그동안 잘 지냈냐는 인사와 함께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신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듣게나...”
기분 나쁘게 듣지 말라던 첫마디에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며칠 전, 나를 처음으로 봤을 때 사실 서로 만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자리에서는 할 수 없었고 고민 끝에 이제야 만나지 말라고 하기 위해 전화를 하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흉흉하니 자식 둔 아비로서 더구나 딸자식을 둔 아비로서 걱정이 돼서 전화를 했네. 자네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아무래도 자네 나이가 있다 보니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네. 혹시라도 자네가 결혼했던 이력이 있는지 그리고 실제 학교는 제대로 졸업을 했는지 우리가 알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말인데 혼인관계 증명서와 대학 졸업증을 나에게 보내줬으면 하네. 보내고 말고는 자네 마음이겠지만 감출 게 없다면 굳이 안 보내 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네.”
혹여 내가 기분 나빠할까 상당히 조심스럽게 꺼내신 말씀 같았다. 하지만 나는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 결혼의 경력이 없는 것, 그리고 제대로 학교를 졸업했다는 것 정도로 나의 보잘것없는 배경을 증명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런 제안을 해 주신 그녀의 아버지께 감사하고 오히려 이 정도 확인 만으로 괜찮을지 미안할 정도였다.
나는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고 부모라면 당연히 걱정이 될 것이니 기꺼이 보내 드리겠다고 했다. 그러자 본인이 이런 요구를 했다는 것을 그녀나 그녀의 어머니가 알게 된다면 분명 한 소리 할 테니 나와 둘 만 알고 있자고 하신다. 그리고 이 서류들은 당신의 회사로 보내 달라고 하셨다. 둘 만의 비밀이 생긴 것 같아 기분이 더 좋다. 그녀의 가족과 한층 더 가까워진 기분이다.
다음 주, 2015년 9월 20일(일)에 그녀와 우리 엄마께 인사를 하러 간다. 그녀의 부모님을 만난 지 약 2주가 지난 시점이다. 숨이 찰 정도로 모든 게 빨리 전개된다. 그녀를 한국에서 처음 만나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하고 두 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양가의 부모님께 인사를 하게 되는 셈이다. 그녀와 우리 어머니는 지난 7월 미국에서 같은 버스를 탔으니 서로 안면은 있다. 첫 만남이 아니라 어색하지는 않겠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결혼까지 생각하는 상대의 부모님을 만난다고 생각하면 얘기는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