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의 뒷모습을 보며 자라는 아이들
마치 나무의 뿌리가 그 나무의 성장을 좌우하는 것처럼, 부모ㅡ자녀 관계는 한 개인의 성장과 발달, 인생전반에 걸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근간이 되는 것이다.(주 1)
아들이 고학년이 되면서 영어 그룹 수업을 시작했다. 영어공부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시기였으나 주변에 영어 학원이 많지 않았기에 좋은 선생님을 소개받아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수업은 아들 친구 집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수업하는 것을 볼 수 없기에 장소를 제공해 준 친구 엄마에게 아들의 수업 태도를 물었다.
그랬더니,
"아들이 선비예요, 선비!
나이 답지 않게 의젓해요!!
아들이 애어른 같아 좋겠어요!!! "
아니다!! 나는 좋지 않다.
내 아들보고 나이답지 않게 의젓하다고,
애어른 같다고 하는 말이 나는 너무 싫었다.
나는 우리 애들을 애어른으로 키우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버들이는 애가 애같지가 않아! 애어른이야, 애어른!", "버들이 엄마는 좋겠다. 큰딸이 다 해줘서... "
내 기억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듣던 말이다. 그때 나는 이런 말을 들으면 칭찬인 줄 알고 기분이 좋아 엄마를 더 열심히 도왔고, 하고 싶은 말 원하는 것들을 얘기하지 않고 참았다.
'엄마 힘들까 봐, 엄마가 힘들어서 우리를 버리고 도망갈까 봐......... '
엄마는 맏이인 내가 친구 같다고, 친구보다 더 편하다고 늘 말씀하셨다. 그래서 친구한테도 못하는 얘기도 나한테는 할 수 있다고 하시면서 아빠에 대한 불평, 불만을 항상 얘기하셨다.
본인의 감정을 나에게 투사한 것이다
아빠는 일을 벌이고 빚을 졌으며, 엄마는 늘 그 뒤치다꺼리하느라 바쁘셨다.
수금할 돈도 몰래 미리 받아가고, 엄마가 숨겨둔도 몰래 찾아서 가져가 다 탕진했다.
그러면서 집에 음식들을 가져다가 남들을 돕기도 하여 밖에서는 늘 좋은 사람으로 통했다.
그래서 엄마는 늘 아빠는 자신만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너네 아빠는 결혼해서부터 지금까지~"로 말이 시작되면 그 끝은 꼭
"내가 너네 때문에 이러고 산다"
"내가 버들이 너 식모 안 시키려고 집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내가 죽고 싶어도 너희들 때문에 못 죽는다"라는 말로 끝이 난다.
엄마 말을 계속 듣다 보니 나는 엄마 편이 되었다. 그래서 엄마를 고생시키는 아빠가 밉고 싫었다.
그리고 엄마 얘기를 잘 듣다 보니 나의 존재에 대해 엄마한테 무척 미안해졌다.
‘나만 없으면 엄마가 자유로울텐데..,’
그러면서 또 드는 생각이
‘엄마가 도망가지 않게 내가 더 잘해야겠다’였다.
최소한 나 때문에 엄마를 더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동생들을 챙기려 더 노력했고, 돈을 써야 하는 일을 얘기해야 할 때는 정말 최소한으로 꼭 필요할 때만 말을 했다.
나는 그렇게 엄마 말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려고 노력했다.
고등학생 때는 부모님의 도움과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본인이 하고 싶은 얘기를 자유롭게 말하고 밝게 웃는 친구들, 늘 여유롭게 보이며, 어디서나 당당해 보이는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
난 조용하고 참아야 하는 애어른이었기에.....
애어른은 결혼해서도 늘 엄마에게 미안했다. 엄마는 나 때문에 집을 나가지 않아서 결국 저렇게 불행하게 사는데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지.....
아기를 키우며 남편과 마주 보며 웃다가도 행복하지 않은 엄마를 생각하면 미안한 감정이 슬며시 올라와 우울해지곤 했다.
그리고 엄마는 자주 "누구 집 딸은 결혼해서 용돈을 얼마씩 준다고 하더라 ", "친구집 사위가 이번에 선물로 뭐 해주었데" 라며 부러운 듯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고 있으면, 내가 경제적 능력이 없는 남편을 만나고 선택한 것 같아 그것도 엄마에게 미안했다.
남편과 잘 살다가도 엄마의 한마디에 내 존재, 내 가정과 남편을 부정하게 되는 게 너무 속상하기도 했지만 결국 남은 감정은 엄마를 만족시켜주지 못한 미안함이었다.
결혼을 했지만, 정신적으로 엄마와 분리가 되지 않은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엄마에게서의 독립이 나에게는 큰 숙제였다.
엄마가 원하는 효도를 못 해 드리는 것이 못내 죄송하기만 했다.
정서적 삼각관계', 삼각관계(triangle)는 두 사람 사이의 갈등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제삼자(자녀, 일, 물질, 동물)를 내편으로 끌어들여 융합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가족 내 불안, 긴장을 해소하는 정서적 역동 방식이다. 제삼자가 개입하게 되면 두 사람 간의 불안이 세 사람에게 분산되기 때문에 불안이 감소된다.
예를 들어 남편 때문에 속상하고 불안을 느낀 아내는 자녀에게 몰두, 과도한 애착을 보인다. 애착의 대상은 장남, 장녀, 막내 또는 부모 중 한 사람을 가장 많이 닮은 자녀일 수 있다. 이러한 애착은 배려하는 관심이 아니라, 불안에 의한 속박된 관심이다.
남편은 자신의 불안을 덜 수 있기에 특정 자녀에 대한 아내의 과도한 관여를 허용, 속박과 거리감을 강화시킨다.
이러한 투사 과정의 대상, 즉 어머니가 가장 애착하는 자녀는 자아분화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심리적 문제가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녀의 이러한 미발달은 어머니로 하여금 더욱 그 자녀에게 몰두하게 만든다.
어머니는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은 불안을 덜 수는 있으나 자녀를 정서적인 불구로 만들 수 있다.
(가족치료 개념과 방법, Michael P. Nichols 외 1인(김영애 역), 시그마프레스)
나는 어려서 엄마의 감정 투사를 받는 제삼자로 독립성 발달에 손상을 입었던 것이다.
내 가정을 위해 자아분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가정과 사회에서 오랫동안 제대로 적응하며 다른 사람들과 감정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 나의 독립된 생각에 의한 행동을 많이 하게 되며 자아분화 수준이 향상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역량을 키워 주체적인 삶, 자신감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되면서 나는 서서히 엄마에게서 정서적 독립을 하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삶을 산다는 것!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사는 것이고, 나는 내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
각자 본인이 선택하고 판단하며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가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내적 또는 외적 정서적 압력에 직면하게 되어도 유연하고 현명하게 행동하여 나의 자녀들에게 나의 불안한 감정을 전수하지 않게 된 것이다.
엄마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시면서 내린 선택들, 비록 자식들 때문에 내린 판단이라 할지라도 그것 또한 엄마의 선택이고 엄마가 책임지고 살아야 하는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엄마의 선택에 대해 내가 고맙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미안해하고 책임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나는 내 자녀를 키우며 인생을 살아가면서 터득하게 된 것이다.
오십 년 넘게 살아보니 '되어야 했던 딸의 모습'에서 많이 자유로워졌다.
엄마도 " 본인이 잘살아왔다"며 삶을 긍정적으로 통합하시고 하루 하루를 감사하게 여기며 살고 계신다.
이제는 엄마와 독립이 가능하다.
참, 오래 걸렸다..........
누군가 나에게 다시 태어나도 남편과 결혼하겠냐고 질문을 하면 나는 "남편의 딸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남편은 딸에게 엄청난 사랑을 아낌없이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도 큰 사랑을 받는 딸은 그래도 엄마 편이다. 그래서 아빠가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잘못하는 게 보이면 엄청 싫어한다.
그리고 엄마인 나에게 아빠 흉을 보려 할 때가 있다. "아빠는 엄마한테 왜 그러는 거야?"
그러면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아빠는 내 남편이야~, 내 남편은 내가 알아서 해! 그러니까 엄마 딸은 신경 쓰지 마시고 딸 노릇만 하세요~“
그러다 보니 항상 마무리는
”그래, 엄마! 아빠는 엄마 남편이니까....
부부사이는 부부끼리 알아서 하는 걸로~" 가된다.
그렇게 나는 내 감정을 딸과 아들에게 투사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 애들이 자신의 생각, 감정, 마음을 탐색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길 바랐던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우리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풍족하게 해주지는 못했지만 필요한 것,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되도록 갖추어주려고 노력하며 우리 아이들이 애어른이 아닌 자신의 나이에 맞는 아이로 성장하도록 키우려 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나름 노력하며 살았는데 우리 아이들의 일기와 편지를 보고 알았다.
우리 애들이 왜 애어른 같다는 말을 듣게 되었는지......
나와 달랐다!!
나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감정을 받아내며 애어른이 되었고, 우리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생활과 삶의 태도를 보며 애어른이 된 것이다.
나와 남편의 삶!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본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느끼며 학습하고 있었다는 것을, 아빠와 엄마가 성실하게 일하는 것을 보았기에 원하는걸 참기도 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 딸아이 일기 중에서 ]
힘들게 일하며 저녁에 들어오시는 아빠를 보며 '나도 크면 아빠처럼 열심히 일할 거다'라고 하는 아들과 유치원 글쓰기에 만약 내 몸이 개미처럼 작아진다면에 뒷말 이어서 작성하는데 다른 애들 작성한걸 보니 '밥 많이 먹고 빨리 클 거예요', '개미집을 구경할 거예요' 하는데 울 딸의 '개미랑 같이 일할 거야'에 맘이 아팠다.
그런데 딸이 일기장 <우리 가족 자랑>에서 '우리 가족은 다른 사람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오고... 힘이 센 아빠, 공부 잘하는 오빠와 자신 그리고 항상 최선을 다하는 엄마와 우리 가족은 항상 힘을 낸다'는 일기를 읽으며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부분, 내가 말을 해서가 아니라 우리 부부의 모습과 생활을 보며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아이들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부모 자신이 어린 시절 건강하지 못한 양육을 받았어도, 과거 경험을 인식하고, 새로운 방식을 배우고 실천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건강한 부모ㅡ자녀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이는 마치 오래된 정원을 새롭게 가꾸는 것과 같아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결국에는 아름다운 결실을 맺을 수 있다.(주 1)
제도적 기관이 제아무리 좋은 의도로 설립되었어도 일상적인 간섭과 본보기 역할에서 부모를 완벽하게 대신할 수 없다
더욱이 18세 까지는 듣기보다 옆에서 보면서 대부분의 것을 배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부모로서 너희가 행하는 행동이, 너희가 입밖에 내는 말보다 더 중요하다.
'자식이 태어난 첫날부터, 너희는 자식의 본보기다. 첫아이를 갖는 날부터 이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주 2)
그렇게 우리 아이들은 우리 부부의 뒷모습을 보며 애어른에서 어른으로 자라고 있던 것이다.
주 1) 아이는 무엇으로 자라는가. 버지니아 사티어. 포레스트북스
주 2) 삶이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같다. 찰스 핸디, 인플루엔셜
사진. ko_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