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사실 여유가 필요했을 지도 모르겠다
교사가 되니 평생 해볼 일 없을 것 같은 '배구'할 일이 많아졌다.
근무하는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내가 근무했던 첫 학교는 적어도 격주에 한 번 별일이 없으면 매주 교직원들이 모여 배구를 했다. 나에게 배구라고 해봐야 중학교, 고등학교 때 수행평가로 튀겨본 게 전부인 나와는 크게 상관없어보이는 스포츠였다.
운동신경이 특출난 것도 아니고, 운동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터라 배구를 하는 날은 언제나 참 힘들었다. 평소 조용하고, 날아다니는 모기 한 마리 쉽게 잡지 못할 것 같은 교사의 목소리는 어찌나 크고 서브는 매서웠는지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평소 사이가 좋았던 교사들 조차 상대팀이 되는 순간 돌변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공이 인(in)인지, 아웃(out)인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종종 선배선생님들은 인(in)인 공 조차 아웃이라고 박박 우기라고 조언해주었다) 아니 중요하더라도 그렇게 싸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덕분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스포츠 1위는 '학교에서 하는 배구'가 차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배구 절대로 안 해!' 그리고 꽤 이 말을 잘 실천하고 있는 요즘이다.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배구 자체는 꽤나 재미있는 스포츠이다. 묵직한 배구공을 어떻게 하면 바닥에 닿지 않게 할 까 고민하는 것은 생각보다 흥미롭고, 박진감 넘친다. 그런데 배구를 하면서 언제나 익숙해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바로 '서브하는 순간'이다. 서브를 하는 순간은 배구 시합 중 유일하게 완전히 혼자가 되는 순간이다. 배구에이스가 아닌 나에게도 가장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되는 순간이니까.
대단한 서브를 하는 것도 아니다. 플로터 서브(공을 머리 위로 던져서 하는 서브) 같은 어려운 서브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언더핸드 서브를 일관하는데도 여전히 실수가 많다.
연습할 때는 잘만 넘어가는 네트가 경기가 시작되었을 때는 어찌나 높아보이는지….
평소에는 대충 휘둘러도 넘어가는 배구공이 왜 경기만 시작하면 네트에 걸리는 걸까? 내가 내린 결론은 ‘여유가 없어서’였다. 천성이 쫄보(?)라 서브를 하는 순간만 되면 긴장해버리고 만다. 이러다 보니 손동작, 발동작은 제대로 연결되지 않고 공에서 시선을 놓치기 일쑤이다. 무게중심 따위는 생각나지도 않고, 머리는 하얘져 버리고 만다. 서브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학교, 회사, 가정 등 장소를 가릴 것 없이 우리에게 할 일은 항상 많고 몸은 자연스레 지치고 마음은 긴장되고 만다. 일이 쌓일 수록 일은 풀리지 않고, 마음은 아래로 곤두박질 치곤 한다. 부정적인 감정은 나를 감싸기 시작하고, 우리의 사고는 경직되고 만다.
상대방이 보기에는 간단해보이는 것들도 우리는 쉽게 인지하지 못해버리곤 한다. 여유 없는 삶은 우리를 앞만 보고 달리게 할 지도 모른다. 주변을 보지 못하고 오직 앞을 향해가 경주마처럼. 우리의 삶은 언제나 성공적일 수는 없다. 실패가 동반되고, 부족한 점이 생기기 일쑤다.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에게 위로를 던져줄 여유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사실 모두 해결될 일이기도 하겠지만? (웃음) 여유에 여러 조건이 붙는다면 우리의 삶은 반복될 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직된 마음을 위한 마음의 여유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금도 학교에서 배구를 하다 보면 서브를 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다. 여전히 나를 쳐다보는 눈빛에 몸이 얼어버리고 말지만, 요즘은 특별한 의식을 치른다. 휘슬이 울려도 바로 서브하지 않고 잠시 기다린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심호흡도 하고, 공도 몇 번 더 튀겨본다. 그리고 조심스레 공을 띄운다.
여전히 네트를 넘기지 못할 때도 많다.
하지만 이제는 넘길 수 있다는 자신감, 실피해도 괜찮다는 안도감으로 나를 다스린다.
여러분들의 서브는 항상 성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