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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귀국 프로젝트 Sep 02. 2019

클럽 한 번 안 가던 남자 친구가 늦바람이 들었다.

박앤비_ 시드니 핫플레이스 편


 이태원은커녕 강남, 홍대 일대에서도 깔끔하게 술집에서 술만 먹고 집에 가는 남자 친구가, 시드니에 온 이후로 한번 클럽에 발을 들이더니 그다음 주에도 또 클럽으로 놀러 갔다. 대학 생활 처음으로 맞이한 휴학 때문인지, 어떤 해방감에서 인지 잘도 놀러 다닌다.


 ‘늦바람이 들었군’


 참 잘도 노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비웃다가도, 대체 뭐가 있길래 애가 달라진 건지 궁금하다. 그래서 남자 친구 노는 데 같이 놀자고 따라갔다.




1.  시드니 한인 많은 클럽 CHEERS (CLUB 80 PROOF)


 상하이 어디 클럽에 온 듯, 죄다 중국인이거나 한국인이거나 아시안 천지다. 강남이나 건대에서 본 듯한 익숙한 건물 비주얼에 시드니까지 와서 한인 클럽에서 놀다니. 호주에서 나고 자란 친구가 토요일엔 이 곳이라 하니 일단 믿고 들어갔다.


그런데 웬걸, 제일 신나 버렸다. 


 음악에 대해서는 1도 모르지만, 20살 한창 클럽 놀러 갈 때부터 내 음악 취향이 대강 싼마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한참 이태원의 SOPE가 힙스터의 성지로 뜰 때, 진짜 힙합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길래 찾아갔는데, 진짜 힙 쟁이들에 기죽어서 돌아온 건 내 취향이 아주 고리타분했기 때문이다.

 

 CHEERS는 호주에 있는 한인들의 연령대를 고려한 것인지, 어쩜 딱 내 취향의 음악들이 이어졌다. Florida의 Low부터 시작해 Despacito까지 이름을 말하기엔 민망한 타임머신 속 명곡들로, 다 같이 뛰어노는 미친 텐션이 만들어졌다.

 

 허름한 클럽 내부에 실망하고, 강남에서 본듯한 비주얼에 여기서 뭐 하는 건가 싶었지만 스탠딩 테이블들을 모두 치우는 그 순간부터, 시드니에서 가장 재밌는 클럽이 됐다. 글 쓰는 지금도 나의 한없이 저렴하고 올드한 취향에 민망함과 웃음이 함께 새어 나오지만 연달아 마신 위스키 샷과 잭콕에 한없이 취하고 제일 신나버린 건 나였다.

 

 지금 말하는 내용이 왠지 익숙하고, 2014년에 흘러나오던 EDM과 건대 앞 감성주점이 익숙하다면 이 곳을 추천.




2.     본다이 비치 라이브 바 34 BONDI


본다이 비치의 아이스 버그 수영장


 본다이 비치 근처에 숙소를 잡아 1박 머물렀다. 낮에 아이스버그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마치고 슬슬 돌아다니다, 때마침 금요일인 만큼 길가에 보이는 라이브 바로 성큼 들어섰다. 1층으로 들어서면 음식 주문이 가능한 테이블들과 바가 있는데, 칵테일을 주문 뒤 음악이 들리는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에는 또 다른 바와, 드럼을 포함한 음향장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Photoes from facebook @bar34bondi

 나는 모르는 데 남들은 다 아는 음악, 그런 음악들의 라이브 공연이 이어졌다. 무슨 노래인지 가사는 모르지만 적당히 흥얼거리고 몸을 살랑살랑 흔들게 되는 그런 음악들이었다. 어쿠스틱과 록, 그리고 귀에 익은 듯 모르는 팝송들이 나오면서 분위기는 차츰차츰 달아오르고 있었다.


 한인 클럽 CHEERS가 텐션의 끝을 향해 달리는 폭주기관차였다면, 34 BONDI는 군데군데 다 들리며 온갖 감성, 무드 다 느끼면서 가는 완행열차랄까


Photo from @bar34bondi

 낯선 팝송들을 들으며 모르면 모르는 대로 알면 아는 대로 노는 재미가 있다.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리듬을 타면서 그런대로 즐기고 다음에는 무슨 노래가 나올까 기대하게 된다. 낮에 본다이 비치의 풍경에 취했다면, 밤에는 이 곳에서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 음악을 들으며 이방인이 된 느낌에 취해보는 것도 좋다. 세션과 싱어의 라이브 공연을 보면서 그들의 열정을 탐닉해보는 것도 술 취한 본다이에서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 바닷가 마을에서 라이브 음악에 취하고 싶다면 이 곳을 추천.




3.     VIVID SYDNEY SILENT DISCO AT SYDNEY TOWER EYE


도시 전체를 수놓은 비비드 시드니

  비비드 시드니가 한창이던 6월, 시드니의 한 중간에 있는 제일 높은 타워 전망대가 클럽으로 변신했다. 저녁 9시부터 시작되는 비비드 사일런트 디스코 파티는 시드니 전체가 둘러다 보이는 전망대에서 최소한의 조명만 남겨둔 채 헤드 셋에 의지해 디제잉과 함께 비비드 시드니를 관람하는, 최고의 야경을 한 데 모아 음악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기회다.


 시드니 타워 전망대 역시 사랑하는 회사 MERLIN의 어트랙션 중 하나로, 직원들에 한 해 무료로 방문할 수 있었다. 사일런트 디스코답게 헤드셋을 빼면 노래 음악 대신 사람들이 함성소리와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가득하다. 헤드셋을 켜면 채널에 따라 각 디제이의 선곡들이 나온다. 이날 등장한 디제이는 총 세명으로, 전망대 안은 초록색, 빨간색, 파란색 세 가지 네온 빛을 띠는 헤드셋 낀 사람들로 가득했다. 헤드셋을 끼고 있으면 외부 소음은 차단되다 보니, 일부러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 소리 지르면서 놀리기도 하고 온갖 장난을 치는 것도 묘미다. 내 취향껏 채널을 조절하다가도 옆 사람의 헤드셋 색깔에 맞춰 음악을 바꿔가며 디제잉을 즐긴다.


Photo from MERLIN EVENTS

 시드니 전체에 펼쳐진 야경을 최대한 즐기기 위해 최소한의 조명만을 남겨둔 채 불을 모두 끈 전망대 안은, 유리창 바깥으로 펼쳐진 비비드 시드니 야경만큼이나 알록달록하다. 사람들과 채널을 맞추며 놀다가도 고개를 돌리면 오페라 하우스가 보이고 맞은편 하버 브릿지에서 비비드 쇼가 한창이다. 남서쪽으로 조금만 움직이면 달링 하버가 보이는 데 형형 색색의 빌딩 외관들이, 반대쪽으로 쭉 유리창을 따라가면 여유롭고 한적한 노란빛의 주거지역들이 보인다. 귀는 헤드셋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에, 눈은 창 밖의 야경에 맡길 수 있는 1석 2조를 모두 얻고 싶다면 이곳을 강력 추천.





 시드니의 금-토요일 밤을 걷다 보면 이 추운 겨울날에도 새틴 드레스에 높은 힐이나 캐주얼 정장으로 멋 부린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들을 보면 우린 아직 진짜 핫한 곳을 찾지 못한 게 분명하다. 마침 남자 친구도 코에 바람 들었겠다, 둘이 엉망진창망진창으로 매주 금요일 밤마다 온갖 핫한 곳들을 쏘다녀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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