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클럽 | 새내기 바리스타의 막장청춘물 에세이
‘아, 시발 X 됐다’
이곳에 발을 들인 지 30분도 지나지 않아서 나는 직감했다. 앞으로 내 인생이 또 한 번 파란만장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지금 느끼는 것 이상으로 더 피곤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음을 누구 하나 가르쳐준 적 없지만 깨달아버렸다. 그러니까 이 정도의 욕은 앞으로 내뱉게 될 욕에 비하면 굉장히 귀여운 수준이라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내 앞에 놓인 이 빌어먹을 카페의 인간들과 정체모를 사회생활을 알게 될 것이다.
프롤로그
님아, 그 면접을 가지 마오!
솔직히 남들은 무엇에 관심을 가지는지 궁금하긴 하지만, 중요하지는 않았다. 내게 중요한 것들은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니까. 그래서 구직활동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거리도, 돈도 아닌 조금은 낭만적인 것들이었다. 낭만적인 조건 중 하나는 동네의 분위기였다.
"너는 왜 항상 그렇게 멀리 다녀?"
학교도, 직장도 한 번도 가까운 곳이 없었다. 역마살 하나 끝내주게 달고 태어난 덕분인지, 수도권에서 나고 자라며 강하게 길러진 거리 감각 때문인지 서울 어디든 한 시간 정도는 우스웠다. 바리스타로서 처음 일하게 된 그 동네도 그런 의미로 합격이었다. 양 옆에 늘어진 화려한 쇼윈도들과 잘 차려입은 사람들. 힐끔거리지 않아도 시선을 빼앗는 것들을 배경 삼아 걸으면 괜스레 들떴다. 원래 사람이 그런 낭만도 먹고사는 거 아니겠는가. 이런 핫플레이스 동네에 굳이 직장을 구한 거라면 꿈꾸는 분위기란 걸 남모르게 간직한 것이다.
더구나 그 동네는 좀 특별했다. 20대의 어느 시기 방황하듯이 잠깐 머물었던 셰어하우스 근처였고, 집보다 오래 머물며 일하던 회사가 한강을 끼고 다리 맞은편에 놓여있었다. 그래서 이곳에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을 때 나는 친구들에게 그런 말을 던졌다.
"나의 과거들이 나를 불러들이는 것 같아."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나라는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나라는 카테고리로 결국은 이어진다. 나는 기이한 것들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뿐만 아니라 사람과 건물에게도, 동네에게도 다 '연'이 있으니까 닿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동네에 나와 밝혀지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너무 정확했다)
그래서 면접 연락이 왔었을 때 나는 기시감과 기이함을 끌어안은 채 그 동네에 다시 발을 들였다. 낮에는 빌딩 유리창에 비춘 하늘이 근사했고 저녁에는 불빛과 한데 어우러진 청춘들의 생동감이 만발했다. 그렇다, 젊음과 부와 빛나는 것들이란 모조리 산책로의 나무마냥 잔뜩 심어둔 동네. 나는 그런 동네의 카페에 입성한 것이다. 무려 신입 바리스타가 되기 위해서!
하지만, 번지수가 조금 어긋났다. 자를 대고 반듯이 길을 긋던 누군가가 잠깐 졸았던가? 조금, 어, 아니지, 아니지 그러니까 몇 블록쯤 들어가서 외곽으로 간다면? 오 맙소사, 심상치가 않다. 여기는 그냥 아무개 씨의 아무 동네의 아무 도로 옆의 아무 빌딩인데요? 나는 몇 블록 떨어진 거리를 내다보았다. 건물과 건물들 사이, 골목과 골목 사이 이 한적함을 지나면 바로 코앞에 닿을 거리들. 고작 10분의 거리감 너머로 핫플레이스의 존재가 느껴졌다.
"멋진 카페들도 많은데 왜 굳이 이렇게 안쪽 길에 카페를 차렸지?"
나는 아직 입주가 안된 곳이 수두룩한 건물을 살펴보았다. 멀끔해 보이지만 햇빛이 잘 드나들지 않았다. 넓고 아늑했지만 주변에는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건물주나 이곳에 입주한 카페 사장만큼 놀라운 희망 주의자였다.
"다 계획이 있겠지. 설마, 계속 이러려고. "
그런 고민'만' 계속해도 참 다행이었을 텐데.
희망주의자가 문을 열었다.
출판사 직원 출신의 친구에게 내가 직원으로서 첫 근무했던 카페에서의 에피소드들을 풀어보고 싶어라고 말했을 때 친구는 해사하게 웃으며 신입 바리스타의 커피 향기 나는 우당탕탕 경험기가 기대된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그 말에 질색하며 대답했다.
“내가 쓰려는 에세이는 막장 청춘물이야. 새내기 바리스타의 잘못 걸린 첫 카페와 그곳에서 만난 빌런과 동료들의 고군분투랄까?”
친구는 살다 살다 그런 에세이는 처음 들어본다며 내게 한 번 써보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써본다. 어딘가 고약한 냄새가 날 것 같고 세상에는 정말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네 싶은 어떤 현실의 이야기, 그리고 어쩌면 나처럼 새로운 길에 들어서 잘못 걸렸다는 생각이 들 누군가를 위해 이 이야기를 곱게 다듬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