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만 바꾸었을 뿐인데

일의 순서(우선순위)를 바꾸어 이미지 쇄신하기

by WAYSBE

벌써 5년째 육아휴직 중이건만, 나의 자아정체성은 아직 '전업주부'가 아니다. 실제로는 전업주부와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삶을 살면서도 스스로 전업주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일을 '휴식'하고 있을 뿐이지, 그만둔 것은 아니라고. 그래서 주부의 일에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자기계발에 최선을 다한다.

아이를 둔 전업주부의 일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나열의 순서는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일의 우선순위다.

전업 주부의 할 일
1. 아이 돌봄(+@ : 첫아이 '남편' 돌봄)
2. 집안일
3. 아이 교육

육아 휴직 중인 나의 할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전업 주부의 세 가지 일 중, 아이 돌봄과 아이 교육은 비교적 열심히 하는 편이다. 특히 교육은 내 전문 분야기도 하니 실험 정신도 있고 해서 조금 더 신경쓰는 편. 그에 비해 집안일은 형편없다. 아이들 위생과 정서에 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한다.

그런데도 어느 전업주부보다 바쁘다. 내가 나를 '전업주부'로 정의내리지 않은 만큼, 다른 일을 더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잠룡'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언젠가 글이든 사업이든 주식이든 대박을 치기 위해 열심히 도약 중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잠룡'이 할 일은 '전업주부'와 다르다. 나열한 순서는 내가 생각하는 일의 우선 순위다.

'아이를 키우는 잠룡'이 할 일
1. 아이 돌봄(아이 돌봄에 수반하는 기본적인 집안일 포함)
2. 아이 교육
3. 자기 계발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정의에 따라 5년 동안 최선을 다해 살았다. 밤잠을 줄여 가며 공부 했다. 고3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자부한다. 남들이 보면 어떻게 저렇게 열심히 사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나를 내려놓고 내 아이들과 가족을 위해 더 노력했다. 자기계발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 교육과 가정 경제를 일으킬 수 있는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국제 몬테소리 교사 자격증을 따고 밤새 주식 공부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지만 5년간 하지 않았다.

항상 우선 순위는 내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시간에는 모든 것을 멈추고 집중했다. 자기 계발은 성과가 나지 않으면 취미 생활과 다를바 없기에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하는 것은 프로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전업주부'로서도 내가 그리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집안일도 아예 안 하는건 아니었기에, 어느 전업주부도 돌봄, 교육, 집안일의 삼박자를 완벽하게 맞출 수 없다고 자위하며 나 정도면 '전업주부'로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부족한 집안일은 교육으로 보완한다 생각했다.




이런 아내가 남편에게는 썩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나에 대한 나의 정의와 타인의 정의를 생각해보니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의 '자기 계발'에 그렇다할 성과가 아직 없기 때문에 남편에게 나는 '집안일은 뒷전이고 취미 생활에 더 신경쓰는 전업주부'일 수도 있다. 남편은 내가 자기계발(남편 입장에선 취미 생활)을 하는 시간에 집안을 가꾸는 데에 더 신경쓴다면 나를 '프로 전업주부'로 더 인정을 해 주었을 것이다. 집안일 대신 '남편의 마음'을 더 보듬어주고 신경써 주었더라도 나를 더 인정해 주었을 것이다. 내가 아내로서 주고 싶은 것과 남편이 받고 싶은 것은 다를 수 있다.

육아 휴직을 하고 수년간 정말 우울하고 억울했다. 내 우선순위는 아이들이 맞으니까 이 역할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나'로서의 삶이, 내 커리어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직장 생활 시작부터만 카운트해도 10년이다. 그런 내 커리어를 희생한 것에 대한 타인의 위로는 없었다. '능력을 쌓아가던 나'라는 존재가 아까운 것은 나 뿐이다. 외부에서 보는 나는 집안일에 서툰 전업주부일 뿐. 하지만 나는 내 존재에 대한 정의를 달리했다. 육아를 선택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 나는 여기서 머물 사람이 아니다.




문제는, 언제 성과가 나올지 알수가 없다는 것. 내가 '잠룡'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길은 용이 되어 승천하는 방법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일이다. 남편 입장에서는 내가 자기가 주는 밥을 따박따박 받아 먹으며 "나는 실은 용이야!"라고 주장하며 뻐기는 가소로운 미꾸라지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원만한 부부 관계를 위해 최근 생각해 낸 것이 있다. 일단 내가 타인의 눈에 '전업주부'인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니 '전업주부'의 할 일에 충실한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 '이미지'라고 한 것은, 마음 같아서는 집안일도, 내 일도 모두 다 잘 하고 싶지만.. 지금보다 집안일의 양을 많이 늘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집안일을 더 열심히 하기 위해 언젠가 내 커리어가 될 수 있는 자기 계발 시간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리고 실제로 내가 집안일을 안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비록 엄청 깨끗한 프로 주부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할 일은 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지는 '안 하는' 이미지이니 바꾸어야 한다.

'전업주부'로서 내 이미지가 엉망인 이유를 생각해 보았더니, 내 우선순위가 남편의 눈에 뻔히 보인다는 것. 내 우선순위가 아이들인 것을 남편은 잘 안다. 그래서 아이를 돌보거나 교육하는 일에는 큰 불만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집안일보다 자기계발이 우선순위에 있는 것도 보인다. 첫째와 둘째가 모두 원에 가면 바로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일에 빠지면 점심도 거르고 계속 키보드를 두드린다. 아이가 하원하기 전에 집안일의 양 만큼 시간을 남겨두고 임박해서 집안일을 시작한다.

그래서 '전업주부로도 나쁘지 않은' 내 이미지의 쇄신을 위해 일의 순서를 바꾸기로 했다.

일 잘하는 이미지로 변신하는 좋은 방법 - 일의 순서(우선순위) 바꾸기

아이들을 원에 보내고 6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할 때, 2시간은 집안일, 1시간은 밥 먹는 시간, 3시간은 자기계발 시간으로 세팅했다고 하자. 지금까지는 일단 3시간 자기계발을 하고, 1시간 밥을 먹고, 마지막에 2시간을 집안일을 했다. 그러면 남들이 나를 오전에 보면 집안일을 뒷전으로 하고 자기계발을 하는 '일 못하는 전업주부'이다.

이제는 이미지 쇄신을 위해 같은 시간을 순서를 바꾸어 일하기로 한다. 집안일 2시간 먼저, 그리고 밥을 1시간 먹고 마지막으로 3시간 자기계발 시간을 가진다. 집안일을 하는 시간은 2시간으로 같지만, 남들이 나를 오전에 보면 아침밥도 거르고 집안일 하는 모습이 짠할 수 있다. 집안일을 마친 후 깨끗한 집에서 자기계발을 하니 취미도 건전하다고 칭찬받지 않겠는가.




어차피 똑같은 시간을 일하고, 똑같은 양의 일을 하는데 순서가 무엇이 중요한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미지에 있어서는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만족감을 주는 면에서도 중요하다. '나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구나.'라는 느낌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집안일을 마지 못해 하는 느낌과 집안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는 느낌은 가족들에게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내가 마지못해 가족을 케어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면, 그건 오해이기도 하거니와 이미지 쇄신을 반드시 해야할 부분이다.

완전히 통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여러 자식을 키울 때도 마찬가지인 면이 있다. 오래전 누구한테 들은 이야기인지도 까먹었지만, 그 내용만은 나에게 각인이 된 이야기가 있다. 여러 아이를 잘 키워낸 나이든 노파에게 그 자식들을 어떻게 그렇게 잘 키웠느냐고 물어보니, 첫째 아이도, 둘째 아이도, ...... 그리고 막내 아이까지 모두 "이건 비밀인데, 내가 어머니에게 가장 사랑받은 자식이에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자기계발은 포기할 수 없다. 집안일에 올인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중요한건 '감정'이다. 가족들에게 내 일의 우선순위를 바꾼 것을 보여줌으로써 '신경쓰고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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