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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훈 Sep 29. 2020

권위에 호소하는 글쓰기

어떤 문장을 인용하는 데엔, '그 사람'의 말속엔 ‘그럴 만한 힘’이 있다는 암묵적 동의가 자리하고 있다. 기어코 누군가의 견해를 끌어와 본인의 글과 묶는 행위엔 이런 배경이 깔려있다.


권위에 호소하는 삶은 비용 대비 효율이 높다. 워낙 '붙여 넣는' 빈도수가 잦았던 탓에 동의를 이끌기 수월하다. 서로 퍼나르고, 그 문장을 상속함으로써, 거기에 묻은 주관과 우연이란 불순물은 어느새 제거되고 만다. 그렇게 권위는 진리의 최종 심급 자리에 오른다. 나도 그들의 문장을 수집했고, 거기에 기대왔으며, 그 위치를 탐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주어(subject) 자리에 본인이 아닌 다른 인물을 앉혀 놓아 얻게 되는 설득력. 그런 글쓰기는 주체(subject)를 내던지고, 권위만 재생산할 뿐이라고 믿는다. 이 믿음이 진리가 되려면 많은 '좋아요' 와 '더 많은 인용'이 필요하지만 이제 더는 그걸 바라지도 않고(그럴 수도 없겠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고 다짐한다. 그럴듯한 직함이나 명함이 아닌, 내 일상을 근거로 만들면 된다.


글쓰기가 ‘무엇(subject)을 말할까’에서 ‘어떻게 보일까’로 변하는 순간, 장식의 문제가 되고 만다. 일상과 접합하는 부분이 전혀 없으면서도, 그저 잘 보이기 위해 골라잡은 단어와 생각들로 치장한 것들에 신물이 난다. 이 문장에서 글쓰기 대신 다른 걸 집어넣어도 일맥상통하는 지점이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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