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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서 Dec 03. 2019

4. 제 딸입니다

< 제 4 장 >  성취 그 짜릿함

입사 첫날, 인사를 하고 어색하게 자리에 앉았다. 보이는 건 텅 빈 바탕화면과 메일함에 있는 Welcome 메일 한 줄이었다. 책상은 머리카락 하나 없이 깨끗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게 앉아있었다. 그때 사장님이 사무실로 나왔다.


“김 대리 굿모닝~, 신 차장 좋은 아침~, 희연 굿모닝~, 연서 좋은 아침~”


이게 실제로 있는 일일 줄이야. 입사하기 전에 면접을 대비하며 회사와 관련된 기사들을 읽어봤었다.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사장님께서 30년 동안 아침마다 직원들에게 인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전체 인사도 아니고 한 명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면서 말이다. ‘요즘에 그런 사장님이 있나? 말도 안 돼.’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일이 내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사장님은 신입사원에게도 먼저 인사해주는 자상한 분이셨다. 하지만 가끔은 방에서 호통 소리도 났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사장님은 누구보다 가깝게 지내야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회사의 한 명뿐인 인사담당자였고 사장님은 내 직속 보고라인이었으니까. 


“사장님, 안녕하세요….”

“연서! 그래, 무슨 일이야?” 

“결제를 받으려고요…” 

“이건 뒤에 서류가 더 있을 텐데? 한 번 찾아봐요.” 

“아, 네! 죄송합니다.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신입인데 모든 보고를 사장님께 해야 했으니 간이 콩알만큼 작아졌다. 동갑이었던 회계팀의 친구가 조언도 해주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우리는 업무가 달랐다. 혼자 발품 팔아 일을 해야 했다. 어느 날, 사장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회사에서 매년 직원들이 응급처치방법을 배울 수 있도록 교육을 보내고 있어요. HR이 모르면 되겠나 싶네. 다음 교육일정에 다녀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응급처치 교육? 그런 것도 하는구나.’ 가까운 곳을 알아보니 대한적십자에서 하는 응급처치 기본과정이 있었다. 3일 동안 2시부터 6시까지 진행되고, 수강할 수 있는 가장 이른 날짜는 9월이었다. 사장님께 일정, 장소, 금액을 적어 이메일로 전달했다. 바로 승인 메일이 왔다. 그런데 승인 메일의 끝에는 코멘트가 있었다.


‘내 것도 같이 예약해줘요.’


‘사장님께서 같이 가신다고?’ 내가 잘못 읽었나. 메일을 다시 읽었다. 분명 그렇게 적혀있었다. 입사 3개월 신입이랑 사장님이랑 교육을 들으러 가다니. 부담 그 자체다. 혼자 가는 게 백배는 낫겠다고 생각했다. 교육 전날까지 사장님에게 바쁜 일이 생기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모른다. 


간곡함은 통하지 않았다. 교육이 시작되던 날 사장님과 어색한 점심을 먹고 차를 타고 출발했다. 사장님은 운전을 직접 하셨다. 옆자리에 앉으니 식은땀이 났다. 좌불안석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네, 아니요, 아 그렇군요’ 세 가지 말만 말했다. 사장님의 눈도 못 쳐다보고 정면만 응시하다가 교육장에 도착했다.


교육은 활기차게 진행됐다. 이론 수업을 간단히 한 후 바로 실습이 진행됐다. 사람 모형의 연습용 인형을 바닥에 눕히고 실제 응급상황처럼 실습하는 것이었다. 2인 1조가 한 팀이었다. 나는 사장님과 함께 팀이 됐다.


“여기를 이렇게 해야지 다시 해봐, 더 세 개. 강사님 지시사항 들었지? 갈비뼈가 부러질 것처럼 세 개 눌러야 해.”


사장님은 말이 많으셨다. 가뜩이나 사장님이랑 있어서 식은땀이나는데 그것도 모르시고 사장님의 훈수는 갈수록 심해졌다. ‘저도 안다고요.’ 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참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회사 직원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교육만 받고 퇴근하니 분위기도 화기애애했다. 나도 그 안에 끼고 싶었다. 사장님이랑 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어머, 여기는 아빠랑 딸인가 봐요~”

“네??” 

“아니, 아빠 아니에요? 너무 닮아서~”

“아뇨, 이분은 저희…”

“허허허, 맞습니다. 딸입니다. 허허허”

“(????)”


하루가 지나고 이틀째 만나다 보니 교육생의 얼굴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모두 사장님과 내가 닮았다고 했다. 사장님은 ‘허허허’ 하시면서 장난도 받고, 장난도 치며,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런 사장님의 모습을 처음 보는 터라 신기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로 스며드는 분이셨다. 사장님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그렇게 아빠와 딸 컨셉으로 교육을 마쳤고, 사장님과는 조금 가까워졌다. 머리에 붕대를 감기도 하면서 말이다.




정말 이렇게 묶어 드렸다... ^^ (http://campingtalk.yagaja.com/pages_m/story?event_idx=36318)




마지막 날, 교육이 일찍 끝나자 사장님께서는 맥주 한잔하고 가겠냐고 물어보셨다. ‘집에 일이 있다고 하고 그냥 갈까.’  잠시 망설여졌다. 하지만 언젠가는 사장님과 얘기를 해야 할 것이다. 용기를 내어 좋다고 했다.


“교육받느라 고생 많았어요, 재밌었지?”

“네, 너무 재밌었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사장님하고 같이 와서 긴장됐었어요. 하지만 오히려 사장님에 대해서도 더 잘 알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허허허, 내가 어떤데?”

“사교적이시고, 장난도 많이 치시고, 개구쟁이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허허허 한잔해요.”


사장님과 맥주 한 잔을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솔직하게 마음을 열고 대화하려고 노력했다. 사장님은 역시나 어렸을 때부터 개구쟁이였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영업사원으로 일을 시작한 지 15년 만에 이사직까지 올랐다가, 고객사였던 회사에서 한국에 지사를 만들면서 사장직을 맡게 되었다고 했다. 자수성가의 표본인 분이셨다.


그 날 이후 사장실에 가는 게 두렵지 않았다. 사장님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 높은 사람, 어려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사장님에 대해 알게되니 대화가 편해졌다. 자수성가한 스토리를 들은 후 깊은 존경심도 생겼다. 사장님의 일정이 비어있을 때마다 사장님의 철학과, 비전, 회사를 어떤 방향으로 키워가고 싶으신지 물었다. 사장님의 생각을 인사 제도로 만드는 것이 나의 업무라고 생각했다.




마음을 열어보자 (http://mcfrog.org/tt/weblog/66)




마음을 열기는 쉽지 않다. 나이가 많거나 직급이 높거나 성격이 급하거나 화를 잘 내는 사람에게는 더욱 어렵다. 사장님과의 대화를 통해 상대방에게 먼저 다가가면 상대방도 마음을 연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은 서로 잘 알지 못할 때 오해를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날 이후, 마주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피하지 말고 같이 있는 시간을 늘려보기로 했다. 식사를 같이하거나 커피 한잔하는 시간을 보내다보면 서로 맞는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빠와 딸이 된 나와 사장님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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