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내음 담뿍 담아
안동 답사 때였다. 대구에선 하루에 두 번, 무궁화호뿐이라 아침 6시 기차에 몸을 실었다. 늘 버스보다는 창이 더 커 가득히 사계절이 담기는 기차가 좋다. 작년 이맘때 영주, 문경을 함께 묶어 왔었는데 안동만 둘러보는 이번 여행이 설렜다. 안동 토박이 가이드님과 교수님이 함께 하시니 더 바랄 것도 없다. 그저 옆에서 듣고 배우며 아름다운 경북 가을풍경 담뿍 담아갈 심산이다.
20년을 경남에서 살다 대학입학 후 올라온 대구경북은 사투리조차 나를 흥미롭게 잡아끌었다. 서로 확연히 다른 사투리가 맘에 쏙 들었고 자연스레 어느 정도 동화도 되었으나 여전히 대구사람들은 한마디만 듣고도 경남인인 줄 안다. 고령, 상주, 성주, 구미, 청송, 영덕 등등 경남 촌뜨기는 대학교에 와서 경북 곳곳을 보았다. 경북은 나에게 그런 젊은 어느 날이고 아직 모르는 곳들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하다. 소수서원만을 줄기차게 갔던지라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이 기대된다.
도산서원에 도착하였고 관광객이 정말 많았다. 입구에서부터 조금 걸으니 곧 서원과 앞에 펼쳐진 낙동강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어떻게 이렇게 좋은 곳에 자리할까,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산이 주는 고요함과 물이 주는 드넓은 풍광이 이내 곧 상상에 잠기게 한다. ‘경치가 너무 좋아 공부가 잘되었을 것 같긴 한데 나는 잘 안 됐을 것 같아.’ 내가 만약 여기 다니는 퇴계 선생의 제자였다면 곧 저 강을 건너 놀다 오고 싶었을 것 같다. 물은 나에게 그런 의미다. 수영하고, 조개구이 먹고, 맥주 한 잔 하고 싶고.. 물론 그땐 막걸.. 나는 이미 제자 자격이 안된다.
뫼 산자가 너무 귀여운 현판이 강렬하게 기억난다. 아마도 서당에 오는 아이들이 “스승님 글씨를 왜 저렇게 쓰셨습니까 하하하 재밌습니다~” 스승님께 너무 버릇없는 말투인가? 그런데 왠지 그렇게 했어도 웃어주셨을 것 같다. 실제 퇴계 선생은 ‘스승이 제자에게 엄격함을 보이되 가혹해서는 안된다’ 하셨다 한다.
많은 관광객들에 치이며 도산서원을 나왔다. 다소 정신없었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단위가 많아 보기 좋았다. 사회책에 나오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 때문이라도 좋지만 천 원짜리에 나오는 인물이 누군지 말해주고 장소를 직접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이곳에 온 가족들이 많길 바랐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라 적힌 도시의 슬로건을 몇 번을 지나치며 병산서원으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차는 멈춰 섰다. 도산서원에 비하면 거의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에 내려서는, 많이도 아니었다. 고개를 휙. 휙. 두 번 돌리고 내 입은 그렇게 찢어졌다.
“우 와-
완전완전! 좋아요!”
서원 앞 아주 가파르게 자리한 산은 마치, 벽과 같다고 해야 할까 병풍 같다 해야 하나 병산이 병풍 할 때 그 병인가 싶었다. 정말이었다. 병산(屛山)은 서원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 건너편에 있는 아름다운 경관이 산이 마치 병풍을 둘러친 모습을 하고 있어 불리기 시작한 이름이다.
1572년에 지금의 장소로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풍악서당 자리에서부터 옮겨졌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탔으나 1605년 중건하였고 광해군 때(1610)에 향사하며 서원이 되었다.
내부의 모습이 궁금하여 얼른 발걸음을 재촉한다. 세속된 몸을 극복하고 예를 다시 갖추라는 뜻의 ‘복례문’을 지나면 ‘만대루’ 아래로 들어서게 되는데, 급경사로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누 아래로 고개를 숙이고 지나가게 함으로써 마음과 몸을 다시 한번 추스르게 하는 역할을 한다.
‘만대루’는 두보의 시 <백제성루白帝城樓>한 구절인 “翠屛宜晩對(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다)”에서 따온 것이다. 보름 병산 위로 떠오르는 보름달이 만대루 앞 방형 연지에 비치고 서원 안마당에 달빛이 가득 내리면 병산서원은 그야말로 시적공간이 된다한다. 비록 보름날 저녁은 아니었으나 만대루에 앉아 바라보는 풍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의 병풍과 같은 병산이 곧 덮칠 듯이 눈에 가득 들어찼다. 병산은 『영가지』의 지도에 ‘청천절벽’(晴川絶壁)이라는 이름으로 올라 있을 정도니 위용 있고 빼곡히 수놓아진 수풀의 푸르름에 얼마나 압도되는지 이곳 만대루에 앉아보아야 느낄 수 있음이다.
만대루에서 보는 풍광을 묘사한 글 중 ‘시간과 공간을 모두 까맣게 잊게 할 만큼 사람을 취하게 한다’라는 구절이 인상 깊다. 어차피 과학적으로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라 함은 온데간데없고 이 산과 나만이 세상에 남은 듯하다. 뒤로 펼쳐진 입교당과 동, 서재 그리고 다른 곳들의 이야기는 듣는 동시 저 너머로 사라져 가고 만대루를 바라보며 오직 그저 저 위에서 공부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만이 들었다. 여기서 공부한 많은 이름도 얼굴도 모를 이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이곳에서 공부하여 과거시험에 합격하였을까,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까. 도산서원에서는 놀고 싶었던 나도 이곳에서 학습하였다면 과거시험을 한 번에 패스했을 것 같다.
넋을 놓고 보고 있으니 교수님께서는 웃으시며 바깥의 또 다른 공간으로 안내하신다. 달팽이처럼 혹은 뱀이 똬리를 튼 것처럼 둘러져 있는 곳을 가리키며 질문하셨다. 뭐 하는 곳인지 맞춰보라 하신다.
“어, 음 아 아! 화장실요!!”
지붕도 없고 문도 없지만 말려있어 안이 보이지 않는 달팽이 뒷간이라고도 하는 이곳은 유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일꾼들이 사용하던 것이었다. 돌담에 짚이 얹어져 있는 과거사람들의 냄새가 솔솔 나는 이 달팽이 뒷간마저 흙과 돌과 뚫린 하늘 모두 자연과 함께하는 인간미가 넘친다.
나는 단지 병산서원에 온 것뿐인데, 이토록 가슴이 넓어지는 것은 문화재를 방문해서, 나를 둘러싼 멋진 경치가 있어서, 만대루가 좋아서도 아닌 당시 산속 가장 좋은 자리로 학교를 지어 많은 유생들을 길러내고 그들은 나라를 위한 인재로서 등용을 꿈꾸며 오늘도 내일도 읽고 쓰며 자고 일어난 그곳을 내가 지금 밟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언젠가 꼭, 병산서원으로 서원스테이를 올 테다. 마음을 비워내기 위한 스테이가 많다면 이곳에서 나는 많은 것을 채워가고 싶다.
지금 이곳에서 가득 채운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