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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Jun 07. 2022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집을 짓는 스위스 목수

스위스에서 목수가 되는 법

그를 처음 만난 건 토론토의 한 어학원 수업에서다. 처음 같은 조가 되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일상적인 물음을 건넸다. 그런데 그의 대답은 내 예상을 모두 빗나갔다. 그는 자신을 스위스에서 온 목수라고 소개했다. "무슨 일해?"라는 질문에 '목수'라는 대답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나는 순간 'Carpenter'라는 영어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되짚었다. 우리나라에도 목수라는 직업이 있지만, 평범한 대학생인 내 주변에 또래 친구들 중에 목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예상치 못한 대답들이 내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이후로 그를 만날 때마다 질문 폭탄을 던졌고, 그가 해주는 별세계 이야기에 매료돼 그의 연인이 됐다.

스위스의 목조 주택

스위스 목수는 여느 직장인과 다름이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 건설회사가 하청업체에 하도급을 주고, 하청업체들이 일용직 노동자를 고용해 건물을 짓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반면 스위스에선 건설회사가 목수들을 직접 고용한다.  연인이 다니는 회사는 100 명의 직원을 두고 있는 비교적  규모의 건설회사로, 목조 건물을 짓는다. 인테리어 목수인 연인은 회사  작업실에서 스카이라이트(천장에  채광창) 발코니 등을 만들고 집을 짓는  필요한 목재를 자르고 페인트칠을 한다.

애인이 만든 스카이라이트. 스위스에서는 주로 화장실 천장에 채광창을 단다.

근무 시간은 여름 6시 50분부터 저녁 5시 30분, 겨울에는 6시 50분부터 5시까지다. 점심시간 1시간 15분과 쉬는시간 25분을 제외하면 여름에는 9시간, 겨울에는 8시간반가량 일한다. 5년차인 애인의 연봉은 약 8800만원, 스위스 물가가 비싼 걸 감안해도 처우가 좋은 편이다. 사실 스위스에서 집을 짓는 목수(carpenter)와 '인테리어 목수(cabinet maker)'는 구분이 된다. 연인은 인테리어 목수(cabinet maker)지만 회사의 특성상 더 처우가 좋은 목수(carpenter)의 연봉을 받고 있다. 휴가는 1년에 5주(carpenter 기준, cabinet maker는 4주), 근로자는 2주를 붙여 쓸 권리가 있다. 스위스에서 목수는 인기 직업일 뿐 아니라 평판도 좋다고. 연인은 고객들을 만날 때면 "나도 목수하고 싶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스위스에서 목수는 꽤 흔한 직업이기도 하다. 캐나다 어학원에서 유일하게 만난 또 다른 스위스인도 목수였다.  그는 스위스에서 가장 큰 건설회사 중 하나에 다녔는데, 회사 프로그램을 통해 뉴욕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총 4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정원사나 농부 같은 직업도 10대 청소년의 진로 선택지 중 하나다.

스위스 목수가 공사 현장에서 보는 풍경

그렇다면 스위스에서 목수가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스위스에는 'VET(vocational education and training) 시스템이 있다. 전문 학교(professional school)라고도 하는데, 직업 학교라고 보면 된다. 일주일 중 4일은 학교와 파트너십을 맺은 회사에 가서 도제식 교육을 받는다. 일을 하면서 배우는 것이다. 나머지 1일은 학교에 가서 정치, 환경 등 일반 상식(general knowledge)과 이론을 배운다. 특이했던 건 학교에서 세금을 내는 방법이나 아파트 구하는 법 등도 배운다는 것.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지식이다.


직업 학교는 만 15~16세부터 4년간 다닌다. 우리나라로 치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직업 학교를 다니는 셈이다. 아직 학생이지만 회사에서 일하는 만큼 월급도 받는다. 월급은 회사마다 천차만별, 학년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진다. 달에 50만원대를 버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1학년 때부터 그의 3배 이상을 버는 사람도 있다.

연인이 목수 학교 졸업 평가 때 직접 디자인해 만든 가구

직업 학교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목수 학교, 정원사 학교, 심지어는 이마트 같은 마트에서 일하는 직원을 위한 학교도 있다. 이외에도 230개 이상의 직업 학교가 있는데 IT 업계나 소매업자, 의료 종사자, 전기 기사, 물류관리자, 사회복지사, 요리사 등이 대표적이다.(Basic vocational education and training (admin.ch))


스위스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보자면 스위스에서는 초등학교(만 6,7세~만 12세)를 나오면 중학교(만 12세~16세)를 간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 등급을 받는다. 등급은 김나지움, A~C가 있다. 대학교를 가려면 김나지움 등급을 받고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한다. 하지만 스위스의 대학진학률은 20~25% 정도여서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그리 많진 않다. 목수가 되려면 B~C 정도의 등급을 받아야 하는데, C등급으로서는 목수가 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연인의 경우 김나지움 등급을 받아 대학 진학을 위한 고등학교에 갔지만, 공부가 맞지 않아 B등급 학교로 옮기고 목수가 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목수답게 애인의 취미는 나무로 필요한 가구를 만드는 것이다. 핸드폰을 충전할 수 있고 라이트도 켤 수 있는 소파 테이블과 오래된 와인 베럴을 반으로 갈라 장식장을 만들었다.

목수 남자친구를 든 나는 가끔 나무 조각품을 선물로 받기도 한다. 첫 선물은 캐나다에서 만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단풍잎이었다. 두 번째로는 스위스의 대표 기념품인 소를 직접 만들어줬다. 작고 정교한 만큼 품이 많이 드는 선물이라 더욱 소중하다.


스위스 목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우리나라 건설 노동자들이 떠오른다. 같은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와 스위스에서 '목수'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나 직업 환경은 매우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교육 시스템과 고용 방식이다. 스위스에서 목수는 제도권 안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만, 우리나라에는 목수학교가 많지 않을 뿐더러 제도권 밖에 있다. 우리나라 목수도 회사에 고용돼 월급을 받는 경우가 있지만, 스위스 정규직 직원 만큼의 대우가 보장될 것 같진 않다. 우리나라도 기술직에 대한 인식이나 대우가 하루빨리 개선되기를 바란다.


목수는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직업이다. 사무실에 앉아 모니터와 씨름하는 나와 다르게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땀 흘려 만든다는 자체가 멋있다. 목수야말로 세상에 없어서는 안될 직업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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