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도쿄 소나타" (2009)

by 퍼즈

집 밖은 태풍이 부는 듯 비바람이 휘몰아친다. 열어둔 베란다 문 사이로 강한 바람이 들어온다. 4인 가족의 엄마인 메구미는 들어온 물을 걸레로 닦다 문득 비바람을 바라본다. 곧이어 비가 내부로 들이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문을 열어 ‘그것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도쿄 소나타>는 바로 이런 영화다. 외부에서 내부로 들이닥치는 무언가를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고 받아들여, 원래의 질서를 헤집어 놓는 데에 끝내 동의하는 영화, 동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영화.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마음에 박혀서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 남편인 류헤이가 동창생 집에서 저녁을 먹고 온 다음, 텔레비전을 보며 소파에서 잠들어 있던 메구미가 허공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며, “누가 나 좀 일으켜줘.”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이 한 장면만으로 이 인물이 가족 내에서 얼마나 소외되어 있는지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 가족 공동체 안에서 소외된 사람은 메구미뿐만 아니라 그 가족 전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매일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어도 전혀 화합하지 못하는 개인들이다. <도쿄 소나타>의 섬뜩한 지점은 이 영화는 가족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으로서의 공동체적 모습을 단 한 순간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들은 철저한 개인이며 서로에게 유령과도 같은 존재다.


<도쿄 소나타>의 가족들은 모두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가장은 기업에서 정리해고를 당하고, 장남은 돌연 미군에 입대하여 일본을 떠나고, 막내는 예상치 못한 재능으로 가족들 몰래 피아노를 시작하며, 엄마는 집에서 강도를 만난다. 그렇다면 이제 이 변화와 침투에 맞설 것인가, 수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있다. 하지만 맞서는 것도, 수용하는 것도 어느 쪽이나 만신창이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침투에 가장 열려 있는 사람은 메구미이고 그 반대는 류헤이다. 그는 거짓말로 가족들을 속이며 어쩔 수 없이 백화점 청소부 일을 시작하지만, 화장실을 청소하다 바닥에 떨어진 돈봉투를 훔치며 달아나는 길에 아내를 만나고 무너지고 만다. 어두운 밤을 넘어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도망치던 류헤이는 쓰레기 더미에 처박혀 이렇게 말한다. “다시 시작하고 싶어.” 이윽고 그는 달려오던 뺑소니 차량에 치여 도로 한편에 쓰러져 눕는다. 마치 어쩔 수 없이 멈춰 선 사람처럼. 한편, 메구미는 첫 장면에서 비바람이 들이닥치는 데도 베란다 문을 열었던 것처럼, 외부로의 침입을 어쩔 수 없다는 듯한 태도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그녀의 태도에는 어쩐지 체념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가라앉힌다. 베란다 문이 세 번째로 열렸을 때 그곳으로 들어온 것은 강도로 분한 야쿠쇼 코지다. 메구미는 오히려 그 침입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선뜻 따라나서며 면허를 따고 처음으로 희망하던 오픈카를 운전한다. 분명 인질로 잡힌 것인데 어쩐지 해방된 사람의 모습이 언뜻 보인다. 그날 밤, 켄지는 친구를 돕다 유치장에 밤새 잡혀서 다음날 아침 겨우 풀려난다. 그렇게 세 사람은 각자 질주의 밤을 보내고 다시 그 식탁에서 서로를 마주한다. 이전보다 조금 더 더럽고 찢긴 모습으로.


마지막 장면, 켄지는 예술 중학교 실기 시험을 치르고 메구미와 류헤이가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시험장에 참석한다. 이때 켄지가 치는 월광은 달리 표현할 말이 묘연할 만큼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각자가 갖고 있는 상처도 잠시 잊어버리게 만드는 아름다움이다. 이 세 사람은 켄지의 연주가 끝나자 다 함께 화면 밖으로 걸어가고, 그 자리에 앉아 있던 학부모와 심사 위원들은 화면 외부로 멀어져가는 그들의 모습을 시선으로 따라간다. 마치 지구에 잠시 머물던 외계인들이 본인들의 행성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지구인의 시선 같다. 과연 내부에서 외부로 향하는 그들을 데려다주는 곳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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