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첫 장면, 에린은 고용주 앞에서 자신의 쓸모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애쓴다. "전 사람을 잘 다뤄요." "배우는 것도 빨라요." "경험이 풍부해요." 하지만 에린에게 돌아오는 것은 거절의 얼굴이다. 에린은 그 얼굴의 의미를 단숨에 알아차린다. 영화 속 주인공 '에린 브로코비치'는 두 번 이혼했고, 이를 통해 세 명의 아이를 얻었다. 막내는 보모가 필요할 정도로 어린 나이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 에린은 일자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반복된 이혼과 세 명의 아이, 경력 단절 등으로 에린의 사회적 위치는 바닥이 되었다. 어디에서도 그녀를 고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에린은 자신의 교통사고 사건을 맡아주었던 변호사 사무실에 막무가내로 일자리를 얻어 들어간다.
사무실 직원들은 그녀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무엇보다 화려한 차림새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한때 '미스 위치타'였을 만큼 아름다운 에린은 가슴이 부각되거나 다리를 드러내는 짧은 스커트를 즐겨 입기 때문이다. 면접을 볼 때도,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할 때도, 자신이 맡은 사건을 조사하러 다닐 때도 그녀의 의상은 한결같다. 어렵게 얻은 일자리에서 자신의 파트너이자 상사인 에드가 사무실 직원들과 어울리고 싶다면 차림새를 바꾸라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에린은 그 순간조차 당당하게 '나는 나의 차림새가 좋다'라고 말하며 이를 거절한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타인을 오해하곤 한다. 특히 그 상대가 여성이거나, 이혼을 했거나, 오랜 기간 일을 쉬었거나, 노출이 심한 옷을 입으면 그 사람의 인간성 자체를 의심하곤 한다. 우리는 타인을 있는 그래도 바라보는 데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에린 역시 타인을 오해한다는 지점이다.
에린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며 중요한 사건을 맡는다. 아무도 그녀가 열심히 일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에린은 누구보다 열심히 사건을 조사하고, 그 과정에서 그녀 주위를 맴도는 나이 든 남자를 자주 목격한다. 에린은 그를 자신에게 '찝쩍대는' 남자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며 피한다. '찰스 엠브리'라는 이름의 그 남자는 나이 들었고, 눈빛이 불순하며, 차림새가 허름하기 때문이다. 여성인 에린이 그를 경계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찰스는 에린을 유혹하기 위해 쳐다본 것이 아니다. 그는 에린이 맡은 사건과 관련된 핵심 단서를 제보하기 위해 그녀가 믿을만한 사람인지 살펴보았던 것이다.
이 영화는 매우 심플하다. 세 명의 아이가 있는 싱글맘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쓸모 있음을 증명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람들의 시선과 싸우는 여성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 여성 역시 때로는 누군가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이는 우리 모두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각별해야 함을 알려준다. 당연한 말이지만 차림새, 직업, 성별 등을 이유로 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이를 너무 자주 잊곤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