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연이어 사람을 만난 탓에 상당히 지친 상태였다. 방 안에 틀어박혀서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쉬는 내내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장대비가 무섭게 쏟아졌다. 동네 도서관이 무너지는 건 아닐지 걱정스러웠다. 키 낮은 건물은 모두 휩쓸려 떠내려갈 것만 같았다. 나는 투명한 창문 하나를 닫고 창밖을 보았다. 창에 맺힌 물방울들이 시야를 부옇게 만들었다. 수진의 말에 의하면 생명체인 그녀가 우는 중인지도 몰랐다. 그게 누구인지는 몰랐다. 세상이? 지구가? 신화에 나오는 여신이? 누구든지 이렇게 오랫동안 운다면 지쳐 쓰러질 텐데, 하고 걱정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진의 우는 모습을 상상했다. 쉽지 않았다. 상상 속의 수진은 슬픈 눈빛까지는 보여도 절대 울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망울이 흔들려도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눈물을 흘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중간과정을 모두 생략한 듯 수진의 앞에서 바로 눈물을 흘렸다. 나는 약하고 여렸다. 하지만 수진은 내가 강하고 단단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의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 있다면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수진이 내게 그런 말을 해준다는 사실부터,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까지 신기했다. 그 말이 맞든 틀리든 수진이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실제로 조금은 굳센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눈물을 흘린다는 게 강한 일이라니, 도대체 세상은 지금 얼마나 강한지 가늠했다. 그녀는 수도 없는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폭우를 바라보며 집에서 일주일을 꼬박 보냈다. 어머니의 잔소리라거나 참견도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나는 몰래 문을 잠그고 되도록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수시로 여러 생각이 내 안으로 밀고 올랐지만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을 잠재웠고, 이불을 펴고 누워 빈둥거렸다. 해가 지고 밤이 오면, 세상은 목소리를 잃었다. 오직 빗소리만이 도드라졌다. 나는 내가 될 수 있는 가장 혼자가 되었다. 그럴 때는 종종 잠들기 힘들었다. 온몸 곳곳에 남은 수진의 감각이 생생하게 올라 나를 온전히 감쌌다. 눈을 뜨나 감으나 방은 어두웠고, 그 속에서 나를 압도할 무언가가 자라나는 기분이었다. 보이지는 않았다. 느낄 수만 있을 뿐이었다. 하얀 피부의 수진은 어둠 속에서 내 곁에 다가와 누웠고, 나는 그녀의 체형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그녀는 다시 나의 피부를 탐험했고, 머리카락이 온몸을 쓸고 지났다. 나는 그녀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몸을 뒤척여도 그녀는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나의 온몸으로 스러져 흘러들어갔다. 나의 것에 다시 입을 맞추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며 자라난 모든 것에 입을 맞추고, 품고, 받아들였다. 내게서 솟아난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를 찾고 나서야 나는 수진을 잊고 잠에 들 수 있었다. 수진은 나의 내밀한 초청으로 방에 수시로 오고 갔다. 그녀에게 왠지 미안했고, 이제야 수진을 직접 보고 싶었다. 폭우가 그친 그 다음날 아침에 수진에게 연락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