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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탈핵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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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창 Jul 23. 2024

기사에 맥락을 담으려는 장미쁨 기자

탈핵잇다_시즌2 세번째 이야기

2~3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에 영상과 인터뷰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월성 핵발전소에서 비롯된 삼중수소 누출 문제, 공동체 파괴와 이주 요구 등 의미 있는 기사를 만들어 온 장미쁨 포항 MBC 기자는 ‘새어나온 비밀’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2024년 5월 24일 3시간가량 지역 언론의 현실과 미래, 월성 핵발전소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그리고 나아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이장선거 등 그가 오랜 시간 취재하며 고민해왔던 것들을 묻고 들었다. 탈핵잇다 시즌 2은 ‘숲과나눔 소규모 연구모임 지원사업 풀씨연구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포항 MBC 홈페이지 기자들을 설명하는 페이지(기자출입처 안내)에 장미쁨 기자의 출입처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법원, 검찰, 경찰, 소방, 문화재 연구기관, 월성원전.” 많은 기자와 방송사가 월성 핵발전소와 나아리 주민들의 상여 시위를 다루었지만, 그중 장미쁨 기자를 빼놓을 수 없다. 특히 그는 2021년 삼중수소 누출 문제를 보도하여 이 문제가 비단 지역만의 문제가 아닌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어떻게 월성 핵발전소에 관심을 갖고 취재하게 되었을까?


제가 2013년에 입사했는데, 상여 시위는 2014년 8월에 시작했어요. 경주 출입을 2016년부터 시작했는데도 몰라서 죄송했죠. 관심이 없었고 그분들의 시위를 몰랐다는 것에 대해 부끄럽기도 했었죠. 원전 문제는 친했던 선배들이 많이 썼고, 그 선배들에게 배웠죠. 육아휴직 이후 복직하고 나니 원전을 담당하던 선배가 포스코를 맡으면서, 자연스럽게 제가 원전을 담당하게 되었어요. 당시에도 이미 있었던 ‘멸치, 바나나 논쟁’부터 한수원의 고압적인 태도까지, 취재하면서 조금씩 원전 문제를 이해하게 되었어요. 사실 기자들은 부채감에서 시작하거든요, 이 사건이나 사람들을 잘 몰랐다는 것에 대한 부채감이나 미안함.


부끄러웠던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2014년 이후로 10년째 안전한 곳에서 살아가고 싶다며 이주를 요구하는 주민들을 알지 못했다. 그들이 매주 상여 시위를 하더라도 삼중수소 누출과 같은 사고가 나거나 굵직한 행사가 아니고서는 그들의 싸움을 기사를 통해 확인하기 어렵다. 기사로 나온다고 해도 사회, 정치, 환경이 아닌 ‘지역’ 면에 짤막하게 나오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장미쁨 기자는 “상여 시위하는 주민이 없으면, 우리는 원전 근처에서 그들이 아무 문제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싸움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원전에 대해 사람들이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왜 다수는 원전에, 원전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에 관심이 없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핵발전에 관심을 갖지 않는 혹은 갖기 어려운 이유를 이해하기

장미쁨 기자는 핵발전 업계가 강조하고 구축해왔던 프레임을 언급하였다. 특히 핵발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과거 한국전력)은 핵발전을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원’이라 강조하며, 무한한 에너지 사용이 가능한 ‘에너토피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에너토피아는 그들이 지난 30-40년 동안 준비해왔어요. 체르노빌사고 났을 때도 언론은 조용했고, 우리나라 원전 문제와 연결하지도 않았어요. 보통은 사고나 위험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거죠.


핵발전 업계의 홍보 방식과 목표(다큐멘터리 ‘새어나온 비밀’ 중)


그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것 같고, 사람들이 원전 문제나 상여시위하는 주민에 관심이 없는 것 같지만, 그동안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원이라는 프레임으로 수행되어왔던 광고, 교과서 속 정보와 교육, 한수원을 비롯한 원전 산업이 제공하는 지원들로 인해 여론이 한순간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원전에 대한 여론이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말할 기회가 없어서 그렇지 고민은 각자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결과로 나온 거죠. 여전히 고민 중인, 원전은 여전히 우리에게 딜레마 같은 거죠. 단기적으로는 5·6호기를 짓되, 장기적으로는 탈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선택한 것을 보면요.   

  

그는 탈핵을 달성하거나 핵발전소를 줄여나가고 있는 독일과 같은 해외 사례를 통해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민주주의의 방식을 통해 복잡해 보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었다.     


한 번에 원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고민하고 관심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의 요구가 거세져야 바뀐다고 생각해요. 기술의 문제이고 법률의 문제이지만, 이는 부차적이고 사람들의 생각과 여론이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시간이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을지도 모르겠어요. 변화를 추동하는 것은 ‘주민들의 요구와 싸움’이기도 하고요. 당장 결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피해를 받는 누군가가 포기하지 않아야만, 연구나 기사 등 그들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달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결국 외로웠던 싸움이 다수의 무관심했던 혹은 잘 몰랐던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해요.


누군가에게는 핵발전이 중요한 주제일 수 있지만, 누군가는 다른 문제를 우선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나 역시 현재 우리 사회에 산적한 모든 문제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도 ‘핵발전’은 뒤로 미룰 수 있는 문제이지만 중요한 사건·사고가 발생하는 순간 다시 또 중요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장미쁨 기자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다른 고민의 무게를 고려하면 핵발전에 대해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여론’의 실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당장 어떤 문제를 바꾸지 못하거나, 누군가의 싸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노력이나 기록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잖아요. 당장의 해답과 도움, 실질적인 변화를 바라고 행동하는 것이 어쩌면 본인에게는 더 큰 실망으로 돌아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는 글을 왜 쓰는가?” “나는 왜 연구하는가?”라는 나의 질문과 고민은 그가 던진 “나는 무엇을,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 “나는 어떤 기자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     


정의와 공정, 환경과 노동, 민주주의와 시민의 안전, 약자와 소수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의미 있는 기사를 쓰겠습니다. 짧고 전형적인 방송 기사에서 벗어나 기사에 맥락을 담으려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좀 길어도, 어려워도 끝까지 읽고 경청해 주시면, 더 성실한 기사로 보답하겠습니다.     


그가 홈페이지에 적은 자기소개처럼, 짧고 전형적인 기사가 아닌 맥락을 담아 독자의 이해를 넓히기 위한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핵발전’에 대해 무관심하고 무감각한 이유를 시민 탓으로 돌리기보다 그들의 딜레마와 서로 다른 고민의 무게를 고민하고 있기에 ‘여론’의 실체를 감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에 더해 그가 고민하는 것은 바로 ‘한수원의 대응 방식과 태도’였다. 다른 이슈만큼이나 핵발전은 ‘찬핵과 탈핵 혹은 반핵’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 속에서 이해될 만큼 찬핵 진영과 탈핵 진영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며 평행선을 달려오고 있다. 나 역시 핵발전을 지지하는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눌 때마다 벽과 대화하는 것처럼 느꼈고,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편협함 때문이 아닐까’를 고민하며 나 자신을 탓하기도 했다. 수많은 기사와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들을 만난 장미쁨 기자는 한수원을 어떻게 바라보며 이해하고 있을까?


한수원이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

월성 핵발전소와 인접 주민들의 삶을 취재하면서 장미쁨 기자 역시 한수원이 문제에 대응하는 태도 혹은 행위를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원전이 주요한 산업이고 에너지원이라는 측면 외에 한수원의 태도에는 강압적이며 비도덕적인 측면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에요. 사고가 나지 않으면 방사능물질이 다 걸러져서 외부로 배출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실제 지역주민에게 한수원은 이렇게 설명했고요. ‘문제없다’ ‘배출되지 않는다’. 그런데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이것이 거짓말로 드러났고, ‘배출되지만 기준치 이하라서 괜찮다’처럼 한수원은 위험에 대응하는 논리를 계속해서 바꿔왔어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바꿔온 거죠. 최근에는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무시하거나 압박하는 방식으로 문제에 대응하고 있고요.     


핵발전을 비판하거나 주민을 무시하거나 지원금으로 압박하기도 했던 한수원은 장미쁨 기자에게는 ‘소송’으로 대응하였다.     


저한테도 소송을 걸었어요. 여러 건을 4년째 하고 있어요. 사실 언론사에 소송을 걸어 ‘누출이 없다’라며 우리가 마치 과장한 것처럼 만들려는 거잖아요. 누설된 영상이 잘못되었다며 정정하라고 ‘정정보도’ 1심 소송에서 한수원이 지니까, 반론보도로 다시 청구했어요. 저는 반론보도는 기본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데 문제는 보도하기 전에 공문을 보냈고 인터뷰에 응하지도 않다가 이후 정정보도 소송을 내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으니 다시 반론보도를 거는 것이 문제라고 보는 거죠. 변호사도 이것을 ‘반론권 남용’이라고 비판했어요.     


장미쁨 기자는 2021년에는 정말 힘들었지만, 지금은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한수원이 제기한 다수의 소송에 위축되기보다는 오히려 2022년에 다큐멘터리 ‘새어나온 비밀’을 만든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한다면 소송을 당하더라도 괜찮다며 스스로 단련해나갔던 것 같아요. 소송때문에 다큐가 나왔을 수도 있어요. 계속 재판을 준비하면서 삼중수소 관련 자료도 찾아보고, 최신 기사나 논문도 찾아봤던 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거든요. 기자들은 기사를 써서 내보내면 끝이에요, 다음 이슈가 없으면. 근데 재판이 있으니까 계속 자료를 찾아보면서 이 주제나 이슈에 대해 업데이트를 할 수 있었던 거죠.


다큐멘터리 ‘새어나온 비밀’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중


장미쁨 기자는 “확신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맞는,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 허위보도가 아니라는 확신”이 드는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한수원의 대응을 함께 고민했다.     


왜 인정을 안 하지, 왜 막으려고만 하지. 소송당하면서 압박도 받았지만, 절대 위축되지 않았던 이유는 맞는, 옳은 일이라는 확신 때문이에요. 뉴스를 만들고 특히 다큐 만들 때, ‘이렇게까지 인정하지 못하는 문제는 아니지 않나’라는 문제의식이 점차 커지게 됐어요.


한수원의 이해되지 않는 행태를 이해하다: 과학이 아닌 무조건적인 신념과 신화 사이

장미쁨 기자는 내가 하던 고민, “왜 나는 핵발전을 옹호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며 왜 우리는 정상적인 대화와 토론이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도 수없이 던졌다고 말했다. 우리가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바로 과학이 아닌 신념 혹은 신화의 언어로 문제를 대응하며 설명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위험가능성’을 인정하는 순간 핵발전의 아성이 무너지는 것인가. ‘외부로 100% 유출되지 않았다’라고 확신에 차서 말하는 것이 과연 과학의 언어인가? 그들은 어쩌면 과학이 아닌 신화에 기대어 ‘원전의 아성’을 부여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는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를 언급하며, ‘탈핵과 반핵’으로 접근하지 않더라도 한수원의 행태는 지극히 ‘비상식적’이고 ‘반상식적’이라고 강조했다.     


가장 과학적이어야 할 이들의 언어와 태도가 결코 ‘과학적’이지 않잖아요. 과학은 오류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하는데, 그들은 ‘오류가능성’과 ‘위험가능성’을 절대 인정하지 않잖아요. 원전을 찬성하거나 전문가를 만나 이야기하면서 느낀 특징이에요.     


그는 “가장 과학적이어야 할 집단이, 비과학적인 언어로 원전을 옹호하는 것”을 느리지만 힘주어 말했다. 삼중수소가 외부로 유출되었을 때, 한수원은 ‘비계획적 누출’이라며 한사코 사건이나 사고로 불리는 것을 경계했다. 또한, 장미쁨 기자의 말처럼 최소한의 위험가능성과 유출가능성을 인정하고 ‘안전’과 ‘감시’ 그리고 ‘규제’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놓치고 ‘기준치 이하’와 ‘멸치 바나나’를 끊임없이 소환함으로써 논쟁의 핵심 이슈를 흐릿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한수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나의 문제인가... 저를 의심하고 비판한 적도 많았어요. 왜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지, 왜 그들의 행동을 비판적으로만 보는 거지. 결국 제가 고민한 결과는 그들은 비판하는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여, “왜 핵발전을 안 믿어, 왜 핵발전을 의심해?”라는 고압적이고 전근대적인 태도라고 생각했어요. 마치 중세시대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취급하고 적으로 규정하는 것처럼, 무조건적인 신념이 만들어낸 태도와 행동이 아닐까요. 대학교 ‘과학기술철학’ 교양수업을 들었는데. 원전은 중앙집중적인 사회와 권위적인 사회에 적합한 과학기술이라고 배운게 생각이 나더라고요.     


실제 로버트 융크라는 학자는 에너지 소비가 증가하고 핵발전이 확대되면 이에 강하게 의존하는 국가, 즉 ‘원자력 국가’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원자력 국가는 민주주의나 인권 같은 가치보다 원전을 우선 보호한다고 경고하였다.     


삼중수소 누출 관련 보도 이후 나아리 마을에 걸린 현수막


지역 언론의 미래밝지만은 않지만꼭 필요한 지역 언론의 가치

포항 MBC는 2021년 1월 7일부터 삼중수소 누출과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 균열 등 월성 핵발전소 안전성과 관련된 보도를 잇달아 방송하면서 원인조사와 대책 수립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당시 한 정치인은 “뻥튀기하고 침소봉대한 가짜뉴스”라고 주장하며, 지역의 중요한 문제를 보도하고 지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지역방송의 가치를 훼손하였다. 원론적일 수도 있지만, “지역 언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지역 언론의 미래는 지역적 가치, 소외당하는 사람과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것을 모른 척한다면, 지역 언론은 그저 지역축제를 취재하고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홍보하는 창구로 전락하는 것이 아닐지 고민이 돼요. 물론 그러한 기사도 필요하지만, 지역방송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는 “지역 언론만이 아니라 기자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정말 회의적”이라며 현재 상황이 기자에게 좋은 환경은 아니라고 말했다.     


혼자서 기사를 쓰려고 해도 회사 안의 동료나 업계 동료에게 지지를 받기 어려운 구조가 되었죠. 제가 노조위원장을 해보니 방송국에 기자만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기자가 7-8명이라면 비제작부서가 그 이상이에요. 그분들이 볼 때는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는 거죠. 경영상황이 좋거나 회사가 잘 나가면 문제가 없는데,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서로 다른 관점이 충돌하고 원전이나 포스코처럼 지역에서 영향력이 큰 기업들을 취재하는 것이 예민해지는 거죠.     


지금까지 생각이 비슷하고 한편으로는 의지했었던 선배 기자들이 곧 은퇴하기에 개인적으로도 고민이 커지는 시기라고 말했다.


포항 MBC의 경우에는 포스코와 한수원이 지역에서 가장 큰 기업이니까, 그들을 취재하고 특히 사건이나 사고를 다룬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아요. 게다가 기사가 아닌 광고, 협찬처럼 기업의 수익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쉽지 않은 거죠. 이게 전반적인 기자와 저널리즘이 침체하는 주요한 이유라고 생각해요. 광고나 회사의 만성적자 문제가 맞물리면서 보도를 제대로 하려는 기자들이 내부에서조차 힘을 못 받는 상황이 잦아지는 거예요.     


‘광고, 협찬’과 ‘보도’를 두고 서로 다른 가치와 의견이 충돌하고 실제 한수원이 그에게 제기했던 소송들까지. 이런 현실과 고민 속에서 장미쁨 기자는 작년 나아리 마을의 이장선거를 취재하면서 뭉클하면서도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작은 마을나아리에서 벌어진 위대한 승리

2023년 3월 15일,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마을(370세대)에 이장선거 주민투표가 열렸다. 나아리라는 마을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나아리 이장이 가지고 있는 힘을 모른다면 이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이장 투표를, 장미쁨 기자가 왜 취재하고 보도했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수년 동안 주민 갈등을 빚어온 원전지원금 사용의 회계투명성 문제가 핵심 이슈였다. 2016년부터 이장을 역임하면서 60억 원 규모의 원전지원금으로 풀빌라 사업을 추진하였지만, 갈등을 빚어온 전 이장과 ‘의혹 해소’를 촉구하면서 화합과 발전을 강조한 후보(현 이장)가 경쟁하였다.

1,000명도 살지 않는 작은 마을이지만 핵발전과 주민과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할 수 있는지, 지금까지처럼 돈과 지원금을 위해 핵발전을 지지할 수밖에 없는 마을이 될 것인지, 아니면 적어도 주민의 요구와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보루가 될 것인지와 연결된 중요한 선거이기도 했다.


이장 선거 이후 마을에 달린 현수막


큰 기대는 안 했어요. 어차피 저는 전 이장이 이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김철종 이장님이 됐고, 부끄러웠어요. 우리 회사가 침체되어 다시 ‘저널리즘’이 무엇인가를 고민했던 시기였는데, 이 마을은 투표를 통해서 핵발전을 지지하는 전 이장이 아니라 새로운 이장을 선택한 거죠. 전 이장은 너무 충실하게 한수원을 대변하던 사람이잖아요. “새로운 후보가 한수원에 친화적이진 않지만, 뽑아야 한다, 바꿔야 한다”라는 생각이 있었던 거죠. 그게 아니라면 몇 년 째 한수원과 사이가 좋았던 전 이장이 아닌 새로운 이장을 선택할 이유가 없잖아요. 게다가 새로운 이장은 전 이장의 행태, 비리들을 비판하면서 나온 분이라는 거죠. 이 작은 마을에서 벌어졌던 이장 투표가 ‘위대’하게 느껴졌어요. 주민들이 변화를 선택한 걸로 보였어요. 제가 사실 큰 기대 없이 취재했고, 무기력감에 빠져있었는데 자극도 받고 감동했어요. 최소한 원전에서 나오는 지원금, 목숨값이라고 부르는 돈을 바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전 이장을 선택하지 않은 거죠.     


나도 그랬다. ‘이주대책위’를 제외하면 다수 마을주민은 전 이장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한수원으로부터 받는 지원과 혜택에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전히 이주대책위를 비롯하여 핵발전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이들도 있지만, 적어도 나아리 주민들은 ‘마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선거 결과를 만들어냈다.     


제삼자가 보면, 주민 간 다툼이나 갈등, 돈 때문에 싸운다고 볼 수 있어요. 그러나 공익적인 명분이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결과가 없음에도 마을을 지키기 위해 앞장서서 싸우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분이 이장 후보로 나왔잖아요. 이들이 평소에는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수 없지만, 변화를 선택한 사람들이에요. 물론 탈핵을 내세우진 않았지만, 적어도 자신들의 목숨값으로 나온 지원금을 제대로 쓰겠다, 바로 잡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행동으로 보여준 거죠. 이분들이 단번에 탈핵을 요구할 순 없겠죠. 그러나 마을에서는 탈핵만큼이나 중요한 나아리 마을 이장, 이장이 갖는 힘과 상징성, 한수원과의 관계를 통해 한수원에 너무 기울어진 이장에 경고한 거죠.


장미쁨 기자는 “내가 제 직업에 가지고 있는 확신 못지않게, 주민들도 문제가 있는 이장을 바꾸고, 지역과 동네에 대한 애정과 확신으로 변화를 이루어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는 감동적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선배들이 왜 자꾸 이걸 보도하냐고 했어요. 이장선거를 굳이 취재할 필요가 있냐며 이해하지 못했죠. 이들을 취재하면서, 신념 혹은 가치, 저널리즘, 기자에 대한 직업의식이 없으면 버티기가 쉽지 않은 우리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지역에서 기사를 쓰는 것이 힘들면서도 의미 있다고 생각했고, 또 그런 기사를 쓰는 선배들을 만나 배우고 버틸 수 있었거든요. 물론 앞으로의 상황은 계속 힘들어지겠죠.     


그는 여전히 기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지역방송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2024년 5월 21일 <ESG 시대, 지역 미디어의 역할과 미래>라는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 장미쁨 기자는 지역 언론의 존재 가치와 기자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지역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결국 지역이라는 소외된 공간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의 가치가 쉽게 부정당하는 시대지만,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장미쁨들’을 응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


월성 핵발전소 앞 나아해변에서 촬영 중인 장미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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