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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탈핵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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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옥 May 23. 2024

다음 세대 생존을 숙주 삼은 사람들, 어쩌자고 그랬을까

[탈핵잇다_시즌 2] 두 번째 이야기, 신혜정 시인의 대한민국 원전기행문

5월 13일 움막 같은 농성장에 들어서니 집회 준비로 분주하던 주민 한 분이 우리 일행을 반가이 맞는다. 2014년부터 시작한 나아리 이주대책위 사람들의 '이주대책 상여시위'가 8월이면 10년 세월을 맞는다.
이주대책 농성장에서 4기의 돔이 보이는 월성핵발전소 앞까지 거리는 362미터 남짓. 나아리 주민과 울산, 부산, 밀양, 성주, 서울 등에서 온 연대자 스물네 명이 상여와 핵폐기물 드럼통 모형을 밀며 길고도 느리게 걷는다.
앰프에서는 애절한 상여소리가 울려 퍼진다. 상여시위대에 막힌 출근 차량의 줄이 길게 늘어서고, 인근을 지나려다 멈춰 선 차량 사이로 짜증스러운 경적이 울린다.

우린 10년을 기다렸는데 당신들은 10분도 못 기다리냐!


상여시위대 어딘가에서 터져 나온 소리. 주민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상여소리에 맞춰 자신의 이름을 적은 상여를 느릿느릿 끌어낸다.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마을은 바다와 핵발전소를 끼고 살아가는 마을이다. 

                     

오월의 물빛을 받은 문무대왕릉이 더욱 늠름하다. 사적 158호 문무대왕릉이 신월성 3·4호기의 추가 건설은 막았지만, 경주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들어섰다. ⓒ 이태옥


월성핵발전소 4기에 더해 신월성 핵발전소가 1, 2호기로 마무리된 것은 사적 158호로 지정된 문무대왕릉이 너무 가깝기 때문이라는 신혜정 시인의 말이 떠오른다. 시인의 말처럼 '나아 해수욕장'에서 해변을 보다가 고개를 왼편으로 살짝 돌리면 4기의 원자로 돔이, 다시 오른쪽으로 고래를 돌리면 해변에 자리 잡은 횟집이며 식당들이 보였다.

어느 평일의 나른한 오후, 우연히 집어 들었던 책 <원자력의 거짓말> 서문 책장을 넘기다 허리를 곧추세운 채 단숨에 읽고 대한민국 핵발전소를 찾아 7번 국도에 올라탄 신혜정 시인은 2014년 핵발전소 돔이 훤히 드러난 나아 해변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을 만난다.

천 년 전 삼국통일을 완성하고 죽어서도 바다를 지키겠다는 유언에 따라 수중에 지어진 왕의 무덤 앞에 세워진 핵발전소를 보며 시인은 "다시 천년이 지났을 때 우리 후손은 우리가 남긴 핵폐기물과 원자로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라고 묻는다.

아름다운 여행길로 소개된 7번 국도와 77번 국도를 따라 줄지어 선 핵발전소를 찾아 나선 대한민국 원전기행문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나>에서 시인은 '돔이 보이는 나아해변'이라는 소제목으로 월성핵발전소 이야기를 전한다.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나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나>를 쓴 신혜정 시인 ⓒ 이태옥


아직도 영광에서 생명·평화·탈핵순례(아래 탈핵순례)를 하고 계신다고요?
그럼요. 5월 21일이면 600차 탈핵순례예요.


2014년 5월 유난히 더웠던 날, 22km를 걷고 기도하는 탈핵순례에서 만났던 기억을 되살려 보니, 아뿔사 시인과의 만남이 10년의 세월을 건너왔다.

'탈핵 잇다 시즌2'를 준비하면서 만난 책 '신혜정 시인의 대한민국 원자력발전소 기행'이라는 부제를 달고 출판된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나>의 저자가 수줍게 인사하던 그때의 시인일 줄 몰랐다. 2015년 6월 출간되었으나 이 책은 여전히 탈핵 교과서로 읽히기에 충분했다.

그사이 핵발전소가 24기에서 26기로 늘었고 고리1호기, 월성1호기는 영구 폐쇄가 결정되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촛불정부의 탈핵 선언이 있었지만, 선언만 존재했을 뿐이고, 윤석열 정부의 핵진흥 정책 폭주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중이다.

이 책의 존재를 몰랐던 나는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나?"라는 같은 물음을 안고 시인의 핵발전소 기행을 따라 읽었다. "인간은 어쩌자고 저런 괴물을 만들었을까"라는 시인의 탄식은 나의 탄식과 같았고, 핵발전이 비윤리적이고 비효율적이고 미완의 기술임을 설명하는 글에는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이며, "외워버리자"라고 다짐했다.

책 뒤편에 붙인 132개의 주석을 따라가다 보니 시인이 읽고 탐구했을 책과 자료의 양을 짐작할 수 있었다. 탈핵이야기를 "쉽게 써야겠다"라는 시인의 다짐은 "쉽게 말해야겠다"라는 나의 다짐과 같았다. 만나기도 전에 시인을 만난 것 같았다.

지난 5월 9일 서울 합정역 카페에서 만난 시인은 한결 건강하고 경쾌한 모습이었다. 내가 대뜸 물었다.


문명사에 관심도 많고 탐구력이 높고, 과학 좋아하시죠?
어떻게 아셨어요?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한 문장이 거대한 시스템에 접근하게 했죠


원자핵공학자이자 일본의 반핵운동가 고이데 히로아키는자신의 책 <원자력의 거짓말> 서문에 이렇게 썼다.


여러분께, 특히 젊은 사람들과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에게 정말로 미안하고, 힘없는 내가 한심하기도 합니다.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나> 10p)


후쿠시마 핵사고가 있었지만, 핵발전소에 대한 지식이나 관심이 특별하게 있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서문을 읽는 순간 코끝이 찡해왔어요.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핵발전소 관련한 책을 쓰게 될 것 같은 느낌이 왔고 관련된 책과 논문, 자료들을 찾아 읽었어요.


시인은 한국에서 발간된 30~40권의 핵발전소 관련 책을 찾아 읽었고 도서관, 원자력 관련 기관 자료실을 뒤졌다. 논문 읽기를 즐기고 문명사에 관심이 많은 시인은 온라인에서 의외의 자료들을 건져 올렸다. 파고들수록 핵발전소는 '전기'문제가 아니라 굉장히 '거대한 시스템'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핵폐기물은 폐기가 안 되잖아요. 현재로서는 격리가 최선이던데 폐기 방법도 없는 핵발전소를 왜 운영하는지 제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책을 읽고 자료를 찾으며 파고 들다 보니 어느새 정치와 권력, 군수산업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핵발전소 생태계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거예요.


우리나라 핵발전소 이야기와 자료를 찾기 어려웠고 국가기밀산업인 핵발전소는 지도에도 표기되지 않았다.


제가 지도 보는 걸 또 좋아해요. 빨간펜을 들고 지도를 펼쳐 들었죠.


7번·77번 국도 위에 서다


7번 국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도로 꼽히는 이 길은 강원도 고성부터 부산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다. 울진, 경주, 부산까지 원전은 모두 7번 국도변에 있다. 그리고 네 번째 원전단지인 영광은 인천부터 부산까지 이어지는 서해안도로 77번 국도위에 있다.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나> 11p)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는 먼 이야기라 해도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24기(2015년 기준)의 핵발전소를 눈으로 보고 싶었다. 지도에 점자처럼 붉은 점을 찍으며 발전소들의 위치를 꿰 나가던 시인은 비효율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는 양수발전소가 있는 양양과 송전탑 문제로 몸살을 앓는 밀양을 첫 번째 기행지로 택한다.


강의 주변부에 인공저수지, 즉 댐을 만들고 그 물을 위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산에 길고 경사진 터널을 만들어요. 만들고 남는 전력을 활용해 물을 상부로 끌어올립니다. 그리고 전기가 모자랄 때 물을 하부로 떨어트려 전기를 생산하는 수력발전으로, 잉여전기 때문에 필요한 시설입니다. 주로 핵발전소의 남는 전기를 저장하는 잉여시설이에요. '양수(들어 올림)'하여 전기를 저장하는 방식이지요. 제가 양양 양수발전소를 보려고 하부댐으로 내려가는데 아무도 없더라고요. 막는 사람도 없었고, 혼자 내려가는데 무서워서 잠시 보고 돌아 나왔어요.


시인은 양수발전소 같은 보조 발전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직 핵기술이 완성되지 않은 증거라고 말한다. 발전은 했는데 쉽게 끄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출발은 했는데 멈추기가 쉽지 않은 기술이라는 것이다.

핵발전은 수요에 따라 스위치를 마음대로 온·오프 할 수 없다. 일단 운전을 시작하면 최소 일 년은 거의 가동률 100퍼센트로 계속 발전해야 한다. 소비전력이 줄어드는 야간에도 가동률을 조정할 수 없으니 남은 전기는 버려진다. 소비전력이 감소하는 봄·가을, 주말과 휴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렇게 남은 전기 소비를 위한 시설이 양수발전소이다. 양수발전소를 위한 임시 댐은 수질오염의 원인으로 지적되었고, 책에는 남대천의 오염을 다룬 기사들을 실어놓았다.


밀양765kV, 청도345kV 송전탑반대 투쟁은 우리가 매일 사용했던 전기의 민낯을 드러냈다. 2014년 101번 농성장  ⓒ 신혜정


핵발전소가 해안으로 간 까닭은 핵분열로 달궈진 원자로를 식힐 수 있는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도시로 발전한 전기를 보낼 송전 시설이 필요하고, 송전탑 또한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어요. 산골 마을 밀양이 송전탑 뒤에 핵발전소가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지요.


2007년 11월 '신고리원전-북경남변전소 765킬로볼트(kv) 송전선로 건설사업 승인 허가'가 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송전탑 저지 투쟁은 이치우, 유한숙씨 등 피해 주민이 목숨을 끊으면서 사회 문제로 확산하였다. 송전탑 건설 예정지인 산속에 움막을 짓고 저항해 온 밀양주민들의 눈물겨운 투쟁으로 온 국민이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라는 명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핵발전소가 늘어날수록 송전선로, 변전소, 양수발전, 온배수 문제 등 다양한 갈등이 생겨요. 재산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송전탑건설 반대 투쟁은 핵발전의 비효율성과 비경제성이 문제의 본질이에요.


오는 6월 8일 밀양행정대집행 10주년 집회 명이 '윤석열 핵폭주 원천봉쇄 결의대회'다. 10년 전 6월 11일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으로 시인도 하룻밤 묵었을 산꼭대기 101호 움막을 밀어낸 자리에서 승리의 V자를 그리고 기념사진을 찍었던 경찰들의 환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


핵발전은 핵무기를 향한 욕망


최초의 핵무기 보유국인 미국이 '맨하튼 계획'이라는 암호명으로 개발한 핵무기는 1945년 일본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투하돼 2차 대전을 종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새로운 핵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1953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Atom for peace)'을 선언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은 원자력발전이었어요. 핵무기를 위해 비축해 둔 농축우라늄 연료를 사용할 또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찾은 거지요. 핵기술은 발전이라는 새로운 옷을 입고 일상으로 들어왔어요. 영어로 핵발전소(nuclear power plant)니까 원자(atom)력발전은 잘못된 표현이에요.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덜 드러내고 감추려는 의도가 작용했던 거죠.


시인은 책에서도 '원자력'은 '핵력'으로 '원자로'는 '반응로'로 사용후핵연료는 '핵폐기물'로 불러야 정확하다고 지적한다. 한수원이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을 '계속운전'이라고 우기는 것과 같은 이야기다. 이 책에서는 '용어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가급적 원자력발전소라는 일반화된 명칭을 사용하고, 이론적인 설명 등 필요한 경우 핵발전소라는 표현을 함께 썼다'라는 시인의 설명처럼 이번 인터뷰도 '원전과 핵발전'을 혼용할 수밖에 없었다.

시인은 '원전' 말고 '핵발전소'가 일반용어가 되는 것도 탈핵 운동의 저변을 넓히는 일이라 짚는다.


핵연료 자체가 전쟁의 기술에서 나온 거잖아요. 우라늄 농축 농도에 따라 핵무기가 되기도 하고 전기가 되기도 하지만 핵연료 자체가 살생을 전제로 만든 거잖아요. 전쟁 무기를 만드는 기술로부터 시작된 거니 윤리적일 수가 없어요. 전쟁으로 군수산업이 성장하고 권력을 키워가는데 그 중독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운 거죠.


시인은 핵발전소 생태계의 근간은 핵무기를 향한 욕망이라고 설명한다.


핵발전소를 운영한다는 것은 핵무기를 간접적으로 소유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우리나라도 박정희 정권 때 핵무기 개발을 목적으로 핵발전소를 받아들였잖아요. 소위 핵발전소 강국이라는 나라들 욕망의 본질은 같지 않을까요? 게다가 핵발전소는 가장 큰 토건 산업이잖아요.


'핵' 카르텔이 '핵' 진흥 정책을 강고하게 떠받치고 있다는 말이다.


경주 방폐장과 온칼로


방폐장 부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부는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렸는데, 바로 안전성 문제다. 주민의 수용성만으로 지역을 선정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안전성을 도외시한 것이다.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나> 76p)


1986년부터 시도한 핵폐기장 부지선정 때마다 큰 싸움이 일어났다. 울진, 영덕, 안면도, 굴업도, 부안 등 부지로 이름이 오르내리거나 확정이 된 후에도 목숨을 건 주민들의 투쟁이 이어졌고 극심한 사회적 갈등이 일어났다.

비교적 방사능 오염정도가 약한 중저준위 핵폐기장에 대한 파격적인 예산지원과 홍보를 내세운 끝에 유치를 신청한 경주가 덜컥 선정되었다. 부실한 암반과 지하수 오염 등 안전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면서 2차례에 걸친 중단으로 공사 기간을 훌쩍 넘기고 2015년 3월부터 본격 운영되었다. 경주 중저준위 핵폐기장은 300년 동안 안전하게 핵폐기물을 보관할 수 있을까?


방사능은 짧게 30일에서 40일, 길게는 30만 년 이상 지속돼요. 30~40년 전기를 사용하기 위해 30만 년 이상 지속되는 방사능물질을 관리해야 하는데 가능한가요? 이런 비효율적이고 미완의 기술이 어떻게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에너지원이 되었는지에 대해 자꾸 질문해야 해요.


핵발전에 의해 생산된 전기는 이미 주어졌을 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젊은이와 미래세대에게 엄청난 책임을 전가해야 하는 일이다. 30만 년 후 인류는 존재할 수 있을까?  


이 곳은 핵폐기물이 저장돼 있으니 절대 접근하지 말라고 ‘온칼로’에 표시를 해두어도, 10만 년 후 생명체가 지금의 언어와 기호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태옥


세계 어떤 나라도 핵폐기물을 없애거나 방사능을 줄이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부지선정까지 완료하고 사용후핵연료를 묻어 둘 세계 최초의 핵폐기장을 건설 중인 나라가 바로 핀란드다.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나> 180p)


온칼로는 핀란드어로 '숨겨진 곳'이라는 뜻이다. 사용후핵연료 즉, 고준위핵폐기물은 기준에 따라 최소한 관리 기간을 30만 년 혹은 100만 년으로 산정하기도 한다. 현생인류로 보는 호모에렉투스가 출현한 시기가 15만 년~25만 년 전이고 크로마뇽인이 유럽지역에 출현한 것이 3만 년 전이다.

시인은 "어떤 문명이 적어도 10만 년 이상 생존해서 온칼로와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인간이기는 할까?"라고 묻는다. 온칼로의 고민은 10만 년이 지나도 '위험물'임을 알 수 있는 언어와 기호, 그리고 기술을 고안해 내야 한다는 점이다.


온칼로 한번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은 새로운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 도처에 생기게 될 온칼로를 어떻게 안전하게 지을까를 고민해야 할 때예요.


세계 33개국 164개 핵발전소 412개 원자로에서 지금도 쏟아져 나오는 고준위 핵폐기물을 보관할 온칼로가 최소한 33개 필요하다.

세계 최초 고준위 핵폐기장 부지로 선정된 핀란드 올킬루오토 섬은 18억 년 동안 암반의 움직임이 없었고, 앞으로도 지각판이 움직이지 않을 곳이라는 예측이 더해져 17년 만에 부지로 선정되었다. 핀란드 온칼로는 오는 2025년 가동을 시작해 100년 동안 6,500톤가량의 고준위 핵폐기물을 저장한다는 계획이다. 

22세기에나 끝나는 프로젝트다. 

활성단층 위에 핵발전소가 줄줄이 지어진 우리나라는 언감생심이다.


폐기물을 처리할 방법이 없는 핵발전 기술은 미완이에요.


시인의 말이 따갑다.


질문을 바꾸고 대안을 만들어야죠


단언컨대, 원전은 그 어떤 경우에도 대안이 될 수 없다. 원전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영양제인 줄 알고 마약을 손녀에게 먹였는데, 마약의 위험성을 인지한 뒤로도 손녀가 계속 원한다는 이유로 끊지 않고 계속 제공하는 것과 같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바로 아랫세대, 그다음 세대의 건강한 삶도 보장할 수 없는 사회시스템을 구성해 놓았다. 핵의 기반 위에 세워진 시스템은 다음 세대의 생존을 숙주로 삼고 있다.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나>184p)


시인은 질문을 바꾸자고 한다. 핵에서 벗어나자고 하면 따라붙는 질문이 '대안은 있는가?'이다. 핵발전소 없는 세상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는 '전기수요'가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답변'보다 '질문'을 바꾸자는 것이다. 시인은 이렇게 질문한다. '탈핵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연구와 국제 핵비확산 감시를 위해 설립된 국제원자력기구 IAEA에 대적할 만한 단체를 만들면 좋겠어요. 400개가 넘는 핵발전소가 줄줄이 폐로를 기다리고 있으니 앞으로 폐로 시장이 크게 열릴 거예요. 핵공학자, 핵기술자들은 천년 동안 일자리 잃을 일은 없어요. 그러니 '세계 폐로위원회'나 '세계 폐로재단' 같은 것을 만들어서 더 늦기 전에 핵발전의 안전한 퇴장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질문을 바꾸니 상상의 폭이 넓어진다. 2015년 12월 22일 설계수명이 다하는 한빛 1호기의 퇴장을 위해서 시인은 '한빛1호기 폐쇄 선포식 준비위원회'를 만들고, 예산부터 선점하라고 제안한다.


돈이 있는 곳에 일이 따라오잖아요.


2024년 지금, 2015년 시인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세상의 소란함에 눈감지 말아야겠다는 다짐


시인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내가 사는 세계에 대한 자신만의 세계관이 필요한 거죠. 문학 하는 사람은 질문하는 사람인데 내가 사는 세계에 질문하지 않고 호기심이 없다면 과연 문학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요? 함께 살아가는 시대의 문제를 도외시하거나, 스스로를 추동하지 않는 순간이 곧 문학에 대한 발판을 잃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려고 합니다.


시인은 아름다움을 노래하려면 '주변 탐구를 게을리 하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핵발전소가 지속되면 아름다움이 사라지니 시인에게 탈핵은 문학 활동인 셈이다.


개개인이 거대한 시스템에 맞서 무엇을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학습된 구조에 머무르지 말고 질문을 하면서 인식을 확장해 나갔으면 해요. 그러다 보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반대' 시위라도 한번 나갈 수 있고 투표를 통해 의견을 표출할 수도 있어요. 그래야 세상이 바뀌죠.


신혜정 시인의 대한민국 원자력발전소 기행 <왜 나에게 왜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나>는 '하루라도 피폭 노동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핵발전소와 노동이야기, 내 안마당은 안 되고 네 안마당에 지으라는 님비보다 더 지독한 지역차별 이야기, 우라늄 채굴과정부터 가공하는 모든 과정에서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온배수가 바다를 데워 기후위기의 대안이 아니다'라는 이야기 등 을 잔뜩 담고 있다. 그러니 독자들에게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시인의 마지막 당부다.


세월이 흘렀지만 이 책이 탈핵에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합니다.그리고 제가 틀리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시인의 말마따나 이제는 바람의 방향을 바꿀 때이다. 

시인에게 후속작을 써야 한다고 졸라야겠다.  



덧붙이는 글 | '탈핵잇다 시즌2'는 ‘숲과나눔 소규모 연구모임 지원사업 풀씨연구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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