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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탈핵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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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창 Apr 30. 2024

소박한 자유인, 청명

탈핵잇다_시즌2의 첫번째 이야기

나이가 든다는 건 어쩌면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나만의 관점을 형성하는 과정일 것이다. 친구 혹은 동료라는 이름의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나와 다른 사람과는 멀어지거나 적어도 예민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애매한 사이가 되기도 한다. 내가 그랬다. 핵발전 관련 일을 하는 사촌 형과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핵발전을 지지하는 사람을 만나면 마치 꿈쩍 않는 벽과 대화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그들을 먼저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싸우고 설득시켜 끝끝내 굴복시켜야 할 존재로 바라봤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다 나는 누군가를 왜 그리도 미워하거나 두려워하는 어른이 되었나. 나이가 든다는 건 어쩌면 ‘동료 시민’을 적으로, ‘다름’을 틀림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아주 좁고 작은 창문들을 더 많이 갖게 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일까, 페이스북에서 웃으며 순례하고, 운동하고, 연대하는 한 사람의 글과 사진에 눈길이 갔다. 청명이었다. 몽블랑에서도, 길거리에서도, 그를 잘 아는 사람만이 아닌 처음 보는 사람과도 웃으며 그 순간을 즐기는 듯했다.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는 어떻게 바쁜 삶 속에서 탈핵 운동을 하고, 다양한 활동과 실천을 지치지 않고 하는지. 어떻게 ‘즐겁지만은 않은 일들을’ 웃으며 할 수 있는 걸까. 그는 어떤 창문으로 이 사회와 사람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탈핵잇다 시즌2, 첫 번째 주인공은 바로 청명이다. 4월 23일 청주충북 기후순례를 마친 그와 약 1시간 반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의 이름은 장미영, 그러나 페이스북 계정은 ‘청명’이라는 활동명으로 만들었다. 순례할 때 다양한 사람을 만나 자기소개를 주고받았지만,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본인’을 설명할 때조차 계급과 권력이 드러났다.


계급적인 발언을 하거나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큰 차이가 있었어요. 가령, 교수님이 하는 말에는 모두가 다 괜찮다고 생각했고, ‘님’이 붙는 직업과 ‘님’이 붙지 않는 직업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서열, 계급, 권력을 없애기 위해 제일 먼저 활동명을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그의 자녀가 다니던 실상사 작은학교는 ‘농사’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고 기본적인 공부 중 하나였다. 학생들은 절기가 적혀 있는 달력을 가지고 있었고 자녀의 방에도 그 달력이 걸려 있었다. 그는 예로부터 농사를 시작하는 중요한 날인 ‘청명’으로 정했다. ‘농사’는 그를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벗어나 자급자족하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에 활동명을 청명으로 정한 것이 아니었을까.


물론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 완전히 벗어나 사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로서 온전히 살아가는 삶을 만들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들 눈에는 힘들어 보이지만 제가 택한 즐거운 삶인 거죠.


탐욕을 미덕으로 여기게 만드는 자본주의하에서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청명에게 중요한 농사를 먼저 물어보았다. 그는 특이하게도 ‘섞어짓기’라는 이름의 농사를 짓고 있었다. 이것저것 막 섞어서 농사짓는다는 의미일까? 너무도 낯선 ‘섞어짓기’가 무엇인지 먼저 물었다.


농사도 제 에너지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텃밭을 가꾸고 있어요. 그 이상을 한다면 그건 또 다른 욕망이고 욕심이겠죠. 현재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시스템 중 30%를 이 텃밭으로 만들고 있어요. 먹고 살기 위해 섞어짓기 방법을 사용했죠. 섞어짓기를 통해 30평의 땅도 60-70평처럼 사용할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작물들 사이에도 서로 이롭거나 해로운 작물이 있다는 거예요. 궁합이 잘 맞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작물, 자연 그리고 숲에도 궁합이 있어요.


청명은 고랑과 이랑을 만들어 틀이나 경계를 만들지 않고, 조화롭게 작물들이 커가는 환경을 만들었다. 약을 안 치기 위해 토마토를 부추랑 같이 심었다. 허브를 심으면 벌레를 쫓아 주기 때문에 다른 작물들 중간중간에 심기도 하였다. 서로 도움이 되는 식물들 위주로 심었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 식물도 다른 곳에 따로 심었다.     

안 맞는다고 기피하고 배제할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심으면 돼요. 그들도 저의 텃밭을 이루는 하나니까. 사람 사는 것과 똑같아요. 나랑 다르다고 해서 비난하고 배제해 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다름을 인정하는 거죠. 섞어짓기란 저에게 ‘섞어서 살아가기’와 같아요.


해방클럽 순례 이후(2024년 4월 11일), 출처: 청명 페이스북


나와 다른 사람들을 인정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말은 쉽지만 정작 그런 사람들을 만나 기본적인 이야기하는 것조차 힘이 드는 ‘소통할 수 없는 사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얘기 해도 될까, 저 얘기는 피해야겠지’라고 눈치 보거나, 어떤 주제로 충돌하면 함께 살아가던 동료 시민이 아니라 서로를 이겨야 하는 적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탈핵순례하면서 그는 어떤 사람들을 만났을까? 탈핵을 외치는 그에게 핵발전소를 지지하고 찬성하는 사람들은 어떤 날이 선 말들을 해 왔을까? 또한, 그는 그들을 어떻게 대했을까?     


일주일 중 3일은 최소한의 돈을 벌고 일하는 날이라면, 나머지 4일은 그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급자족하는 삶과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보내요. 농사하고 공부를 하며 순례하는 거죠. 걷는다는 것은 저를 겸손하게 만들어 줘요. 나를 비워야, 내 안의 많은 것들을 비워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비로소 생기거든요. 순례는 탈핵을 외치는 것도 있지만,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그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해 비우는 과정이기도 해요.     


청명에게 순례란 봉사나 일시적인 활동이 아니라 중요한 ‘일’이며 ‘직업’이었다. 자유롭게 사는 자유인이 되기 위해 그에게 필요한 것은 비움의 시간이었다. 타인을 오롯이 듣고, 느끼고, 이해하기 위한 일.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비우지 않으면, 내가 가진 많은 것들로 인해 ‘권력’을 휘두를 것이 뻔했다. 타인을 평가하고 나와 다르다고 해서 설득시켜야 할 존재로 여기지 않기 위해 ‘순례자’는 그의 직업 중 하나가 되었다. 물론 순례를 하다가 듣거나 ‘빨갱이’ 소리를 듣기도 했다.


제가 탈핵이 적힌 몸자보나 깃발을 들고 가면, ‘너는 전기 안 쓰냐’고 말했어요. 처음에는 당연히 무서웠죠. 그런데 그분들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와 다른 사람이나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본인들과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다양성’을 고민해보지 못한 사람은 아닐까? 반대로 우리 역시 그분들에게 다가가질 않았잖아요. 탈핵운동하는 우리도 이미 잘 아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굳이 만나려 하지 않으니까, 그들은 그저 불편한 사람들로 남는 거죠. 근데 그들을 ‘공존하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웃’이라고 바라보자는 거예요. 그분들이 저에게 ‘빨갱이’라고 하면 ‘지금 좌우, 빨갱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핵발전소 폭발하면 다 죽어요’라고 말해요. 그럼 그분들도 화들짝 놀라세요. 저는 핵발전소 주변 마을과 지도를 보여줘요. 그분들은 그렇게 가까운 도시에 많은 사람이 사는 줄 몰랐던 거예요. 대전에서 청주도 30km도 안 돼요. 그럼 저를 빨갱이라고 부르던 분들도 결국 저의 탈핵운동을 응원하세요.


이렇게 순례를 통해 청명은 먼저 자신을 비우고, 다른 사람을 만나도 그들의 의견을 경청한 뒤 본인 생각을 차분히 전달하였다.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고 저항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로, 권력이잖아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 의견 너머, 기저에 무엇이 있냐는 거죠. 어떤 시스템이나 사회, ‘주의(ism)’가 이렇게 만들었냐는 거죠. 보이지 않는 권력과 싸워야 한다, 우리끼리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분열은 권력이 가장 좋아하고 바라는 것이잖아요, 중요한 것은 본질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거예요.     


삶과 거리에서 ‘탈핵’을 외치고 실천하고 있지만, 그는 궁극적으로 탈핵만이 답이 아니라고 말했다.


탈핵은 단순히 핵발전소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만을 뜻하진 않아요. 이것을 질적 변화라고 말한다면,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현대 사회시스템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대량 생산과 소비’ 그리고 ‘편리를 취하는 대신 사유하지 않게 만드는 삶’이죠. 즉, ‘양적 변화’에 대한 성찰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핵발전소를 재생에너지로 바꾼다고 그걸로 끝인가요?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는? 대량으로 사고 만들고 버리는 많은 것들은? 핵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바꾸지만, 우리 삶은 바꾸지 않아도 될까요?


316에너지전환대회에 참여한 청명(출처: 청명 페이스북)


그는 에너지원의 변화를 뜻하는 ‘질적 변화’와 함께 우리 삶의 변화를 의미하는 ‘양적 변화’가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청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안적인 삶도 가능하다는 취지의 ‘대안생활운동’과 ‘비움실천운동’을 주변에 나누기도 했다. 비움실천을 통해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사고 싶은 욕망과 탐욕을 비우고 실천하며, 자본주의 안에서도 ‘자족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비움실천이라는 용어를 만들어서 탈핵에 연동되는 ‘대안생활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19년 후쿠시마 8주기 행사에 다녀온 이후 300명에게 80일간 문자를 보냈어요. 주변 지인, 가족, 사회단체, 시민단체, 탈핵단체 사람들에게 ‘나는 오늘 이러한 비움실천을 했다’라면서 사진과 메시지를 보냈어요.     


냉장고와 세탁기 없는 삶, 계절별로 내복과 옷 두 벌로 살기, 드라이기 없는 삶, 가벼운 옷들은 손빨래하기, 음식물로 퇴비 만들기, 생활쓰레기 줄이기, 과일망 재활용하기, 통과 텀블러 가지고 다니기, 가급적 불 켜지 않기. 섞어짓기 농법으로 농사짓고 자족적인 삶을 확대해나가기 등 청명은 매일 자신의 일상 속에서 했던 ‘비움실천’을 300명에게 80일간 보냈다. 단체 메시지로 보내면 스팸 메시지처럼 생각할까 봐, 한 명 한 명에게 메시지를 보내면 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300명 중에서 일부는 저에게 ‘이것저것 해봤다’라고 연락을 주었어요. 그럼 저는 답을 준 사람들의 비움실천 사례를 편집해서 다시 300명에게 보냈어요, ‘이렇게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분들이 있다’라면서. 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주변으로 확장되는 실천과 변화를 공유했죠. 그분들은 ‘자신들이 실천하는 게 생각보다 중요하구나’를 느끼면서 함께 비움실천을 생활화할 수 있었던 거죠.


음식물 퇴비를 만들어 사용하는 청명(출처: 청명 페이스북)
자연냉장고 역할을 하는 마루(출처: 청명 페이스북)


‘소박한 자유인’이라는 이름으로 보낸 메시지에 사람들이 반응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만난 사람들과 소규모의 비움실천모임을 가졌다. 그러한 작은 모임들이 탈핵신문읽기모임과 지역 곳곳의 소규모 순례단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청명은 두 가지를 내려놓으면서 비움실천을 시작하였다. 자본과 옷, 대표적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많이 사고, 많이 버리고, 많이 소유하며 많이 바라게 만드는 이 두 가지를 버리자 자급자족적 삶이 가능할 것 같았다.     


삼척 성원기 선생님이 2013년부터 핵발전 백지화를 위해 탈핵순례를 시작했어요. 2017년에 저는 결합했고, 핵발전소 4개 지역과 서울까지 가는 순례에 참여했죠. 당시 일을 해서 일주일 중 4일만 참여했어요. 이 순례를 하면서 대표적으로 자본을 내려놨어요. 한 달에 얼마를 벌면 될까, 저의 시스템을 먼저 점검했죠. 다음에는 옷장을 봤는데, 불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사실 노동운동하고 직접 공장에서 일하면서 싸고 대량으로 공급되는 상품(옷)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지를 너무 잘 알았거든요. 순례하면서 처음에는 옷 2벌로 계절을 보냈고, 계절별로도 옷 2벌로 살기 시작했죠.    

 

이렇게 비움실천을 하고 80일간 사람들에게 나누던 청명은 직접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비움길’을 만들었다.


일종의 순례죠. 근데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걸어가는 것을 뜻해요. 최소 10km 걸으며 오늘 만날 사람을 생각했어요. 비움길을 통해 홍세화 선생님을 만나기도 했는데, 처음에 “공부가 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데, 나를 잘 짓기 위한 길이다”라고 말해줬어요. 나를 잘 짓기 위한 공부란, 나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내 생각과 감각, 내가 가진 관점과 기준은 도대체 어디서 왔는가’. 그렇게 청명은 공부하고 실천하며 걷는 자신만의 ‘비움실천’을 만들어갔다.     


청명은 언어치료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지만, 점점 그 비중을 줄여나가고 있다. 그는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보통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돈을 주고 상품을 사서 선물로 주잖아요. 그런데 저는 제가 수확한 작물을 줘요,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돈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시스템에서 점점 더 저를 자유롭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소박하고 자유롭게 사는 것을 선택한 거죠. ‘으레 우리가 해왔던 것들이 진정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꼭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 거죠. 이러한 질문을 통해 그의 삶이 자유로워지고, 소박해졌다.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자본주의 체제에서 욕망과 본능 그리고 미덕이라고 부르던 것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성찰했다. 남들만큼 많은 것들을 가지려는 것을 버리고, 진짜 내가 바라고 원하는 삶을 고민했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 유연하게 이야기하고 다가가며 자신과 다른 삶과 목소리들을 제 안에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편리하지만 우리를 쉽게 중독되고 복종하게 만드는 이 시스템에서 어떻게 조금이라도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이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나’처럼, ‘우리’답게 살지 못하게 만들고 사유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 시스템을 함께 이야기하고 공부하며 다른 삶을 고민해보자는 거죠. 그래서 저는 순례하고, 탈핵신문도 배달하고 점심시간에 짧게 브리핑을 원하면 가서 기사도 읽어줘요. 길을 걷다 사람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하고 이야기 나누는 등 하루에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은 거죠.     


청명이 탈핵순례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회의 현주소를 읽을 수 있는 온도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순례하며 만나는 사람들의 눈빛, 관심, 한 마디, 표정을 보면 그들도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나 핵발전 이슈를 알고 있어요. 핵발전 전문가나 언론이 말하는 것이 아닌 이 시대, 우리의 현주소를 사람들을 통해 읽을 수 있어요. ‘시민들이 지금 이 정도까지 고민하고 있구나.’라는 걸요. 순례를 통해 이 시대의 온도를 느낄 수 있는 거죠."

청명은 순례 전 항상 본인이 쓴 기도문을 읽는다. 원래 제목은 ‘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사랑이 되는 길’로 바꾸었다. 그가 길 위에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무가 되고 숲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고 읽는 기도문을 공유하며 이 글을 마친다.


사람이 그리운 세상, 여기 사람 하나 그리움 달빛에 걸어놓고 사람이 길을 간다.

함께 가야 할 길 그 길 위에 사람들 하나 둘.

희망은 씨앗이 되고 새싹이 되고 나무로 자란다.

나무가 또 나무가 되어 숲이 되리, 그 숲에서 생명을 노래하리.

여기 사람 하나 그리움 달빛에 걸어놓고 사람이 사랑이 되는 길. 오늘도 사람 하나 길을 간다.


지리산 바래봉 가는 길에(출처: 청명 페이스북)

탈핵잇다 시즌 2은 ‘숲과나눔 소규모 연구모임 지원사업 풀씨연구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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