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핵잇다_시즌2의 첫번째 이야기
계급적인 발언을 하거나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 큰 차이가 있었어요. 가령, 교수님이 하는 말에는 모두가 다 괜찮다고 생각했고, ‘님’이 붙는 직업과 ‘님’이 붙지 않는 직업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서열, 계급, 권력을 없애기 위해 제일 먼저 활동명을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물론 자본주의 시스템하에서 완전히 벗어나 사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로서 온전히 살아가는 삶을 만들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들 눈에는 힘들어 보이지만 제가 택한 즐거운 삶인 거죠.
농사도 제 에너지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텃밭을 가꾸고 있어요. 그 이상을 한다면 그건 또 다른 욕망이고 욕심이겠죠. 현재 자급자족할 수 있는 시스템 중 30%를 이 텃밭으로 만들고 있어요. 먹고 살기 위해 섞어짓기 방법을 사용했죠. 섞어짓기를 통해 30평의 땅도 60-70평처럼 사용할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작물들 사이에도 서로 이롭거나 해로운 작물이 있다는 거예요. 궁합이 잘 맞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작물, 자연 그리고 숲에도 궁합이 있어요.
안 맞는다고 기피하고 배제할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심으면 돼요. 그들도 저의 텃밭을 이루는 하나니까. 사람 사는 것과 똑같아요. 나랑 다르다고 해서 비난하고 배제해 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다름을 인정하는 거죠. 섞어짓기란 저에게 ‘섞어서 살아가기’와 같아요.
일주일 중 3일은 최소한의 돈을 벌고 일하는 날이라면, 나머지 4일은 그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급자족하는 삶과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보내요. 농사하고 공부를 하며 순례하는 거죠. 걷는다는 것은 저를 겸손하게 만들어 줘요. 나를 비워야, 내 안의 많은 것들을 비워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 비로소 생기거든요. 순례는 탈핵을 외치는 것도 있지만,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그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위해 비우는 과정이기도 해요.
제가 탈핵이 적힌 몸자보나 깃발을 들고 가면, ‘너는 전기 안 쓰냐’고 말했어요. 처음에는 당연히 무서웠죠. 그런데 그분들을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와 다른 사람이나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본인들과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 ‘다양성’을 고민해보지 못한 사람은 아닐까? 반대로 우리 역시 그분들에게 다가가질 않았잖아요. 탈핵운동하는 우리도 이미 잘 아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굳이 만나려 하지 않으니까, 그들은 그저 불편한 사람들로 남는 거죠. 근데 그들을 ‘공존하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웃’이라고 바라보자는 거예요. 그분들이 저에게 ‘빨갱이’라고 하면 ‘지금 좌우, 빨갱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핵발전소 폭발하면 다 죽어요’라고 말해요. 그럼 그분들도 화들짝 놀라세요. 저는 핵발전소 주변 마을과 지도를 보여줘요. 그분들은 그렇게 가까운 도시에 많은 사람이 사는 줄 몰랐던 거예요. 대전에서 청주도 30km도 안 돼요. 그럼 저를 빨갱이라고 부르던 분들도 결국 저의 탈핵운동을 응원하세요.
바로, 권력이잖아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 의견 너머, 기저에 무엇이 있냐는 거죠. 어떤 시스템이나 사회, ‘주의(ism)’가 이렇게 만들었냐는 거죠. 보이지 않는 권력과 싸워야 한다, 우리끼리 싸우는 것이 아니라. 분열은 권력이 가장 좋아하고 바라는 것이잖아요, 중요한 것은 본질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거예요.
탈핵은 단순히 핵발전소에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만을 뜻하진 않아요. 이것을 질적 변화라고 말한다면, 더 중요한 것은 바로 현대 사회시스템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대량 생산과 소비’ 그리고 ‘편리를 취하는 대신 사유하지 않게 만드는 삶’이죠. 즉, ‘양적 변화’에 대한 성찰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핵발전소를 재생에너지로 바꾼다고 그걸로 끝인가요?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는? 대량으로 사고 만들고 버리는 많은 것들은? 핵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바꾸지만, 우리 삶은 바꾸지 않아도 될까요?
비움실천이라는 용어를 만들어서 탈핵에 연동되는 ‘대안생활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2019년 후쿠시마 8주기 행사에 다녀온 이후 300명에게 80일간 문자를 보냈어요. 주변 지인, 가족, 사회단체, 시민단체, 탈핵단체 사람들에게 ‘나는 오늘 이러한 비움실천을 했다’라면서 사진과 메시지를 보냈어요.
300명 중에서 일부는 저에게 ‘이것저것 해봤다’라고 연락을 주었어요. 그럼 저는 답을 준 사람들의 비움실천 사례를 편집해서 다시 300명에게 보냈어요, ‘이렇게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분들이 있다’라면서. 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주변으로 확장되는 실천과 변화를 공유했죠. 그분들은 ‘자신들이 실천하는 게 생각보다 중요하구나’를 느끼면서 함께 비움실천을 생활화할 수 있었던 거죠.
삼척 성원기 선생님이 2013년부터 핵발전 백지화를 위해 탈핵순례를 시작했어요. 2017년에 저는 결합했고, 핵발전소 4개 지역과 서울까지 가는 순례에 참여했죠. 당시 일을 해서 일주일 중 4일만 참여했어요. 이 순례를 하면서 대표적으로 자본을 내려놨어요. 한 달에 얼마를 벌면 될까, 저의 시스템을 먼저 점검했죠. 다음에는 옷장을 봤는데, 불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사실 노동운동하고 직접 공장에서 일하면서 싸고 대량으로 공급되는 상품(옷)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지를 너무 잘 알았거든요. 순례하면서 처음에는 옷 2벌로 계절을 보냈고, 계절별로도 옷 2벌로 살기 시작했죠.
일종의 순례죠. 근데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걸어가는 것을 뜻해요. 최소 10km 걸으며 오늘 만날 사람을 생각했어요. 비움길을 통해 홍세화 선생님을 만나기도 했는데, 처음에 “공부가 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데, 나를 잘 짓기 위한 길이다”라고 말해줬어요. 나를 잘 짓기 위한 공부란, 나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내 생각과 감각, 내가 가진 관점과 기준은 도대체 어디서 왔는가’. 그렇게 청명은 공부하고 실천하며 걷는 자신만의 ‘비움실천’을 만들어갔다.
편리하지만 우리를 쉽게 중독되고 복종하게 만드는 이 시스템에서 어떻게 조금이라도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이게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나’처럼, ‘우리’답게 살지 못하게 만들고 사유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 시스템을 함께 이야기하고 공부하며 다른 삶을 고민해보자는 거죠. 그래서 저는 순례하고, 탈핵신문도 배달하고 점심시간에 짧게 브리핑을 원하면 가서 기사도 읽어줘요. 길을 걷다 사람에게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하고 이야기 나누는 등 하루에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