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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 씨 Aug 20. 2024

8월 소나기

뜻밖에 친절


조금은 먼 길이야. 

내가 사는 옥탑방 근처에 

괜찮은 큰 가게가 없지. 


조금 멀리 시장 안에 있는 

큰 가게까지 가야 돼. 


8월 참 더워. 

앞으로 계속 덥겠고 

오늘 그렇게 뜨거운 해가 

구름에 조금 가려졌지. 

늦은 오후 잠시 비가 내렸어. 


냉장고에 먹을 게 없어. 

해가 지고 밤이면 가려고 했던 큰 가게.

해가 가려졌고 이 때다 싶었지. 

소나기 내린다는 걸 알았었고  

창을 통해 한번 하늘을 봤지. 


어둡지 않고 밝아. 

구름으로 직접 해가 내리 쬐지 않았을 뿐이야.

소나기가 지나갔겠고 다시 올까 안올까 생각해. 


이미 내린 비에 날 밝아서 

우산을 들었다 다시 내려놓고 

먹거리를 담을 가방 하나 들어서 나왔어. 


큰 가게에 가는 동안 해가 보지는 않았지. 

시원한 큰 가게에 도착해. 

비싼 과일, 정말 먹고 싶은 과일.

가격 보고 어쩔 수 없이 그래도 샀어. 

그 다음 반찬가게도 들렸지. 

다행히 여름휴가기간이 아니었어. 


몸에 힘이 없어. 

고기반찬 좀 비싸더라도 

야채반찬과 함께 샀어. 

제대로 밥을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야.

땀은 얼마나 흘리고 사나 싶지.


이제는 조금 긴 거리 열심히 걸어서 

옥탑방으로 가야 할 때야. 

조금 걷다보니 소나기가 내려. 


잠시 내릴 거라 생각하고 

좁은 골목길 오른편 아무 집 대문 아래 서 있었지. 

그런데 빗줄기가 굵어지고 많이 내려. 


대문 안 튀어 나온 계단 아래로 들어갔어. 

오래된 주택 2층 계단 아래 바람도 불고 

빗물이 신발에 닿아. 


처음 몇 분 지났을까 싶었는데 

계단 모서리로 물줄기가 계속 떨어지고 

앞에 전봇대 한쪽부터 빗물에 다 젖어 가. 


날은 밝은데 

많이 내리는 소나기야. 

그나마 조금 빗줄기가 줄었을 때 

이 때다 싶어 다시 먹거리 든 가방 안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지. 


빌라 사이 골목 얼마나 걸었다고 

다시 빗줄기가 빽빽해지고 

많이 내리기 시작해. 


왼편 빌라 주차장 아래로 

들어가 비를 피했지. 

두번째 피신이야. 


가만히 서서 주변을 보고 있었어.

빗줄기가 세지니 

바닥에 튕긴 빗물 안쪽으로 더 들어왔지. 


나처럼 먹거리를 산 봉지를 든 사람, 

지나가고 있어. 

비에 다 젖은 상태로 지나가고 있지. 


밝게 건물벽을 비취고 있는 햇빛 

소나기니 곧 지나갈 거라 믿고 있어.

그 남자처럼 온몸이 젖은 상태고 걷고 싶지 않았지. 

그래서 좀 더 서 있어. 

비에 다 젖은 또 한 사람이 지나가. 


서 있으면서 

우산 쓰고 지나가는 몇몇 사람들과 

지나가는 차를 보고 있었지. 

천천히 바라 봐.


작은 아이와 그 아이의 어머니도 지나갔어. 

그런데 작은 아이는 투명한 비닐 우산을 

자기 머리 위로 두지 않고 걸어서 

비에 다 젖어 있었지. 

어머니는 아이에게 우산 잘 써야 한다고 해. 


그렇게 내 앞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갔어. 

난 여기서 얼마나 서 있었던 걸까. 

꽤 서 있네. 


그런데 아까 작은 아이와 어머니, 

다시 왼쪽으로 가고 있는데 

어머니가 내게로 다가오더니 

비 때문에 서 있는 거 아니냐면서 

고장났지만 이 우산을 쓰라며 줬어. 


뒤에 아이는 날 보고 있었지. 

왜 내 우산을 줄까 하는 표정. 

괜히 난 미안했는데 

어머니에게 괜찮다고 하면서도 

마지막에 고맙습니다 말하였지. 


그렇게 아이는 비를 맞은 채 

어머니는 우산을 쓴 채 

함께 걸어 가. 


내게 작고 투명한 비닐 우산이 생겼어. 

조금 고장나긴 했지. 

우산살 끝 끼워져야 할 게 달리 있어서 

두 군데 다시 맞추었지. 

그나마 세게 내리지 않는 비 사이 

그 사이 우산을 쓰고 걸어 갔어. 


조금 구멍난 부분도 있었지만 

머리와 어깨에 빗물이 막 떨어지지 않았어. 


그렇게 멈추지 않던 소나기를 

아이의 우산으로 가로막고 걸어가. 


신발만 좀 젖었을 뿐, 

옥탑방 도착. 

아직도 소나기는 내리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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