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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ㅍ Nov 01. 2018

게살 연두부 덮밥

1인분의 호화로움

게만으로 배터지게 먹어본 게 딱 한 번이다. 아주 어렸을 때,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옛날이지만 큰 냄비로 하나 가득 찐 걸 온 식구가 둘러앉아 손가락만으로 부지런하게 먹던 기억. 아무도 아무말도 없었다. 그저 계속 먹었고, 껍질이 쌓여 갔다. 처음에는 껍질까지 쪽쪽 빨았지만 패총이 아닌 게총 아니 해총이 높아질수록 살 바르기에 성의가 없어졌다. 그때는 몰랐다, 게를 먹다 먹다 지쳐서 포기하는 일은 다시는 없으리라는 것을. 


지겹던 볶음밥이 게살만 들어가면 호화 요리가 되는데 1인분이라면 특히 그렇다. 비싸서라기보다는 생각만으로도 번거롭기 때문이다. 귀찮은 건 질색이지만 먹겠다는 욕심은 많은 인간으로서 나는 결국 해결책을 찾아냈다. 껍질과 가시를 제거한 대구살이나 닭가슴살 같은 걸 깔끔하게 손질해 소량 판매하는 이유식이다. 솜씨와 의욕이 딸릴수록 재료로 승부해야 한다. 냉동실에 소분된 냉동 게살을 상비하면 평범한 라면이나 볶음밥을 그럴싸한 한 끼로 만들 수 있고, 게살 그라탕이나 크랩 케이크처럼 얼핏 대단해 보이는 요리도 순식간에 완성이다. 


50그램씩 소분된 냉동 게살 2-3개 

연두부 1팩

마늘 4-5쪽

파 약간

먹고 싶은 만큼의 밥 


1. 마늘 껍질을 벗겨 도마에 올린다. 식칼을 눕혀 단번에 내리치면 전문가 같고 멋있겠지만 집에서 그랬다가는 바닥을 청소해야 한다. 대신 칼날을 눕혀 마늘에 올리고 체중을 실어 지그시 누른 후 으깨진 걸 대충 썬다. 이 방법이면 다진 마늘 필요할 때마다 절구로 찧느라 아랫집과 험악해질 필요가 없다. 


2. 파를 손질해 굵게 다진다. 


3.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연두부 가장자리를 칼로 빙 두른 후 움직움직해서 최대한 떼어낸다. 살살 꺼내서 혹은 담긴 채 칼로 9등분 혹은 6등분한다. 


4. 게살은 해동이 필요 없다.  


5. 깊이가 있는 넓은 그릇에 먹고 싶은 만큼 밥을 푼다. 냉동밥이면 지금이 전자렌지에 돌릴 타이밍이다. 


6. 웍을 약불에 올리고 기름을 둘러 마늘을 볶는다. 황금빛이 되며 근사한 향을 풍기기 시작하면 게살을 넣는다. 소금으로 간하고 달달 볶는다. 


7. 불을 키우고 연두부를 조심스레 넣는다. 주걱으로 마구 젓지 말고 팬을 들썩이며 볶아야 덜 망가진다. 


8. 연두부가 충분히 뜨거워지면 파를 흩뿌린 후 밥에 조심조심 얹는다. 어쩌면 기껏 잘 볶았어도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 있다. 그래도 너무 괴로워할 것 없다. 따지자면 간은 망가지는 쪽이 더 잘 밴다. 다만 인스타용 사진을 못 찍을 뿐이다. 반면 트위터용으로는 어떤 의미로는 더 유용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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