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방

日常

by Telos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내게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 근래의 나는 사유는커녕 생각이라는 행위 자체와 거리가 있었다. 주어진 하루를 그저 처리하듯 넘기고, 닥치는 일을 쳐내다 보니 어느새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일이 있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렀다. 10년 만이었다. 건물의 외관은 그대로였는데 풍경은 달라져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북적이는 인파였다. 예전에 피크 타임에 왔을 때도 이 정도로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이어 귀에 들어온 언어 또한 낯설었다. 영어와 일본어 뿐 아니라 중국어와 독일어까지. 이제 한국이 누군가의 여행지가 되어버린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광개토대왕릉비가 늠름하게 모두를 맞이하고 있었다. 비록 디지털로 구현된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앞에 서자 그 크기에 숨이 잠깐 막혔다. 뒤편에는 경천사 10층 석탑이 예나 지금이나 굳건히 서 있었다. 단 두 점의 문화재임에도 느껴지는 웅장함과 유려함. 10년 전에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시선을 옆으로 돌리니 그 공간에는 사람만 있지 않았다. 바퀴 달린 안내 로봇이 느릿느릿 바닥을 훑으며 지나가고 있었다. 아직은 어딘가 미숙해서인지 로봇이 길을 비키기보다 사람이 로봇의 길을 비켜줬다. 고대 문화재와 최신 기술이 공존하는 모습이 어쩐지 낯설게 다가왔다.



학창 시절 역사를 좋아했던 나에게 이곳은 놀이동산 같은 곳이었다. 책 속에서 보던 것들이 실제의 크기와 재질로 서 있었고, 외워야만 했던 연도와 왕조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보고, 느끼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공부였기 때문이다.



그런 어린 나에게 정말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이 있다. 바로 반가사유상이다. 그리 크지도 않고, 교과서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던 것인데도 그 앞에서는 이상하리만치 경건해졌다. 이걸 사람이 만들었다니. 심지어 그게 삼국시대의 선조라니.



그런 과거를 곱씹으며 이번에도 반가사유상을 보러 갔다. 사유의 방이라는 콘셉트로 전시되고 있었다. 입구에 적힌 문장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몸이 잠깐 굳었다. 나름대로 주체적으로 살아왔다고 믿었는데 정작 요근래에는 두루 헤아리며 무엇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생각은 늘 있었지만 대부분 ‘해야 할 것’의 목록이었다.



이 참에 사유에 빠져보자는 생각으로 방에 들어섰다. 방 안은 예전과 달랐다. 몽환적인 빛이 벽을 타고 흐르고 신비로운 가락이 낮게 깔려 있었다. 마치 낯선 산사의 내부처럼 시간의 속도가 느려지는 듯했다. 천장에 달린 수천 개의 가느다란 막대는 본능적으로 목소리를 낮추게 했다.



그렇게 다시 마주한 반가사유상은 이상하게도 더 커 보였다. 유리막이 사라진 개방형 전시는 그가 가진 힘을 더 세게 느끼게 했다. 무심하지만 온화한 얼굴. 그 침묵과 잔잔함은 무엇보다 깊었고 그 기세는 무엇보다 높았다. 그 앞에 서자 오래된 시간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 알지 못해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앞으로 모으게 되었다.



충분히 바라본 뒤에도 나는 그 공간을 곧장 나서지 않았다. 방을 거닐며 사유에 빠져보려고 했다.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 채 그저 두루 헤아려보려 했고 깊이에 잠겨보려 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방을 나왔다.



특별한 결론을 얻지 못했는데도 머리는 상쾌했다. 몸은 한결 가벼워져 있었다. 사유란 꼭 무언가를 붙잡고 끝까지 파고드는 일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그 무엇도 붙잡지 않는 일에 가깝다고 느꼈다. 그저 떠오르는 것들을 잔잔히 흘려 보내는 것이었다.



사유라는 건 어쩌면 세상보다는 나를 헤아려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 자신을 온전하게 지긋이 바라볼 수 있다면, 언젠가 나뿐 아니라 세상도 또렷이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나 또한 언젠가는 무심하지만 온화한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국립중앙박물관 반가사유상(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