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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땀 한 땀... 느림의 미학"

IN YOUR CART 8: 김미나

“IN YOUR CART”는 팀 렛잇비가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온라인 장바구니를 살펴보는 본격 취향 탐구 인터뷰 코너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욕망과 감각이 담긴 위시리스트가 궁금합니다. 여덟 번째 인터뷰이는 한 땀 한 땀 사랑을 깁는 가죽공예가 김미나님입니다.

 

이름: 김미나

직업: 핸드메이드 작가(가죽 공예)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핸드메이드 작가. 가죽 공예인, 가죽 공예가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거 같다. 일상이 작업과 육아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워킹맘이라는 타이틀도 빼놓을 수 없다. 일과 육아 어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고군분투 중인 대한민국의 흔한 30대 여성이다.




가죽 공예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특별히 ‘가죽’에 매료된 이유가 있나?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뛰어났다. 미술 학도가 꿈이었으나 점수에 맞춰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 외환중개소에 입사했다. 장이 마감되는 3시에 거의 모든 업무가 종료돼 근무시간이 짧았고 그에 비해 연봉은 높았다. 말 그대로 꿈의 직장이었다. 하지만 일에서 의미와 재미를 찾지 못했다. 그즈음 한국에 가죽 공예 붐이 일기 시작했다. 목공, 소잉, 자수, 도예 등은 많이 볼 수 있었지만 가죽은 쉽게 접해볼 수 없었던 새로운 공예의 분야여서 흥미로웠다. "내가 원하는 대로 지갑도, 가방도 만들 수 있다니! 명품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명품을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다니!" 그렇게 가죽 공예를 배우게 됐다. 첫 수업에서 느꼈던 희열, 설렘을 잊지 못한다. 다른 분야에서는 꾸준한 즐거움을 찾지 못했는데 가죽은 배우면 배울수록 새로운 세상이었다. 무엇보다 작업에 필요한 스킬들이 성격과 잘 맞아떨어져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였다. 더 잘하고 싶었고 이십년, 삼십년 후의 내 모습이 처음으로 기대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간 회사를 다니며 취미로 하던 일이 재작년부터 업이 됐다. 얼마 전 본격적으로 일산 밤리단길에 작업실 겸 공방을 열었다. 




결혼할 때 직접 양가 어머니에게 가방을 만들어 선물했다고 들었다.

신랑과 나는 최대한 간소화된 결혼식을 준비했다. 둘 다 의미 없는 것에 집착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인지라 관습처럼 해야하는 예물, 예단 등을 모두 생략했다. 다만 부모님께는 꼭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정성이 듬뿍 들어가고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으면서 좋아하실만한 아이템이 뭘까 고민하다 가방을 만들어 드리게 됐다. 두 분 모두 너무 기뻐하셨는데 엄마는 아까워하셔서 고이 간직만 하고 계시고, 어머님의 가방은 고스란히 아가씨 차지가 됐다. (웃음)




페키트(FECIT)라는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브랜드 네임의 뜻은 뭔가?
FECIT은 라틴어로 ‘내가 만들었다. 내가 이 일에 있었노라.’라는 뜻이다. 과거에 이름 없는 인부들이 건축현장에서 돌 위에 이름 대신 페키트라고 새기기도 했다고 한다. 공예 역시 그냥 만들어지거나 생겨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생각, 가치관, 노력이 담겨 있는 것이다. 내가 죽더라도 이곳에 내가 존재했음을 증명해주는 것. 제작자의 입장에서 공예의 의미는 존재 증명이다.




단순히 공산품이 아닌 공예품이라는 의미는 어떤 건지?

어릴 때부터 ‘나만의 것’에 대한 욕구가 컸다. 독창적이고 특이한 것, 쉽게 구할 수 없는 것, 그래서 나만 가지고 있는 것을 수집했다. 찾지 못하면 대중적인 것에 나만의 표식이라도 새겨 넣었다. 그러다 보면 더욱 아끼게 되고 물건 이상의 의미가 부여되면서 스토리가 생겨나더라. 쓰임이 다하면 버려지는 물건이 아니라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잡아 남는 것이다. '이 가방은 말이야 우리 딸이 결혼하기 전에 한땀 한땀 만들어준 건데 이게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소비자의 입장에서 공예의 의미는 스토리다.


주로 키케이스를 제품으로 만들고 있는데, 아이템을 선정하는 기준이나 이유가 있나?
잘 팔릴 거 같다거나 요즘 유행하는 아이템이니까 같은 수익적인 이유로 접근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새로운 디자인을 할 때는 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선물'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가장 앞섰던거 같다. '엄마가 아파트 보안키를 낡은 키링에 고무줄로 묶어서 다니고 있네’ ‘신랑은 명함을 주고받을 일이 많으니까 투포켓으로 나눠진 명함 지갑을 만들어주면 정리하기 편해지겠지’ ‘이것저것 많은 카드를 들고 다니는 걸 귀찮아하는 그를 위해 교통카드와 신용카드 두장만 들어가는 심플한 카드 지갑을 만들어보자’ 처럼. 그래서인지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하기 전 설렘 같은 두근거림이 늘 있다. 키케이스는 신랑 생일선물로 만들었는데 완성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갑자기 주문이 밀려들었다. 전에는 다른 제품도 제작해 판매했으나 지금은 키케이스 주문이 너무 많아져서 여기에 집중하고 있다.




하나의 제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러프하게 디자인 스케치를 하고 모눈종이에 패턴을 짠다. 1mm의 오차에 의해서도 전체적인 밸런스와 완성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하게 패턴을 짜는 게 가장 중요하다. 고시감에 따라 하드타입 소프트타입, 가공 원료에 따라 베지터블가죽, 크롬가죽으로 나뉘는데 이런 가죽의 특성에 맞게 작업 방식도 달라진다. 접히는 부분, 시접이 맞닿는 부분의 두께, 예컨대 카드지갑이라면 카드를 넣고 뺄 때 가장 좋은 포켓의 폭과 넓이는 어느 정도인지 등을 모두 고려해서 패턴을 짜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대략적인 패턴이 완성되면 샘플 가죽으로 제작해보고, 생각했던 느낌대로 나올 때까지 패턴을 조금씩 수정하면서 샘플 작업을 반복한다. 인고의 시간이지만 수많은 실패작들 끝에 머릿속에만 있던 디자인이 끝내 실제로 완벽하게 구현됐을 때 느끼는 성취감과 즐거움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절대 지루하지 않다. 가죽 재단, 접합, 바느질 구멍 타공, 손바느질, 재단면 마감, 각인 작업 순. 최종 샘플을 몇 주간 사용해보고 딱히 보완할 점이 없으면 제품화시킨다.




일하면서 겪는 가장 어려운 점은 뭔지?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는 것. 단순한 제작자를 넘어 디자이너가 되기도 하고 패턴사가 되기도 하고 사진작가, 경리, 고객센터 상담사가 되기도 한다. 모두 완벽하게 할 순 없는데 다 잘 해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종종 버겁다. 1인 공방, 1인 기업을 운영하는 이들의 애로점일 거라 생각한다. 그보다 힘든 점은 역시 외로움이다. 아이디어는 넘쳐나는데 공유할 동료가 없고, 그렇기에 아이디어를 확장시킬 동력이 부족하다. 대부분의 가죽 공예인들은 디자인이나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많다. 그래서 꼭 옆에서 일하는 동료가 없더라도 주위에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 협업을 하는 경우도 종종 보는데 나는 그런 인맥이 부족해 가끔 한계에 갇혀 있는 기분이 들곤 한다. 다행히 작년부터 내게 가죽 공예를 배워온 친구가 최근 공방에 합류하게 되면서 내게도 든든한 동료가 생겼다. 올해는 친구와 함께 좀 더 재미난 작업들을 해볼 생각이다.



작업이 대부분 정적으로 이뤄질 것 같은데 내향적인 편인지?

누구와 함께이냐에 따라 달라진다. 누군가에겐 흥부자, 누군가에겐 재미없는 사람이다. 직접적으로 나를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진 않지만 드러내고 싶은 욕망은 있다.(웃음) 그 욕망을 작업으로 푸는 거 같다. 



수공예 취미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원데이클래스 등을 열 계획도 있는지?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상처 받았을 때, 일상이 무료할 때, 내가 그랬듯 다른 이들도 나의 공방에서 잠시나마 안식을 찾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열심히 살아낼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해 갔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내게서 좋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그 점에서 자신이 없다. 강사님, 선생님, 쌤, 공방장님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아질 때쯤 클래스를 열게 되지 않을까 싶다.




가죽공예 이외에 취미나 좋아하는 활동이 있다면.

작업 자체가 일이자 취미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거나, 작업실로 간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자유시간이 많으니 영화나 운동을 즐기기도 했었지만 현재 내 일상은 육아와 작업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다행히 육아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작업을 통해 풀고, 작업을 통해 받는 스트레스는 사랑스러운 아들을 보며 달랜다.



핸드메이드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시간의 가치, 느림의 미학!





FECIT 페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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