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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디 Apr 26. 2024

너네 해 봐쓰? 난, 해바쓰!

독점적 비경(秘境) 찾기

"너네 이런 노래 들어봤어?"

"이런 상황 겪어 봤어?"

"이런 상황 겪으면서 이런 노래 불러 봤어?"

......

"난,... 해바쓰!!"


2006년 <웃찾사> 개그프로그램의 "해 봤어?"란 코너입니다. 독특한 포즈와 리듬감으로 대사를 하면서 자기만의 특별한 상황을 개그 형식으로 소개하는 스탠딩 코미디입니다. 나만 보고 나만 경험했던 사실에 우리는 적지 않게 흥분하게 됩니다.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는 어디서부터가 진실이고, 허상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뭔지 모르겠지만 남이 모르는 대단한 경험을 했다는 것이겠지요. 오지(奧地)를  여행하면서 비경(秘境)을 찾는 사람들이나, 하나밖에 없는 희귀한 골동품에 매료되어 진귀한 것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도 주변에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 심리 안에는 "나만의 것"이라는 공통된 정서가 숨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중국 스촨성에 있는 구채구(九寨溝 ; 지우자이고우)를 한번 여행해 보고 싶고, 실크로드를 따라 히말라야 산을 넘나드는 마방길을 걸어 보고도 싶습니다. 심지어 남극기지나 북극 오로라도 보고 싶습니다. 몽골의 평야에서 쏟아질 듯한 밤하늘의 별을 감상하는 것도 제 버킷리스트 중에 하나입니다. 역시 특별한 것에 대한 끌림이 있습니다.


수년 전 교회건축을 할 때 십자가 종탑 꼭대기를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 누가 여길 올라올 수 있으랴?' 특별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이 높은 곳을 올라 올 사람이 없죠. 순간 이곳은 내게 특별한 장소가 됩니다. 나만의 공간, 나만의 장소가 된 것이죠. 숨을 들이켜고 주위를 돌아봅니다. 올망졸망 주변의 건물을 내려다봅니다. 시원한 바람이 십자가를 붙들고 있는 내 손끝을 스쳐 지나갑니다.


작년엔 충무로에 있는 건축현장에서 계단실 옥탑 위로 소화용 저수조를 만들기 위해 콘크리트 저수조 내부 PE라이닝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내부 저수조 높이가 3미터가량 되었으니까 내부 사다리를 이용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공사를 마치게 되면 저수조 내부에 물이 채워지고, 화재 시 이 물은 스프링클러를 통해 각 방으로 쏟아지겠지요. 그런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이곳은 늘 이렇게 물이 저장된 상태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게 됩니다.  여기 들어와 볼 수 있는 것은 지금 뿐입니다. 나만이 경험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천정에 뚫린 사각의 저수조 뚜껑에서 한줄기 빛이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수유리 건축현장에서 지붕 용마루위에 서서 삼각산을 바라보고, 김포 현장 옥상에서 남쪽으로 향하는 철새들의 무리를 응원하기도 합니다. 어떤 곳에서는 지하 깊숙한 냉동 제어시스템의 은밀한 공간을 가기도 하고, 공연장 객석 위 천정 위로 워크존을 따라 움직이기도 합니다. 무대 위 그리드아이언을 테스트해 보기도 하고, 실내 체육관 천정 아치패널 위를 걷기도 합니다. 모두 특별한 곳입니다. 일반인은 갈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는 곳이죠. 건축물이 완공되면 완전히 묻히고 출입이 불가능한 공간도 많습니다.


"너네 십자가 종탑 꼭대기 올라가 본 적 있어?"

"너네 공항 관제탑 안에 들어가 봤어?"

"너네 지붕 용마루에서 흘러가는 구름을 본 적 있어?"


"난,.... 해봐쓰!"


건축현장에서 나만의 독점적 비경(秘境)찾기가 제겐 또 하나의 즐거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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