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당무 Oct 09. 2023

나의 불꽃이야기

인생은 긴 축제와 같다

나의 첫 불꽃, 황홀함

카메라와 함께 불태웠던 나의 열정은 10년 만에 다시 타올랐다. 불꽃이 터지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갔었던 지난 시절을 떠올려 본다. 그제 열렸던 서울불꽃축제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았다. 늘 함께 사진 찍던 열정사진가들은 없었다. 혼자였고 카메라 또한 손에 쥐고 있지도 않았다. 그럼 무슨 열정이 다시 타올랐다는 말인가.


나의 첫 불꽃놀이의 기억은 아주 어렸을 적이다. 남산 아래 약수동고개에서 살았던 나는 불꽃을 가까이 볼 수 있었다. 밖에서 쿵 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린가 하고 나가보니 옆집 친구들도 모두 밖으로 나와 옆집 옥상에 모여들었다. 하늘에서 별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때 본 첫 불꽃놀이는 잊을 수가 없다. 불꽃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눈부시게 황홀했다. 함께 어울려 보던 동네 친구들도 감탄을 자아내며 우리들만의 축제가 시작됐다.


예전에는 10월 1일 국군의 날이면 남산에서 불꽃놀이를 했다. 몇 년간 했는지 잘은 기억 못 하지만 매년 그날이면 불꽃을 터뜨렸고 방안에 있다 소리가 들리면 항상 옆집 옥상으로 올라가 불꽃을 맞았다. 보았다는 말보단 맞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밤하늘을 수놓으며 떨어지는 불꽃은 항상 머리 위로 떨어졌기 때문에 고개를 들고 있어야 했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있는 내 황홀한 첫 순간이다.


두 번째 불꽃, 열정의 순간

그러다 이십 대가 되어서 약수동을 떠났고 불꽃은 나와 멀어졌다. 기억에서도 불꽃은 그냥 불꽃으로 남아 있었다. 한화에서 사회공헌으로 시작한 불꽃은 2000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2002년부터 여의도에 있는 전망 좋은 회사를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주변에 걸림돌이 될만한 건물이 없어서 불꽃명당 중 명당이다. 그럼에도 나는 불꽃축제 하는 날이면 오히려 사람 많아 붐비는 것이 싫어 보러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람 많은 곳에 있지 못하는 공포증이 생겨 잘 가지 못했다. 학창 시절 이선희 콘서트 갔다가 앞자리에 앉아서 보는데 피날레곡을 부르는 순간 뒤에서 앉아있던 팬들이 앞으로 밀려나오며 깔려 죽을 뻔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이후로 사람 많은 곳을 잘 가지 못한다. 그래서 불꽃축제도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사진을 취미로 찍으면서 야경사진에 미쳤었다. 퇴근 후 1년 동안은 야경사진을 찍기 위해 매일 밤을 굶주린 승냥이처럼 어둠을 헤치고 다녔다. 그러면서 불꽃사진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사람이 붐비지 않는 회사에서라도 한번 봐보자는 생각에 5년 만에 회사건물에서 불꽃사진을 찍게 됐다. 창 안에서 찍어야 했기 때문에 예쁘게 담기진 않았다. 야경사진을 갈고닦기를 하면서 야경사진 전문가가 됐지만 불꽃은 또 달랐다. 쉽지가 않았다.


1년 후, 회사옥상이 개방된다는 것을 알게 됐고 몇몇 사람들과 함께 멋진 뷰에서 불꽃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그때 이후로 불꽃사진을 담기 위해 부산불꽃축제부터 안 다닌 불꽃축제가 없다. 불꽃축제행사가 있는 모든 축제를 검색해 5분짜리 불꽃행사에도 부산을 다녀올 정도로 불꽃사진에 미쳤었다. 그 후로 몇 년간은 불꽃사진을 찍으러 다녔고 멋진 포인트를 찾아 다채롭게 촬영하며 불꽃사진 찍는 감을 알게 됐다. 불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상식으로 촬영하면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장비가 필요하고 약간의 기술이 필요하다.


불꽃축제는 제주로 이주함과 동시에 멀어져 갔다.


세 번째 불꽃, 10년 만에 설렘

제주로 이주한 후 가장 아쉬웠던 것 하나가 서울불꽃축제를 보지 못한다는 아쉬움이었다. 그것도 어느새 적응이 되었고 불꽃축제는 마음속에서 점점 잊혀갔다. 그러다 코로나19로 인해 한동안 불꽃축제는 열리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안 하는 것이 내 맘이 편했기 때문이다. 작년 코로나19 사태가 조금씩 잦아들면서 3년 만에 서울불꽃축제를 개최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달려가서 보고 싶었다. 그때는 이미 서울로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회사 건물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남부럽지 않은 뷰가 있다. 하지만 난 제주를 택했고 불꽃은 또 다음으로 미뤄졌다. 불꽃축제가 있을 때마다 내 맘은 늘 초조하고 아쉽고 안타깝기만 했다. 그렇게 불꽃축제를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불꽃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3년 만에 다시 펼쳐진 불꽃축제는 아쉬움을 남겼다.


올해는 역대급 불꽃이 펼쳐진단다. 추석과 연휴가 끼어있는 나는 긴 휴가를 제주에서 보내기 위해 이미 비행기표를 끊은 상태였다. 재택근무가 아직 가능했던 상태여서 보름간의 긴 여정을 보낼 계획이었으나 재택근무제도를 갑자기 없앤다는 공지를 받았다. 그냥 내 스스로 핑계를 댔다. 재택이 없어졌으니 나의 연휴일정도 바꿔야겠다며 돌아오는 비행기표를 바꿨다. 불꽃축제가 시작되는 이틀 전 난 서울로 돌아왔다. 회사에선 미리 낸 휴가 계획대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했지만 스스로 포기했다.


요즘 나 사진보다 영상을 찍는 재미에 빠져있었다. 불꽃영상을 담아보고 싶었다. 함께 가기로 한 동생이 있었지만 갑자기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며 약속을 펑크 냈고 혼자가 돼버렸다. 몇몇 주변 지인들에게 얘기했지만 역시 불꽃을 보러 그 많은 인파 속을 함께 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최근 마포로 이사한 덕에 마포대교 위에서 볼 생각으로 느지막이 집에서 나왔다. 아침부터 샛강이 있는 곳까지 답사를 다녀왔지만 원하는 포인트를 찾지 못했다.


6시에 나온 나 스스로를 자책했다. 당연히 사람이 많이 있을 줄 알고는 있었지만 내 몸 하나 서있을 곳이 없었다. 속으로 망했다. 외쳤다. 혼자이니 어디든 움직이면 된다는 생각으로 사람 많은 한강둔치까지 들어갔지만 숨이 막혔다. 공포의 순간이 떠올라 급히 빠져나왔고 불꽃은 어느새 시작되었다. 불꽃은 터지고 나는 계속 방황을 멈추지 못했다. 어디를 가든 사람이 너무 많았기에 그저 발걸음을 옮기기에 바빴다.


그래, 축제는 즐기는 거지, 오늘은 불꽃을 보며 맘껏 즐기자 속으로 외쳤다. 사진을 찍느라 제대로 불꽃 감상도 못했는데 하며 축제의 현장과 함께 불꽃을 담기 시작했다. 사진이 목표가 아니라 영상을 찍기 위해 나섰기 대문에 분위기를 담았다. 축제분위기가 영상 속에선 더 좋아 보일 것 같았다. 그렇게 걷고 걸으며 터지는 불꽃을 보았고 불꽃이 터질 때마다 함께 환호하며 탄성 하는 기쁨을 즐겼다.


음악소리가 크게 들리는 스피커 앞까지 걸어갔다. 음악소리와 함께 터지는 불꽃은 더 아름답게 보였다. 완벽한 불꽃이 한눈에 들어오지는 않았으나 나무 사이사이로 떨어지는 불꽃은 어린 시절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꽃처럼 아름다웠고 가슴 벅찼다. 그렇게 나는 혼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축제를 즐겼다.


서울불꽃축제 보러 오길 잘했다. 살면서 감동을 받는 순간, 아름다운 순간을 잠시라도 만나고 산다는 것은 축복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불꽃은 행복이고 찬란한 순간이다. 나는 부산불꽃축제도 가보려 한다. 잠자던 나의 열정을 다시 깨워 불태워 보려 한다.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불꽃의 씨앗은 여전히 타고 있었다. 열정을 찾아 떠난다는 건 살면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다.




작가의 이전글 서울생활 2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