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로맨스 그리고 사람들
《오만과 편견》-제인 오스틴
영국인들이 셰익스피어 다음으로 사랑한다는 작가, 제인 오스틴. 1775년에 태어나 1817년에 사망할 때까지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6권의 장편소설을 남겼다.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 《맨스필드 파크》 《엠마》 《노생거 사원》 《설득》이다. 모두 여러 차례에 걸쳐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작가와 평론가들에게서도 많은 사랑을 받는데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여러 작품으로 갈린다. 누구는 《오만과 편견》을 꼽고 《엠마》를 꼽는 이도 있고 《설득》을 꼽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품은 《오만과 편견》이다.
《오만과 편견》의 매력적인 두 주인공,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무도회장에서 처음 만난다. 다아시는 잘 아는 사람하고만 대화를 나누고 춤도 춘다는 자신의 성격에 갇혀있다. 친구인 빙리가 엘리자베스를 가리키며 춤을 권유하지만 별로 안 예쁘다며 거부한다. 이를 들은 엘리자베스는 그가 오만하다고 생각하며 이 첫인상에 갇혀 계속 그를 싫어한다. 이후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의 장점을 깨달으면서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청혼까지 한다. 그러나 다아시에 대한 편견에 갇혀있는 엘리자베스는 그의 참모습을 보지 못한 채로 청혼을 거부한다. 다아시는 자신의 신분과 재력에 타고난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만 엘리자베스와의 관계를 통해서 그런 태도가 오만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녀의 사랑을 얻고자 그런 자존심과 자부심을 버리게 된다.
줄거리만 보면 전형적인 로맨스 드라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가치는 줄거리가 아니라 그 세부에 있다. 작가는 재치와 유머 넘치는 풍자로 다양한 인물들을 세밀히 묘사하고 그들의 대화를 들려준다. 돈과 외모를 따지는 인간의 속물근성, 허위의식, 허영심과 자만심 등을 풍자하는데 그 어리석음에 조소가 나오기도 하고 독자들은 자신에 대한 반면교사로 성찰을 해보기도 하면서 재미와 깨달음을 동시에 얻는다.
신데렐라 스토리 같아서 아쉽기도 하다. 다아시는 요즘 드라마 남자 주인공의 전형이다. 잘 생기고 키 크고 돈도 많다. 돈도 배경도 내세울 게 없는 여자 주인공은 낭만적 사랑을 꿈꾸다가 사회적, 경제적 성공까지 결부된 결혼을 성취한다. 상투적인 결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성공하고 결혼에 이르렀기에 독자들은 쾌감과 만족을 얻는다. 또한 신데렐라와 달리 엘리자베스는 독립적인 여성상을 보여준다. 청혼에 매이지도 않고 남성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지도 않는다. 이 작품이 쓰이고 발간된 1796년부터 1813년까지의 시기는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여성상이 강조되던 때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로서는 새로운 여성상이었겠다.
이 책은 여러 번 봤다. 30년쯤 전에도 보고 이제 또 봤다. 원서도 보고 번역서도 봤다. 영화도 보고 BBC에서 만든 6부작 드라마도 봤다. 예전에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는데 새로 나온 번역서에는 주해와 해설이 달려있어서 좀 더 이해하기가 수월했다. 당시 영국의 상류계급은 크게 작위를 갖는 귀족과 그 외의 유산 계급(젠트리)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 젠트리 계급 내에서도 역사적 혈통, 친족의 질, 재산 등에 의해 격을 따졌다. 일반적인 사교 의례에서는 동등하게 대우를 받았지만, 결혼 등 현실 문제에서는 그런 격차를 많이 따졌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결혼을 다루고 있는데, 이 책이 나온 지 200년이 넘었어도 인간의 심리와 세태는 예나 이제나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읽어도 공감이 가고 깨우침도 얻는다. 그렇게 오랜 세월 후에도 변함없는 울림을 준다는 것이 고전의 진정한 가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