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Bulgaria
쉬는 시간이면 잔돈을 들고 매점으로 내려가 얇은 플라스틱 컵에 담아주는 커피나 차음료를 사마시던 학교생활.
그날은 단짝 친구와 팔짱을 끼고선 매점으로 향하는 대신 따뜻한 볕을 쬐러 건물 밖 작은 정원으로 갔다. 여름을 앞 둔 포근한 봄기운이 우리를 밖으로 불러냈다. 불가리아에서 다녔던 학교 정원에는 커다란 체리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한국에서 종종 감나무가 심어진 마당이나 아파트 앞뜰을 볼 수 있는 반면, 불가리아에서는 체리 나무가 곳곳을 장식하고 있었다.
6월 즈음이었을까, 이미 붉으스름하게 잘 익은 체리가 나무에 열매맺힌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누구도 키가 닿지 않아 따먹을 수 없는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던 중, 나무가지가 2층 테라스까지 꽤 멀리 뻗어있는 걸 알아챘다.
'저기에서라면 따낼 수 있을지도 몰라!'
자신의 팔다리가 얼마나 아직 짧은지 체감하지도 못한 우리들은 2층 연습실로 향하였다.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있는 방을 가로질러 테라스 밖으로 손을 뻗어보았다. 나뭇잎은 간신히 스칠 수 있었지만 바로 그 뒤에 달린 열매까지는 손이 아깝게도 닿지 않았다.
이만 포기하려던 찰나, 어디선가 빗자루를 챙겨온 친구.
기다란 도구라면 충분히 체리를 딸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다시 체리나무에게 가까이 다가섰다.
빗자루 손잡이 끝을 쥐고선 나뭇가지를 툭툭 찔렀다.
열매의 줄기가 꽤나 단단했던 모양인지, 아무리 위아래로 쓸어내려보고 좌우로 흔들어보아도 떨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이내 밑에서는 우리가 하는 행동을 지켜보며, 여우처럼 열매가 떨어지기만을 바라는 학생들이 한 두 명씩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체리가 탐나기보다는 우리가 열매를 딸 수 있을 것인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더 큰 흥미를 느꼈던 모양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나보다 키가 큰 친구가 체리나무를 공략하는 순간 나는 옆에서 응원을 했다. 여차하면 난간 밖으로 추락할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아직은 철없는 소녀들이 그런 걸 지각했으리란 없다.
그리고 그 순간, 연습실 문이 쾅 열렸다.
큰 키에 수염이 덥수룩하게 뒤덮였지만 머리는 원형탈모가 오신 역사선생님. 안경알 너머로 무서운 눈을 하시고서는 우리에게 무어라 소리쳤다. 당시 불가리아어가 유창하지 못해 정확히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위험하니 그만두라며 호통을 치시는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우리는 먹이를 구하다 들킨 다람쥐처럼 후다닥 그 자리를 떴다. 결국 우리는 체리를 한 알도 따내지 못하였는데, 만약 체리를 땄더라면 선생님에게도 하나 건네며 도망치는 대신 우리를 용서해달라며 떳떳하게 굴었을까?
.
.
.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음이 머물렀다면 좋아요로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