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인사하게 되었다

카페에서 일하며 배운 것들

by 지친 잉어


아르바이트. 사회 초년생이 특별한 기술이나 전문지식 없이도 돈을 벌 수 있는 노동수단이다. 상가마다 하나씩 꿰고 있는 카페들 탓일까, 아니면 아르바이트 구직 공고란을 보면 카페 아르바이트만큼은 꾸준하게 올라와서일까. 나는 아르바이트하면 카페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2007년 방영한 드라마 <커피 프린스>를 보고 바리스타 일이 꽤나 우아한 직업으로 생각한 적이 있다. 정성스레 갈아 내린 원두를 세련된 굴곡이 있는 은색 포트로 뜨거운 물을 빙글빙글 돌려가며 물을 내리는 동작에서 어떤 정교함이 묻어난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고급스러운 원두 향을 음미하며 내린 커피잔을 손님에게 내놓으면 모두들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이런 이미지들이 겹치고 쌓여, 나도 언젠가는 바리스타 일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자그마한 꿈을 꾼 적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커피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커피를 한 모금이라도 마셨다가는 그날 밤은 이미 다 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마시는 디카페인도 내게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커피의 맛과 향을 알아보기도 전에 나는 커피와 멀어져 카페 자체에도 잘 가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언젠가 꿈은 이루어진다고 누군가 그랬지 않은가. 내게도 바리스타로서 일할 날이 찾아왔다.


코로나19가 강타한 그 해, 많은 사람들이 으레 그러했듯이 나도 불가피하게 일자리를 잃었다. 일정은 취소가 되었고, 파도보다 빠르게 밀려오는 전염병에 대한 공포심에 사람들은 서로를 멀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 바이러스쯤이야, 인류가 발전한 과학으로 쉽게 제압할 수 있으리란 믿음과 달리 코로나와의 전쟁은 장기화가 되었다. 슬슬 집에만 있는 것이 지쳐가던 나는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을 하든 안 하든 생활비는 꼬박꼬박 필요했다. 이제는 일을 해야 했다.


그때 떠오른 일이 바리스타였다. 당장 학원을 알아보고, 국비지원금을 받아 수강신청을 했다. 한 반에 서른 명 가까이 되는 수강생들이 저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모였다. 다들 아르바이트라도 해봐야겠단 생각이었을까. 나를 포함해 카페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우리는 에스프레소 머신을 다루는 법, 커피를 내리는 법과 우유를 스팀 하는 법 등 다양한 기초적인 기술을 배웠다. 약 한 달 후, 실기시험을 치르고선 자격증을 무사히 따내었다. 그리고 이 자격증을 이용해 집 근처 카페 아르바이트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캐러멜 마키아토, 카페모카, 카푸치노... 커피에 그토록 많은 종류의 메뉴들이 있는지 몰랐다. 커피를 잘 안마 시다 보니 접할 일도 없던 커피들이었던 것이다. 카페모카는 초콜릿 시럽이 얼마나 들어가며, 시럽을 먼저 뜨겁게 내린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정확히 120ml를 넣는다든지, 외워야 하는 레시피와 그 순서는 꽤나 복잡했다. 시럽류를 모두 똑같이 동일한 양으로 측정했으면 좋았을 것을, 어느 시럽은 2 펌프를, 어느 시럽은 1.5 펌프를 넣어야만 했다. 라지 사이즈라고 해서 그의 두 배를 넣는 것도 아니고 1 펌프만 추가하거나 1.5를 추가하거나 모두 제각각이었다. 어떤 메뉴는 펌프 대신 그램으로 직접 재야만 했다.



아르바이트 첫날부터 머리가 빙빙 돌았다. 한쪽 구석에 꽂아둔 레시피를 훔쳐 꺼내 볼 때마다 사장의 표정은 살짝 굳어졌다. 내가 서울대 수석 입학생처럼 한 번 만들어 본 것은 바로 그 자리에서 외우기를 바라셨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하더라도 당장 낯선 환경에서 에스프레소 원액을 내리는 일조차 버거웠다. 주문을 막 마친 손님은 언제 자신의 음료가 나오나 내 손짓 하나하나 카운터 너머에서 지켜보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식은땀마저 흐를 지경이었다. 커피 한 잔마다 나의 땀과 노고가 같이 녹아들어 갔다.


다음으로 만들어본 디저트류 음료는 말할 나위도 없이 손이 많이 갔다. 조심스레 토핑을 하나하나 데코 해야 했고 과일은 예쁘게 모양을 내며 손질을 해야 했다. 아이스크림은 손님에게 많이 주는 척, 그러나 사실은 적게 주는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했다. 그나마 휘핑크림을 컵 안쪽에 구름모양으로 발라주는 일이 제일 쉬웠다.


단체 주문이라도 들어오면 물밀듯 들어오는 손님들이 영원히 빠져나가지 않을 것만 같은 공포심에 사로잡힐 정도였다. 블렌더를 이용하는 음료가 다양하게 들어오면, 한 잔 만들 때마다 설거지를 해야 했다. 내가 일한 곳에서는 블렌더가 두 개뿐이었는데, 당시 나는 음료를 만들다 말고 설거지를 하는 일이 번거로웠다. 한마디로 음료를 만드는 일에만 집중을 하기는 어려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주 대형 카페가 아닌 이상 블렌더 두 개 정도가 보편적으로 구비되는 개수인 것 같았다.


주 3회밖에 일하지 않는 나에게 간신히 외운 레시피는 주말이 지나면 흐릿해져 있어 일하는데 조금 어려운 일이 있었다. 주문이 자주 들어오는 커피 메뉴는 익숙해졌지만, 어쩌다 한 번 들어오는 메뉴의 경우는 정말이지 일을 그만두는 날까지 결국 외우지 못하였다.


남들보다 머리가 나쁜 걸까, 내 암기력을 탓하고 싶었지만 그도 그럴게, 매달 프로모션 행사 음료가 새롭게 등장했다. 그때마다 기본적으로 대여섯 개씩 새로 생겨난 레시피의 속도를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이 일을 6개월도 채우지 못한 채 그만두었다. 코로나 시기, 무료한 일상에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좋은 버팀목이었으나 방대한 양의 레시피를 따라갈 수 없었다.




나는 이후로, 카페에 갈 일이 생길 때면 그곳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생 바리스타들이 너무나 대단해 보였다. 매달 새로이 생겨나는 레시피를 사이즈별로 외우고, 바쁜 와중에도 손님에게 친절함을 잃지 말아야 하는 극한의 서비스 직업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그들이 겨우 최저시급을 받고 일한다는 사실이 부당하게 느껴질 정도다. 의자 하나 없이 근무 시간 내내 서서 일해야 하고,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받기 위해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눈치가 보인다. 끝없는 설거지에 손에는 축축함이 가시질 않는다. 바리스타는 드라마 속 환상과 달리 우아한 직업이 아니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함께 존재하는 현장이다. 카페를 이용할 때면 고생하는 그들에게 먼저 밝게 인사하려 한다.


"만들어주신 음료, 맛있게 잘 마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