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흐름의 핵심,
대한민국은 뒤에서 5번째

구글이 2029년까지 삼성전자에 요구한 것

by 웨델해표

저는 탄소중립과 관련된 스타트업에서 일했습니다. 주로 LCA(전과정평가) 컨설팅을 했지요. 간단히 소개하자면 고객사의 제품이 생산되고, 사용 후 폐기되는 과정에서 기후위기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해주는 일입니다.


여러 대기업 ESG 담당자와 만날 일이 있었어요. 한 번은 저와 스무 살 이상 나이 터울이 나는 대기업 환경 인증 담당자께서 제게 왜 이 일을 하시는지 여쭤보셨던 적이 있습니다.

원래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하고 말씀드렸더니, 제게 환경 쪽은 돈이 되지 않는다며 우려를 표하시더군요.


그 이후로도 비슷한 이야기를 4번은 더 들었던 것 같습니다. 친환경 기술을 연구하는 사람조차도 ‘친환경성’과 ‘돈’이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에는 회의적이에요. 기후위기 대응에 대한 우리나라의 미적지근한 온도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국내에서 환경 관련 직업은 잘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ESG 부서는 '돈을 쓰는 곳'이라는 낙인이 강하게 자리 잡혀 눈치를 보며 지내죠.

왜일까요? 자본을 갖고 있는 기업들의 반응이 미지근합니다. 아직 당장 대비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서로 눈치 보고 미루고 있는 중이에요. 정부마저도 산업계의 눈치를 보며 대응을 차일피일 미룹니다.


이미 방향이 정해진 게임, 빨리 대응할수록 선두주자가 될 수 있을 텐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애플, 구글, 대만의 TSMC는 이미 지속가능성 면에서는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앞서 나갔으니까요. 아래는 국내 환경경제학 1세대이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의 홍종호 교수님께서 쓰신 <기후위기 부의 대전환>의 한 구절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대한민국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탈탄소 국가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이미 방향은 정해졌고, 여기에 우리나라가 얼마나 기민하게 대처하느냐의 문제만 남은 것이죠.”


미래 세대를 위해 낭비를 멈춰야 한다, 지구와 북극곰을 지켜야 한다, 이런 영웅소설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대한민국은 결국 이대로 망하지 않는 이상 끌려갈 겁니다. 미리 준비를 안 했으니 급격한 변화를 겪을 것이고요, 그 변화에 에너지 문제와 탄소중립이 자리할 겁니다. 탄소중립에는 어마무시한 돈이 듭니다. 자본이 그쪽으로 쏠릴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높아지는 물가에, 당장 먹고살기도 바쁜데 웬 기후위기냐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 기후위기가 위기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먹고사는 문제가 먼저이니까요. 특히나 시국이 혼란하고, 국내에서는 AI와 반도체가 핵심 산업으로 뜨고 있으니 기후위기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죠. 미국은 기후위기 부정론자인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는데, 그러면 해외 진출에도 큰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인터넷에 생각나는 아무 농수산물에 '물가'를 붙여 검색해 보세요.

이성원(2025), '이상 기후' 수많은 경고음에도...60년 후 김장할 배추·무 못 키운다, 한국일보.

검색해 보셨나요? '이상 기후'라는 단어를 쉽게 확인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기후위기가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오죽하면 한국은행에서 작년에 '이상기후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겠습니까.


물론 모두가 처참하게 굶어 죽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잖아요. 사과가 사라지는 만큼 망고가 자라고, 오징어가 사라지는 만큼 블루길이 잡힐지도 모릅니다. 처음에는 아쉽더라도, 금방 잊어버리겠지요. 언제 그랬냐는 듯이요.


하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먹고 싶은 것을 못 먹는다’ 수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돈의 흐름 자체가 기후위기 대응을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어요.

<기후위기 부의 대전환>에서의 설명을 빌려, RE100, ESG, CBAM의 세 가지 키워드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셋 다 너무나도 유명한 용어이지만, 맥락만 간략하게 정리했습니다. 책을 읽을 수 있을 수준의 독해력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1. RE100(Renewable Electricity 100)은 자사의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기업의 자발적인 선언입니다. 구글은 2017년에 이미 RE100을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2029년까지 RE100 달성을 요구한 바 있습니다. 실패한다면 RE100에 더 적극적인 대만의 TSMC에 공급망 자리를 빼앗길 가능성이 존재합니다.

왜 구글은 다른 회사에까지 RE100을 강요할까요? 구글에서 판매하는 제품이 친환경적이려면, 구글의 제품을 생산할 때 사용되는 부품도 제조 과정에서 탄소를 적게 배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글이 공급망을 선정하는 조건에 제품 품질뿐만 아니라, RE100과 같은 기업의 기후위기 대응 역량이 추가되었습니다. 비단 구글에 직접 제품을 납품하는 업체만 겪는 문제가 아닙니다. 구글의 공급망, 그 공급망의 공급망, 그 공급망의 공급망의 공급망...을 타고 가다 보면 국내 중소기업에 닿기까지는 순식간입니다. 구글뿐만 아니라 애플 등 다른 여러 기업도 자사를 넘어선 공급망 관리를 시도하고 있고요.

가뜩이나 재생에너지도 없는 나라에, RE100을 요구하는 기업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으니 자국 기업끼리 재생에너지를 두고 경쟁하게 생겼습니다.

다른 말로 풀어쓰자면, 미리 재생에너지를 갖추고 시장을 선점하는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죠.


2.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는 투자자가 살피는 비재무적 정보입니다. 투자자도 기후 대응 리스크를 봅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세계의 종말을 신경 쓰는, 그런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저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못하는 기업이 지속가능하지 못하고, 장기 투자에 부적합하다 판단하였기 때문이지요. 거대 자본의 투자 방향성이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기후위기에 충분히 대응할 역량을 갖춘 기업에게로 돈이 흘러갈 것이라는 사실이 자명하지요.


3. 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국가 간의 탄소 규제를 조정하기 위한 제도입니다. 유럽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제품 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 1kg당 만 원을 부과하는데, 수입 제품은 수입국에서 100원만을 부과한다고 하면 유럽 제품이 가격 경쟁력이 당연히 떨어지겠죠. 대응되는 9900원만큼을 유럽으로 수입 시 부과하도록 한 개념이라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2023년부터 이미 전환기간에 들어섰고, 2026년에 본격 시행될 예정입니다. 현재 대응 품목은 6가지에 불과하나, 화학제품 등 타 제품군에까지 급속도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품의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관리해야만 하며, 탄소배출량이 높을 경우 금전적 불이익을 받는 시기는 당장 우리의 눈앞에 닥쳐 있습니다.


긴 글을 거쳐 얘기했습니다만, 결국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자명합니다. 기후위기 대응이 곧 경쟁력이자 자본의 흐름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적어도 내수 100%만으로 먹고 살 기업이 아니라면, 해외 경쟁사의 기후위기 대응 현황 정도는 꼼꼼히 알아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국내 기업 사이에서 눈치 보는 것은 다 같이 뒤처지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은 세계 64개 국가의 기후변화 대응 성적 중 뒤에서 5번째에 위치합니다. 산유국을 제외하면 사실상 꼴찌이지요. 국내 경쟁사 대비 가장 친환경적인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는 그저 어떻게든 성과를 부풀려 위안을 얻고자 하는 자위행위에 불과합니다.


CCPI 2025.png CCPI(기후변화대응지수) 2025 보고서


안타깝게도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고위 임원들 중 많은 이들이 기후위기 대응, ESG 경영을 그저 '보여주기용'이라 생각하는 우를 범합니다. 제품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얕은 활동을 진행하고서는 크게 부풀리기 십상이죠. 단기적인 마케팅으로는 먹힐지 몰라도, 근본적인 온실가스 관리 및 감축 시도를 하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물 밀려나가듯 거래처를 잃을 수 있습니다.

앞선 우리나라의 기후위기 대응 현황에 미루어보았을 때, 국내 기업에 종사하고 계신 분이시라면 지금의 위치는 안전지대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해외 시장은 기후위기를 중요한 우선순위로써 대응하고 있는 지속가능한 기업에 수요가 몰리고 있으니까요.


어떠한 조직에 소속되어, 어떠한 일을 하고 있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바꿀 수 없다고 느낀다면, 자신이 소속된 조직은 기후위기 대응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어보세요. 가능하다면 충분히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요. 내가 소속된 조직은 기후위기 대응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충분히 대응하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압박을 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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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예전에 대학의 RE100 선언 및 이행을 촉구하라는 취지로 200명가량의 연서명을 받아 대학 본부에 전달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당연히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부지가 너무 많이 필요해서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지요.

그로부터 며칠 뒤, 부총장께서 '학생들이 RE100을 하라고 서명을 받아왔는데, 우리 학교 탄소중립 어떻게 해야 되냐'라는 연락을 교수님께 드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학교 측의 답변은 '어렵다'였지만, 이루고자 했던 중요한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본부의 관심을 끌고 기후위기 대응의 우선순위를 올리는 것 말입니다.


조직에서 나서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더 간단한 방법도 있습니다. 정치인에게 기후위기 대응 관련 공약이 있는지 물어보세요. 특히 선거를 앞둔 선거운동 기간에 물어보시면 좋습니다. 국민신문고 등에 남기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후위기 대응을 충분히 못 하고 느낀다면, 가령 진정으로 기후위기 대응에 신경 쓸 돈이 없다면 정부에게 돈을 충분히 지원해 달라고 하세요. 이런저런 핑계로 안 된다고 머무르는 자세가 아니라, '이렇게 해달라'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 더,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이들이 자주 우를 범하는 확증 편향을 주의하시기 바라겠습니다. 믿고 싶은 것만 믿지 말라는 뜻입니다.

저도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어', '우리나라는 땅이 좁고 산이 많아서 재생에너지가 안 돼'와 같은 말을 듣고 지내왔습니다. 물론 그 말이 이제는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죠. 오늘날에는 특히 여러 알고리즘을 통해 믿고 싶은 것만 보기가 쉬운 사회가 되었습니다. 현실을 외면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그런 확증 편향을 갖고 계신 분이라면 지금 이 글도 믿지 않으시겠지만요. 그렇게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이들은 기후위기 대응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부분에서도 현실을 외면하고 도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본인만 모를 뿐이죠.


모든 근거를 들어 설명하기에 이 글은 짧습니다. 제 글에 믿음이 안 가시거나, 자세한 논리를 이해하고 싶으실 수 있습니다. 그런 분들께는 책 <기후위기 부의 대전환>을 추천드립니다. 앞서 설명드린 환경경제학을 연구해 오신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홍종호 교수님께서 작성하셨고, 쉬운 언어로 풀어져 있어 읽기에도 어려움이 없으실 것입니다.


기후위기 부의 대전환.jpg 홍종호(2023), 기후위기 부의 대전환, 다산북스.


기후위기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먹고사는 것을 위해서라도 말이죠.

목소리를 내는 일에는 10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뒤쳐지고 싶지 않다면, 자본의 흐름에 타고 싶다면 이 글을 닫으신 뒤 돌아가서 우리 조직은, 우리나라는 기후위기 대응을 하고 있는지 물어봐주세요.

사실 90%의 이들은 이 글을 읽는 것에서 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채 10분도 되지 않는 간단한 행동에도, 오롯이 변화를 믿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실천하기에 기후위기 대응에서 쉽게 선두주자가 될 수 있는 것이겠죠.


장기적으로 부의 흐름을 따라가는 선택을 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당장 내가 먹고사는 데 걱정 없도록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