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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버금 Mar 28. 2024

돈 룩 업(2021)

아담 맥케이 감독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메릴 스트립

돈 룩 업(Don't look up, 2021) | 아담 맥케이 감독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메릴 스트립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멸망이 다가온다. 약 5~10km의 너비를 가진 이것은 미시간 주립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케이트 디비아스키에 의해 최초로 발견되었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것은 오르트 구름에서 왔을 것으로 추정되며, 궤도와 속도를 이용하여 위치를 계산한 결과 그 값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고 밝혀졌다.(이것은 지구와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궤적의 현재 추정치는 6개월 14일이며, NASA와 케네디 우주센터에서도 동일한 값을 도출해 냈다. NASA의 스카우트 프로그램은 혜성의 낙하지점을 태평양 칠레 서부 해안 100km 부근으로 보고 있으며, 그 영향으로 1.5km 높이의 쓰나미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히로시마 원자폭탄 위력의 10억 배와 맞먹는다.


그러니까 그들은 인류의 멸종을 보았다.

이것은 6개월 14일 뒤에 일어날 예견된 종말이다.

천체를 관측하고 운행을 셈하며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던 과학자들은 종(種)의 위기를 개진하기 위해 워싱턴으로 이동한다. 그들은 집무실 앞 복도에 앉아 초조한 마음으로 대통령을 기다리지만, 늦은 밤이 되도록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 호텔로 돌아온 케이트는 신문사에서 일하는 남자친구로부터 대법관 후보의 과거 논란으로 인해 입장이 난처해진 백악관의 상황에 대해 듣게 된다. 이튿날, 올린과의 짧은 만남을 허가받은 과학자들은 비극적 운명을 타진할 방도에 대해 역설하지만, 그녀는 다가올 중간선거와 자신의 인기 이외의 것에는 관심이 없다.

세 사람은 언론을 통해 사태의 위급함을 보다 직접적으로 알리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나쁜 소식도 가볍게, 입에 쓴 약도 달게 포장하는 사회자의 익살은 혜성 충돌이라는 재난 상황도 유머로 승화시키며, 다가올 미래의 위험을 대폭 축소시킨다. 케이트는 과학적 사실을 전달하는 그들의 진행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지만, 감정적인 그녀의 대응 역시 대중을 설득시키지 못한다.

“지구 전체가 파괴된다는 소식은 재밌으면 안 되는 거예요. 무섭고 불편해야 할 소식이라구요.“


정보통신의 발달로 시공간의 동시성을 획득한 대중문화는 광장이 아닌 SNS상에서 생산되고 확장된다. 그들의 기호와 욕구는 다발적인 소통방식으로 인하여 끊임없이 변주되고, 굴절되고, 오용되지만, 빠른 속도와 과량으로 인해 진위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근거 없는 말들이 가상을 떠돌기 시작하면, 그 순간을 즐기기 위해 모두가 가십에 참여하고, 이를 공유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케이트의 절절한 외침은 일종의 밈이 되어 SNS를 달구고, 그녀는 순식간에 조롱과 놀림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생사가 달린 엄청난 진실은 일기예보와 교통상황만 못하고, 시각적 재미를 추구하는 이들로 가득 찬 공간엔 듣는 이 없이 떠드는 입들로 가득하다. 일회적이고, 즉각적으로 유행을 소비해 버리는 문화는 현실감각의 상실로 이어지지만, 사고력을 잃어버린 대중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것은 눈앞의 불행이 아닌 가상 세계의 어떤 것이다.

그러나 초대형 스캔들이 터지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불륜과 노출 스캔들로 입지가 불리해진 올린이 판도를 바꾸기 위해 ‘인류의 위기’라는 히든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대통령의 긴급성명이 발표됨에 따라 처음으로 사건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한다. 그녀는 긴급예산확보, 상하원 동의, 나사&미군의 협조 그리고 인류를 구원할 영웅이라는 4가지 요소로 버무린 시나리오를 편성해 디비아스키 혜성의 궤도 변경에 나선다.

“난 당신한테 투표 안 했어요. 하지만 당신에 대한 불신보다 중요한 일이니까 저도 100% 힘을 다해 돕겠어요. 보기만 해도 화가 치밀지만.”


인류에게 여분의 삶을 가져다줄 정치적 희생양, 드레이크 장군을 태운 우주선이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동시 생중계된다. 모든 이들의 염원 속에 발사가 시작되고, 관제센터는 81%라는 높은 성공률을 발표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발사대는 다시 지구로 회귀한다. 영문을 모르는 이들의 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올린과 BASH 기업의 회장 피터는 지구를 향해 다가오는 혜성이 금, 다이아몬드 등 희귀 광물을 내포하고 있어 인류의 기아와 자원 부족을 해결해 줄 기회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죽으면 광물이 다 무슨 소용이에요?”


정치적 패권싸움이었던 궤도 변경은 광물의 독점이라는 기업가의 야망이 추가되어 한층 복잡하고, 지난해진다. 피터는 혜성을 잘게 조각내 지구 곳곳에 떨어뜨려 미래 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가 가진 나노 기술은 아직 동료 심사도 마치지 못한 미완성의 단계이다. 그러나 멋진 신세계를 꿈꾸는 기업가의 머릿속엔 안정성에 대한 우려는 들어있지 않고, 자신의 품에 안길 다이아몬드만을 소망한다. 인류의 존폐를 결정지을 중대사가 IT기술에 대한 자만과 데이터를 향한 맹신으로 점철된 자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것, 가장 큰 비극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거대 IT기업의 성장은 빅데이터의 수집 및 분석을 바탕으로 전자상거래, 검색엔진,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입자 수를 늘려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가지게 된 데에 배경을 둔다. 특히 스마트폰의 대중화는 현대 문화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며, 정보를 향한 대중의 접근성, 편리함, 속도감 모두를 크게 향상시켰다. 그러나 데이터 권력이라 일컫는 개인정보의 감시와 통제는 정보 사회의 암흑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부작용으로 지적되는 부분이다. 정보의 독점은 개인과 집단이 가진 관심사, 욕망, 결핍 등을 분석하여 미래의 행동 방향을 예측하고 나아가 그에 따른 대비책도 수립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BEAD 성공에 대한 피터의 자신감 역시 거대 IT기업의 CEO라는 그의 지위와 그가 소유한 수많은 정보력을 ‘믿는 것’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황금 열쇠의 등장에 대중들의 분열도 갈래를 더한다.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는 사람과 충돌을 원하지 않는 사람, 혜성이 없다고 믿는 사람, 비현실적인 현실 앞에서 모두가 갈피를 잃고, 시간만 흘려보낸다. 이것은 정치적 이념이나 경제적 이익이 아닌 생존의 문제지만, 협동이 아닌 분열을 택함으로써 해답에서 멀어지고,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는 과학자들의 분투는 애처로울 정도로 공허하다.


파벌을 지어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인과 소모를 권하는 문화, 대기업의 독과점 횡포 등 공익성을 잃고, 자극만을 추구하는 결과는 공공질서의 파멸이다. 가짜뉴스, 마녀사냥, 악성댓글 등의 사회문제와 기후, 공해, 에너지와 같은 환경문제는 혜성의 도래라는 영화 속 사건과 다를 바 없는 적신호로써 우리의 현실이 영화 속 위기와 다를바 없음을 시사한다.

올린과 피터는 BASH의 독자적인 기술로 새로운 발사대를 꾸리고, 이들의 도전이 과학자들 눈엔 의심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의혹을 제기한 이들이 프로젝트에서 배제되자 객관성과 정확성을 담보해 줄 집단의 발언도 세기를 잃어간다.


또 한차례의 발사를 앞두고 데일리립에 출현한 민디는 혜성을 제거할 기회를 날려버린 작금의 세태에 대해 강력하게 호소하지만, 그 역시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고, 불쾌함을 야기하는 신사적이지 못한 사람으로 비춰진다. 그 사이 혜성은 육안으로 관찰 가능한 거리에 도착하여 엄청난 빛을 내뿜으며 자신의 위용을 자랑한다.

혜성이 가시거리 안으로 진입하자, 직면과 외면을 필두로 과학계 vs 정치&사업계의 대립구도가 한층 심화된다. 그들은 두려움을 증폭시켜 혼란을 야기하려는 음모라는 주장과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자신의 권력만을 지키려는 무지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양보 없는 줄다리기를 펼친다.

인류의 마지막 기회이자 최후의 희망인 BEAD 발사가 시작된다. 올린과 피터가 직접 관제센터를 찾은 가운데 총 30대의 BEAD 중 4대가 불발된다. 이어 2대가 부착에 실패하자 제이슨은 피터에게 “몇 대까지 잃어도 되는가”라는 객관적 수치에 관해 묻는다. 그러나 경영자인 피터는 기술적 사안에 대해 대답하지 못한다. 그 사이 총 24대의 BEAD가 폭발음을 내지만, 혜성은 조각남 없이 굳건하다. 실패를 예감한 두 사람은 황급히 자리를 뜬다.

민디와 케이트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준비하며, 삶의 마지막을 수렴한다. 디너 테이블에 접시와 나이프를 세팅하고, 파이를 굽고, 와인을 마신다.

잠시 후, 거대한 굉음과 함께 쓰나미가 몰려오고, 지구가 폭발한다. 바닷물이 끓고, 땅이 갈라진다. 세계의 곳곳이 폭격을 맞는다. 재앙을 예상한 이들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에 감사하며, 의연한 죽음을 맞이한다.

지구는 멸망했지만, 탈출에 성공한 자들이 있다. 그들은 권력을 가진 자와 부유한 자, 두 부류다. 이들은 냉동기술이 장착된 우주선을 띄워 또 다른 행성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지구와 유사한 어느 행성에 도착한 그들은 생존을 자축하지만, 브론테록이라는 커다란 새에게 둘러싸이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이기의 집약체로 구성된 살아남은 인류들, 낯선 행성에서 살아갈 그들의 미래가 과연 녹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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