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 77 아이큐77 제2화 02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아이큐77 제2화
02
그 이후로 고칠이는 개천 앞에서 본능적으로 서성거리기만 했다. 들어가지는 않았다. 개천에 들어가고 싶어도 잔인한 그 똥이 무서워진 것이다. 고칠이는 파블로프가 개에게 한 조건반사실험 결과를 뒤집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고칠씨는 아이큐가 77임에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보이는 것과 반복적인 것은 어느 누구보다도 그는 더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실험’
러시아의 생리학자 파블로프는 1900년쯤 개를 대상으로 소화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조건반사 현상을 발견하였다. 그는 개에게 종소리를 들려준 다음, 먹이 주는 일을 여러 번 되풀이한 결과 나중에는 종소리만 들려주면 먹이를 주지 않더라도 침을 흘리게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먹이가 입 속에 들어가 침이 분비되는 것을 무조건반사라고 한다.
원래 먹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자극, 즉 종소리와 같은 자극을 되풀이 받으면서 그 자극 뒤에는 먹이가 나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다. 그 자극만 받아도 침을 흘리게 되는 반사를 조건반사라고 하였다. 이 조건반사는 학습 또는 경험의 한 형태이다.
고칠이가 개천에 들어가는 게 뜸해질 무렵, 개천이 사라질 거라는 소문이 동네 구석구석 돌았다. 가끔씩 넥타이 맨 아저씨들이 오더니, 트럭 불도저 등이 뒤따라 왔다. 지금은 개천의 자취는 흔적도 없이 풋풋한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엄마는 생전 불지도 않으시던 '휘' 하는 휘파람 소리를 내며, 기뻐하셨다. 집 앞도 깨끗해졌고, 고칠이가 개천에 들어갈 이유도 사라져서다.
하지만 소중한 영혼이 깃든 진실이 영원히 사라진 것처럼, 고칠이의 놀이터는 없어졌다. 이제 그 무섭던 똥도 못 보게 되었다.
고칠이도 엄마처럼 좋긴 했지만 왠지 허전했다. 무서운 똥을 못 보게 되어서 좋긴 한데, 개천에서 노는 게 고칠이에겐 제일 행복했던 것이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마음껏 놀 수 있는 곳이어서 못내 아쉬웠다. 고칠이는 항상 어깨가 축 늘어진 채 지냈다. 같이 지내던 아리따운 벗과 이별하고만 것이다.
고칠이의 집은 개천이 없어진 지 몇 달이 지나 이사했다.
요즘 그 곳은 6층짜리 땅딸막한 아파트가 들어섰다네.
“고칠씨, 성장 중심 사회를 원하세요? 아니면 분배 중심 사회?”
“노력도 하지 않은 가난한 이들이 공짜로 이득 보는 분배 중심이면 사회주의 아닌가요? 이를 주장하면 빨갱이라고 다들 그러던데요?”
“많이들 그렇게 생각하더라고요. 우리 사회는 성장을 중시할지, 분배를 중시할지 오랫동안 고민을 많이 해왔고, 이 문제로 계층 계급간의 갈등도 많았어요. 경제적 측면에서 성장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경제 성장만이 우리 사회가 살 길이라고 주장하면서 적극적인 시장의 논리를 활용하고자 했던 거예요.”
“어렵네요. 경제 얘기만 나오면 복잡해요. 뭐가 옳은지도 모르겠고요.”
“맞아요. 그래서 오해가 많이 생겨요. 성장을 강조하는 그들은 단기적으로 부의 불평등과 계층 계급간의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국가의 부의 축적을 가져와 개인의 풍요로운 삶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죠. 이들은 대체로 사회교과서에서 권위주의적인 안보체제의 옹호자로 보수주의로 일컬어지고 있답니다.”
“아, 그래서 분배를 강조하는 이들을 빨갱이라고 하나 보네요.”
“빨갱이요? 분배를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시장의 논리보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물질적 평등을 강조했어요. 그들은 시장경제 체제로 인한 부의 불평등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보았어요. 그리고 공정한 부의 분배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사회주의적 경제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거예요. 이들은 대체로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세력인 진보주의자로 보여요. 그러니 빨갱이 라고 색깔론을 펼칠 수 있겠네요.”
성장을 중시하는 입장은 시장제도의 원활한 운영과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자유를 최우선의 가치로 생각하는 반면, 분배를 중시하는 입장은 사회복지체제의 구축을 위한 노력을 강조하면서 평등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면 말씀하신 내용을 정리해볼게요.”
“지금이요? 기대됩니다!”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이다 보니, 계층과 계급이라는 말의 구별은 쉽게 말해 '경제적인 기준이냐, 아니냐'로 볼 수 있다. 계급은 '돈이 많냐, 적냐.' 라는 경제적인 기준이고, 계층은 '지위가 있냐 없냐.' 라는 경제이외의 기준이다.”
“고칠씨, 지금 말씀하신 내용은 제가 말해드린 그 이상의 심화된 내용인데요?”
“저도 좀 공부했죠. 지위를 기준으로 해 계층을 말한 막스 베버, 경제 기준의 계급을 말한 칼 마르크스. 맞죠?”
“대단하십니다! 아이큐가 정말 77, 맞아요? 설마 거짓말은……?”
“거짓말 아니에요. 말끔히 좀 정리해주세요.”
“계급은 흔히 경제 입장에서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 서열화 된 위치라고 하고, 계층은 사회적 희소가치인 지위, 권력에 따라 서열화 된 위치입니다. 고칠씨는 집 근처 개천이 사라지면서 집값 상승으로 경제적인 계급이 상승했다고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