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Q 77 아이큐 77 제2화 01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by 이윤영

아이큐77 제2화


01


“고칠씨 집 앞에는 조그마한 개천이 있었다는데. 맞죠?”

“네, 그때 생각하면 웃음부터 나와요.”


여름이면 지독한 냄새가 많이 난다. 세수도 안 하는 동네꼬마들조차 코 막고 지나가기 바쁘다. 아저씨 아줌마들은 하루 빨리 여길 메워서 조그만 도로를 만들거나 주민들의 휴식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반상회도 열 정도다.

그런데 고칠이만은 다르다. 하루가 멀다 않고 개천에서 노는 게 재밌다. 고칠이는 개천 물을 몸에 온통 뒤집어 쓰고 집에 들어올 때면, 엄마의 화 난 듯한 찡그린 얼굴이 생각나 후회의 소용돌이로 눈이 번쩍 띄었다. 하지만 그래도 고칠이는 개천에서 노는 걸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 날 정도라는 거다.

게다가 고칠이는 개천 말고도 집근처 움푹 파인 웅덩이에서도 발가 벗고 수영도 하고, 코가 막혀 풀어보면 누런 흙이 나오고 하는 게 꽤 재밌는 모양이다.


고칠씨는 마음만은 편했나 보네요. 서양에서는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방법으로 이성과 사유를 강조하는 스토아학파가 있었어요.”

“그냥, 맘 편히 놀았던 건데 이를 두고 별 학파가 다 있네요?”

“그러게요. 창시자는 제논(Zenon, 기원전 336-기원전 263)인데, 필연적인 법칙을 지배하는 힘이 바로 보편적인 이성, 로고스(logos)라고 주장했어요. 인간도 이러한 로고스 존재라서,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로고스 법칙을 따라야만 혼란이 없어 마음이 편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게 아니라요, 마음 가는 데로 논 거 뿐인데…….”

“더 들어 보세요.”

“네. 제가 조급하긴 한가 보네요.”

“그래서 제논은 인간이 마음 편히 살려면 이성을 흐리게 하는 감정이나 욕망을 억제하여 부동심(不動, 아파테이아)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한 거예요.”

고칠이는 이제야 학창시절 배운 내용이라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내 말에 더 귀를 기울였다.

“반면에 어린 고칠이처럼 이성에 따라 사는 답답한 삶 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개천에서 즐겁게 감각적으로 사는 것이 마음 편히 사는 길이라고 주장한 헬레니즘 철학자 에피쿠로스(Epicuros, 기원전 342-기원전 271)도 있었죠.”

그렇다. 고칠이는 감각적으로 사는 에피쿠로스의 생각과 엇비슷했던 거다.

“에피쿠로스는 즐거운 삶을 중시하여, 쾌락을 느껴야 행복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을 한 겁니다. 에피쿠로스는 정신적이고 지속적인 쾌락을 통해 육체적인 고통과 마음의 근심이 없는 상태인 '아타락시아'를 말하게 됐어요.”

스토아학파는 나중에 만민법과 자연법에 영향을 주고, 에피쿠로스학파는 경험론과 공리주의에 영향을 준다.


그런데 신의 질투일까.

햇빛의 강렬함이 사그라지는 초가을 점심때쯤인 것 같다. 고칠이가 동네 아이들을 꼬셔 개천에 들어가 같이 노는데 이상한 누런 색의 동그란 공이 떠내려 오는 걸 보게 되었다.


"얘! 우리 이 공 같이 갖고 놀자, 재밌겠다.“


고칠이와 동네 아이들이 달려들었다. 먼저 그 누런 공을 가지려고 하다가 쓰러지고 부둥켜 안고 난리법석이었다. 온 몸에는 시커먼 개천 물로 목욕하고, 드디어 고칠이가 생떼 써 먼저 손에 움켜 잡은 이 이상한 누런 공은 "뿌지작' 소리와 함께 그의 팔뚝으로 흘러내렸다.

냄새가 지독히 나는 똥이었다!

고칠이는 가만히 있다가 그만 온 힘을 다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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