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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 77 아이큐 77 제2화 03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by 이윤영

아이큐 77 제2화


03


“고칠씨,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기억나세요?”

“그럼요, 그건 생생해요. 너무 날 때리셔서요.”

엄마도 때리시고 할아버지도 때리신 거예요?”

“아, 그렇게 되나요?”


할아버지는 손자 고칠이랑 지내시는 걸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보다 더 즐거워 하셨다. 할아버지는 고칠이가 너무 순수했는지 아주 좋아하고 귀여워 하셨다.

그런데 할아버지와 고칠이가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거의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고칠이는 울고 들어오는 게 아닌가.

엄마가 고칠이를 달래서 조용히 왜 우냐고 물으면, 고칠이는 이리저리 맞는 시늉하며, 할아버지가 탄력성이 좋기로 소문난 왕머루 줄기 지팡이로 철썩철썩 때렸다네.

처음엔 엄마는 고칠이가 안쓰러워 할아버지가 좀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으셨다. 그렇지만 하루도 아니고 시시때때로 할아버지와 나가서 잘 지내다가 할아버지께 지팡이로 맞아 울고 들어오니, 이걸 할아버지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좀 의심스러워 보였다는데.


“이 문제를 좀 더 생각해 볼까요, 고칠씨?”

“그러죠.”

“고칠씨가 울고 들어오는 것을 할아버지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정말 어려운 문제겠죠. 그 이유는 아마도 인간은 본능만을 위주로 살고 있는 동물과는 구별되는 존재라서 더욱 더 그럴 겁니다.”

“그렇게 복잡한 문제였나요, 이게?”

“한 번 들어보세요.”

“네.”

그는 짤막하게 대답하고 가만히 있었다.

“우리 인간에게는 자신의 행동을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윤리적인 행동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인간은 악한 행동을 억제하고 윤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거겠죠. 또 인간은 이중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윤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인간은 선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이중성을 갖고 있다는 거예요. 선하기만 해도 윤리는 필요 없고, 악하기만 해도 윤리적 행동은 불가능해 보이는 거겠죠.”

“그래서요?”

“더욱이 인간은 사회를 이루며 살고 있어 윤리가 필요할 거예요. 인간이 혼자 살면 다른 사람과 전혀 상호작용이 없을 테니까 윤리는 필요 없을 겁니다.”

“서론이 길 군요. 따분해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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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요, 하하. 할아버지와 고칠씨의 경우 할아버지가 더 사회 경험이 많으셔서, 고칠씨 엄마는 할아버지보다는 고칠씨를 좀 더 의심해 본 건 당연한 이치겠죠.”

“그래서 엄마는 하도 답답해서 할아버지와 내 뒤를 미행(?)하셨다고 했어요. 엄마가 완전 스파이가 된 셈이죠. 멋진 연예인 쫓아다니는 스토커. 엄마도 참 못 말리시는 분이신 거.”

“정말 처음에는 할아버지와 고칠씨는 마치 둘도 없는 친구처럼 동네 공원을 가로질러 뛰어 다니며, 잘 지내는 것 같았겠죠. 할아버지는 손주가 귀여우신지 아이스크림도 사주시고. 맞나요?”

“아, 정확합니다. 집에 들어 올 무렵, 갑자기 내가 고집을 피우기 시작했다는데요. 집 앞에 세발자전거를 가리키며, 그걸 타고 싶다고 생떼를 부렸데요, 제가.”

“처음엔 할아버지가 고칠씨를 설득했을 거예요. 다른 자전거 사줄 테니, 집으로 들어가자고?”


하지만 고칠씨는 다른 자전거도 아니고 그 자전거만을 타고 싶다는 거다. 이런 억지가 어디 있는가. 그는 요란한 경찰차 사이렌 소리만큼 울어 재끼고 말았다는 거다.

고칠씨 엄마는 멀리서 숨어 보다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달려 나오셨다. 그러더니 마침내 할아버지 지팡이를 빼앗으셨다. 커다란 로터리길 한복판에서 고칠이의 볼기가 결국 벌집이 되고 말았다는데.


"엄마, 집 앞에 있는 저 아이의 자전거 타고 싶어, 엉엉."

“넌 맞아야 돼. 그 자전거는 네게 아니야.”

“내게 네게가 어디 있어. 엄마, 엉엉.”

“어, 뭐라고 다시 말해 봐, 고칠아. 내게 네게가 어디 있냐고?”


교육열이 높고 생각이 많은 집안에서 태어난 엄마는 고칠이의 말, ‘내게 네게가 어딨어.’ 를 그냥 흘려들어도 됐는데, 철부지 같기만 한 고칠이의 생각이 꽤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그래, 내게 네게가 어디 있냐고? 그런데 우리 사회는 내 것과 네 것은 분명히 있단다. 고칠아, 미안하다. 큰 고민 없이 세상살이에 익숙한 엄마가 잘못했다."

나는 그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잔뜩 머리에 떠올랐다.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 구별은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에요. 그런데 많은 학자들이 그 구별을 자유민주주의 실현여부를 두고 구분해 와서 모호하게 된 부분이 있는 거죠. 여기에서 확실하게 구분해 보면, 그 구별의 잣대는 생산수단의 소유가 '국가(공동)냐, 아니면 개인에게 있느냐.”일 겁니다.

그는 내 말을 듣고는 조금 더 설명해주길 바랐다.


“고칠씨가 살고 있는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예요. 자본주의 사회는 당연히 생산수단을 개인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음료수를 만든 회사의 사장은 국가가 아니고, 한 개인이라는 거죠. 공기업도 있기는 하지만요.”

그는 매일 매일을 일해도 쓸 게 많아서 이런 생활이 힘들다며 정색했다.

“그래요, 자본주의는 경제영역에서 국가나 공동체의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 왔던 겁니다. 그러다보니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시장에서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하려고 무한한 경쟁을 추구하게 되었고, 장점도 분명히 있지만, 이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 등의 모순과 부작용이 등장하고 있는 겁니다.”

그는 그러면 자본주의가 아닌 사회는 어떤지를 궁금해 했다.

“……반면에 사회주의는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통제한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내 것 네 것'으로 서로 자기가 더 많이 가지려고 싸우다 보니 살맛 안 나는 세상이 됐다는 거죠. 그래서 사회주의 사회는 경제적 불평등 해소만큼은 자신이 있었나 봅니다. 사회주의의 기원은 플라톤의 '국가론'의 이상사회, 초기그리스도교 공동생활, 토마스 머어 소설 '유토피아'의 공동사회 모습이에요. 인간이 사는 세상이 근데 완벽하지는 않나 봐요. 능력 보다는 분배 위주를 목표로 했던 러시아 중심의 사회주의는 보다 더 발전된 모습인 공산주의를 추구하다가 1990년대 초반 붕괴되고 말았어요.”

고칠씨는 내 말을 듣고 한마디를 툭 던졌다.


“자본주의 제도의 장점을 죽이는 사람이 문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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