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칠이의 집에는 4, 5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큰 소파가 있었다. 정사각형 모양의 거실도 널찍했다. 흙이 있는 마당도 있어서 목련나무가 제일 멋진 양 뽐내고 있었다. 바로 옆에 3미터쯤 돼 보이는 소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는 오른쪽 위쪽으로 손모양의 큰 가지가 잘려져 있어 약간은 흉물처럼 보였다.
집은 대리석 모양의 울퉁불퉁한 벽돌로 장식되어 있어 누가 봐도 못 사는 가정은 아니었다. 고대광실 좋은 집이라는 말이 연상될 정도다. 자가용도 있을 법한데, 고칠이의 아빠가 운전을 못하신다. 그리고 아빠는 운전사를 고용하자니, 지출이 많게 돼서 사업 면에서만 운전사를 고용하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칠이는 옷을 입은 모습이 영락없이 ‘한 푼 줍쇼.’ 하는 거지행세와 비슷했다. 한 손에는 먹다 만,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건빵을 들고 있고, 바지 앞주머니에는 콧물 닦다가 꼬깃꼬깃 말아 넣은 흰 손수건이 있었다. 머리는 고슴도치 모양으로 대충 깎아 올려 가난해 보였다. 어느 날은 팬티도 입지 않아, 친구들하고 앉아서 놀 때 살짝 고칠이의 고추가 보여 여학생들의 실소(失笑)를 자아냈다.
고칠이는 앙갚음 하는 마음으로, 여학생들이 공기 돌 놀이할 때, 짓궂게 치마를 확 들치곤 했다네. 증권회사의 증시로 비유하면, 여학생들에게 고칠이의 인기도는 폭락해 거의 바닥세를 보였다는 거다.
그래도 고칠이의 마음 한 구석에는 얼굴이 자그마한 '수현' 이라는 예쁜 여학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고칠이는 그 여학생 앞에 도저히 못 갔다고 하니, '사랑' 이라는 단어를 느낀 때가 있었나 보다.
“고칠씨, 너무 웃기셨네요. 하하.”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았어요. 참혹합니다.”
“인간은 사회를 떠나서 살 수는 없다고 해요. 고칠씨도 여학생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학교에서도 조금이라도 다른 친구들처럼 서로 맞춰서 지내야 하겠죠. 사회는 상호작용하는 개인들의 집합체라고 합니다. 일정한 지역 혹은 공간에서 가치관 규범 언어 종교 문화 등을 상호 공유하고 제도와 조직을 형성하여 질서를 유지합니다. 사회구성원을 재생산하면서 존속하는 인간의 집단입니다.”
“너무 갑자기 진지해 지셨어요.”
“그러게요. 고칠씨가 여학생들에게 왕따 당한 느낌이라서, 좀 안타깝네요.”
“잊었어요. 이미 전. 그래도 웃기시죠?”
“음……웃음을 참고. 따라서 사회는 제도와 조직을 통해 지역 공동체, 문화 공동체, 정신적 통일체라는 특성을 갖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있을 때 진정한 인간이라는 말이 나올 법하죠. 현대시대에 와서는 언론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터넷매체 등이 대중화 되면서 가상공동체가 출현했습니다. 우리는 이 공동체의 사회구성원을 '네티즌' 이라고 부르고 있잖아요.”
진지하게 말을 이어가려하다가 고칠씨와 나는 더 이상 웃음을 못 참고 터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고는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고칠씨는 말을 이어갔다.
BOOK PR 카나리아의 흔적
어느 날 선생님은 고칠이를 불렀다.
“고칠아, 이 쌀 우리 반 친구들이 너를 위해 모은 거란다. 어머니께 갖다 드려라.”
고칠이는 선생님의 이 말씀을 듣고 너무 기뻤다. 한마디로 공짜로 쌀이 생겨 방망이 떡도 해 먹을 수 있고, 떡볶이도 먹을 수 있고 해서. 하지만 고칠이는 이 날 엄마에게 엄청 혼났다네.
그리고 엄마는 밤새워 우셨다. 다음날 엄마는 고칠이 반 선생님을 찾아뵙고 감사하다고 말씀을 드리고, 선생님을 며칠 후에 초대하셨다.
선생님은 럭셔리 풍의 멋진 고칠이의 집을 보시고 깜짝 놀라시고, 거꾸로 고칠이 엄마께 죄송하다며 인사하시고 가셨다는 거다.
선생님이 그 이후로 고칠이 반 친구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놀러온 적이 없던 반 친구들이 고칠이 집에 오더니, 냉장고문 열어 보기, 긴 소파에 몸 던지기 하며, 이리저리 신기한 듯 집구경하다가 마당에 있는 조그만 꽃밭에서 개미들 허리 눌러 괴롭히기 놀이하고 가기 일쑤였다. 그리고 자명종 시계를 몇 번이나 더듬어 껐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은 바삐 흘러갔다.
“관념론과 유물론을 설명하는 건 사실 어려운 문제 입니다. 여러 다양한 논의가 있어 설명하기가 좀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에요. 유물론을 간단히 말하면, 물질이 생각을 규정한다는 말이에요. 거꾸로 관념론은 생각이 물질을 규정한다고 보면 되죠. 이해됐나요? 어렵죠? '물질을 숭상한다.'는 물질주의, 물질론 과는 달라요.”
“그런데 왜 여기서 유물론이 나오는 거죠?”
“아, 그거는요, 예컨대 고칠이의 집을 물질로 보면 친구나 선생님이 그 물질을 보고 생각이 바뀐 것 아닙니까. 이게 바로 유물론적인 관점이라는 거예요.”
“어렵네요.”
“유물론은 본질상 과학의 진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유물론은 관찰 경험 실험 등을 인식수단으로 해서 자연과학의 발전을 꾀하게 되었어요. 유전공학 등의 발전은 기존의 관념에 없는 개념이라서 도저히 이뤄낼 수 없는 거예요.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이뤄낼 수 있었답니다.”
“그러면 관념론은 뭔가요?”
“관념론은 위에서, 생각이 물질을 규정한다고 했죠. 외부세계는 의심되거나 부정됩니다. 따라서 관념론은 종교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요. 간단히 말해 세계이성 절대이념 보편정신 등으로 표현되는 절대자 하느님(생각)이 이 세상(물질)을 규정한다고 말하게 됐죠.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신의 말씀을 대변하고 전달하는 성직자가 정치 통치계급이상의 권위를 갖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가 있었겠죠. 그래도 보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어요. 물질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해도 '긍정적인 힘' 인 종교적 신앙으로 견뎌내기도 하지 않습니까?”
“요약 좀 해주세요. 정신없네요.”
“……요약하면, 관념론은 인간의 정신 및 의식을 중심으로 사회현상을 설명하고, 유물론은 인간의 물질적인 삶과 생산활동을 중심으로 사회현상을 설명한다고 봅니다. 이런 말도 있어요. 관념론은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했고, 유물론은 사회주의의 이론 및 실천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