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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Q 77 아이큐77 제2화 05

이윤영 한국언론연구소 소장

by 이윤영

아이큐 77


05


동생은 앞뒤로 가는 ‘전후진’ 장남감차 정도밖에 없었다. 그후 아빠 엄마의 1등 답례 선물로 좌우 어디로도 가는 엄청 비싼 무선 원격조정 장난감 자동차를 갖게 됐다. 어떤 누구도 그 장난감을 만지지 못하게 했다. 정말 재수 없는 녀석이었던 거다.

그 자동차 이름은 '코베트' 였고 노란색이었는데, 얼마나 동생이 그걸 애지중지 했는지, 2,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자동차가 동생 집에 있는 모양이다. 대단한 녀석이다.

고칠이는 그래도 학교에 한 번도 결석한 적은 없다. 하지만 학교수업이 재밌어서는 아니다. 고칠이는 학교가면 친구들과 누런 흙탕물에 가서 놀 이벤트를 생각하면 학교 가는 게 마냥 즐거웠다. 고칠이 반의 대장, 형태라는 친구만 뒤쫓아 다녀도 무지무지 놀게 많았다네.

그 친구는 헤엄칠 웅덩이가 있는 곳을 전지전능한 신처럼 거의 다 알고 있었고, 웅덩이 겉만 보고도 물 깊이까지 머릿속으로 가늠할 정도였다.

엄마는 이러한 친구들만이 있는 고칠이가 왠지 답답해 보였다. 집밖에 잘 나가지 않는 동생과 너무 많이 달랐고, 공부는 안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 궁리만 해서다. 어렸을 땐 공부하는 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글자 하나 안 보려는 고칠이가 조금이라도 공부에 관심이 있었으면 했던 것이다. 게다가 고칠이가 구깃구깃 접어 가방에 넣어 갖고 온 성적표는 안 봐도 뻔했다.

거의 '수우미양가' 중에 '양가집'이다.

엄마가 하루는 날 잡아서 고칠이에게 물으셨다.


"넌 왜 전혀 공부를 안 하니?“


고칠이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엄마, 책 안에 있는 까만 글씨들이 내 머리를 아프게 해요."

그런데도 엄마는 고칠이를 쉽게 포기하지 않으셨다.

고칠이를 가장 똑똑하다고 하는 동네 대학생 누나에게 공부를 맡기신 거다. 고칠이는 공부할 때쯤 되면 온몸이 근질거리는 느낌이었다.

한 일주일 지났나싶다. 고칠이는 공부 하러 누나네 집에 간다고 하면서 친구들하고 떼 지어 연안부두가의 웅덩이 흙탕물에서 놀다 들어왔다. 고칠이의 고집은 정말 꺾기 어려웠다. 동네 사람들은 엄마가 잔뜩 찡그린 냉혹한 표정으로 고칠이를 때리려고 빗자루 들고 다니시는 걸 심심찮게 목격하곤 했다.


"고칠아, 책 좀 읽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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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칠씨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나에게 되물었다.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어 답을 얻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인 듯싶어요.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과정이 바로 삶의 의미일 것 같아요. 나에겐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는 내가 아무 말이 없자,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삶의 문제는 항상 선택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어요.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는 매번 갈등 속으로 내 자신을 내몰아 가더라고요.”

"선택의 수가 사람마다 다양하다 보니,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겠죠. 삶의 다양성은 사회가 올바르게 형성되고 발전하기 위한 밑거름일 겁니다. 그리고 삶을 살다보면 나름대로 삶의 목적이 생길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이나 사회전체에 부당한 손해를 끼치지 않게 해야 해요. 또한 자신에게 무엇보다 보람 있어야 한다는 건 당연한 거겠죠.”

나는 교과서적인 말만을 반복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절실한 목표가 있냐, 없냐의 문제 같아서다. 작은 목표라도 없으면, 얘기들이 겉돌 수밖엔 없다.

그리고 고칠씨는 책읽기 싫어서가 아니고, 책을 읽으면 머리가 아프다는 말을 한다. 이걸 보면, 고칠씨가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아무리 어린 나이일지라도 고칠씨에게 맞는 삶의 의미와 선택이 있어야 할 듯싶었다.

“고칠씨에겐 특별히 좀 더 신중한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제각기의 삶은 다양하기 때문일 거예요.”

고칠씨는 내 말을 듣고는 깊은 생각에 빠져드는 듯했다.

그렇다. 고칠씨는 자아실현에 대해 생각하는 모양이다. 자아실현 과정은 우리가 지닌 가능성을 키우고 이상을 실현해 궁극적으로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여기에서 행복의 기준은 뭘까? 반에서 1등하는 학생이 꼴찌 하는 학생보다 행복할까?

나는 생각나는 대로 고칠씨에게 여러 말들을 던졌다. 깊이 생각해 말해봤자, 마음에도 없는 케케묵은 진부한 답변이 될 것 같아서다.

“과거 자아실현 과정은 이미 사회적 목표가 주어져 있어서 자신의 가능성도 이미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경제적으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학생들은 부유한 학생들보다 학습정보를 얻는 폭이 좁은 것은 사실입니다. 유학 가기도 사실 어렵잖아요. 아마도 기존의 행복기준으로는 불행하다고 보여 집니다.”

“기존의 행복 기준이요? 다른 기준도 있다는 말인가요?”

“당연합니다. 로널드 잉글하트 미국 미시건대 교수는 그가 주장한 개념인 '조용한 혁명'이라고 해서 돈이나 학교성적의 삶의 객관적 지표보다는 내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 등등의 주관적 지표가 행복의 지수로 바뀌고 있다는 겁니다. 특히 우리 동양사회는 자본의 소유 보다는 도덕적인 완성을 삶의 목표로 두고 이를 행복의 기준으로 삶는 경우가 많았어요. 밥보다는 명예였거든요. 하지만 어느 새인가 삶의 목표가 되고 성공의 기준이 됐으니.”

“삶의 목표? 성공의 기준이 뭐라고요? 명예가요? 자본 소유가요? 헷갈려요. 알기 쉽게 말해줘요.”


“음……간단히 말하면, 돈이라는 겁니다. 돈이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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